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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받이 Aug 27. 2021

2. I'll be back.

그들의 협박에 유연 해지는 법

휴일 전 날은 용서가 되는 일이 많다.

평소라면 예민하게 반응하게 되는 일들도, 짜증스럽고 귀찮은 일들도 기꺼이 받아들이게 된다.

단 몇 시간만 견디면 모든 걸 뒤로 하고 내가 제일 좋아하는 장소에서 제일 좋아하는 사람과 제일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제일 좋아하는 떡볶이를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따르릉, 따르릉

퇴근 1시간 전, 불길한 전화 벨소리가 유난스럽게 울려댔다.

서비스직에서 오랜 시간 일을 하다 보면 '감'이라는 게 발달하게 되는데 불행히도 그 '감'이라는 것은 기쁜 일을 예감하기보다 불길한 사건을 적중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

예를 들어 멀리서부터 들리는 고객의 발걸음 소리부터 옷차림과 표정, 불만을 표현하기  특유의 음색  화가  사람들은 말로써 무언가를 토해내기 전부터 어떤 표식? 같은 것을 뿜어내기 마련이다.

어쨌든 미친 듯이 울려대는 벨소리를 멍하니 듣고 있다가 3초 정도 고민했다. 그리고 전화를 받는 순간

나는 얼음이 되어 버렸다.


"고맙습니다 고객상담실 000입..."

"다 필요 없고 이번 주 일요일 딱 기다리세요? 내 어떻게 할지 한 번 보여줄게"


익숙한 목소리와 말투가 내 인사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훅 들어왔다.

며칠 전 방문하여 1시간 가까이를 고성으로 보상을 요구하던 남자 고객이다.

사건은 2년 전 구매한 원피스의 소재에 문제가 생겨 소비자단체에 심의를 보냈는데 불량이라는 결과가 나온 것이다. 하지만 이미 보증기간이 훨씬 지나 들고 온 제품은 감가상각을 적용하여 구매금액의 45%만 환불이 가능하다는 조치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다.


물론 고객의 입장도 얼마나 억울한 것인가, 본인은 불량을 구매한 것인데 늦게 들고 왔다는 이유로 턱없이 적은 금액밖에 보상을 받지 못한다니..

하지만 이는 소비자 분쟁 해결 기준에서 고시하고 있는 사항을 기반으로 처리를 해드리는 것으로 브랜드에서도 최선의 방안을 모색한 것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따로 있었다. 우연히 알게 된 것은 그 고객이 사실은 그 의류를 구입한 사람이 아닌 그 의류를 세탁했던 세탁업체 사장님이었다는 것. 영수증도 없었고 구매내역도 확인되지 않은 상황에서 구매한 고객의 이름을 들먹이며 자신의 가족이라 했다가, 지인이라고 했다 여러 번 말을 바꾸었다.

어쨌든 브랜드에서는 본인들의 제품이 불량이라는 심의 결과를 받아들이고 문제를 제기한 사람에게 그에 따른 보상을 해 줄 예정이었지만 그 보상을 만족하지 못한 고객의 욕심까지는 백화점에서 채워줄 수 없는 노릇이다.


브랜드에서는 제시한 보상비율 이상으로는 더 이상 조치할 수 없다는 최종 의사를 전달했고 고객은 이후 공격 대상을 백화점으로 조준을 바꾼 듯해 보였다.

불량을 알고도 판매한 백화점에도 책임이 있다는 이유를 들먹이며 백화점에서도 책임을 지라는 것이다.

고객에게 말했다.


"고객님 저희가 불량인 걸 알고도 판매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공산품이다 보니 간혹 육안으로 확인되지 않는 불량들이 발생하는 경우가 있고 그럴 경우 소비자 분쟁 해결 기준에 맞게 처리를 해드리고 있으며, 협조하지 않는 브랜드가 있다면 고객님의 편에서 중재를 해드리고 있는 것이 고객 상담실의 역할입니다. 해당 브랜드에서는 적절한 조치를 해드리는 것이며 그 이상으로 브랜드에 강요할 수는 없습니다."


백화점에서 브랜드에 갑질을 해달라 노골적으로 요구하는 전형적 타입의 고객이었다.(개인적으로 가장 피곤하다) 고객은 내 말은 거의 듣고 있지 않았고 백화점 앞에서 1인 시위를 하겠다, 언론에 제보하여 문제를 키워보겠다 등 협박에 가까운 비현실적인 말들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그리고 결론은 이번 주 일요일에 매장이 아닌 고객 상담실로 찾아갈 테니 제품 들고 대기를 하고 있으라고 한다. 그리고 본인이 어떻게 하는지 보여주겠다고 말하며 두고 보라고 한다.

누가 들어도 그것은 분명 협박이었고, 내가 가서 어떻게 할지 모르니 너는 내가 오기 전까지 적절한 보상안을 마련해놓지 않으면 어떠한 짓이라도 할 수 있음을 내포하고 있었다.


통화가 끝나고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곧 있을 퇴근 후부터 고객이 찾아오겠다 엄포를 놓은 일요일이 되기 전까지의 하루하루가 절망의 시간으로 전환되는 순간이었다.

차라리 몰랐으면 좋았을걸, 왜 나는 하필 그때 전화를 받아버려서 내 소중한 휴일까지 망쳐버리게 된 것일까 자책을 한다. 퇴근 시점부터 난 고객이 왔을 때 어떻게 대응을 해야 할지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한숨을 쉬고, 결국 스트레스를 받는 형태의 서클이 반복되는 것이다.


이 틀간의 휴무 동안 최대한 그 고객을 생각하지 않으려 지인을 만나고 맛있는 음식을 먹고 대화를 하며 시간을 촘촘히 보냈다. 하지만 지인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동안에도 나는 그 고객의 목소리를 떨쳐 낼 수 없었고 계속하여 걱정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심지어는 최악의 상황까지도 상상하기도 했는데 고객과 나 둘만 있는 폐쇄된 공간에서 쥐도 새도 모르게 고객이 휘두른 흉기에 찔리는 내 모습을.

어디선가 보았던 뉴스를 떠올린다. 종업원이 자신을 무시한다는 생각에 흉기로 종업원의 얼굴을 수십 차례 찔러 살해했던 그 사건, 민원을 제대로 처리해주지 않아 공무원에게 흉기를 휘둘렀던 기사도 있었지..

설마 내가 그 주인공이 되는 건 아닐까? 겪어보지 않은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는 그런 공포감이 가끔 엄습해올 때가 있다.

아무도 없는 폐쇄된 공간에 혼자 앉아 있으면 멀리서 들려오는 발자국 소리에도 청각이 예민해진다.

그래서 모든 부분에서 무던하고 둔감한 사람이 이 자리에서 오래 일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을 해보기도 했다.


그렇게 불행한 생각으로 가득 채운 휴일을 보내고 대망의 일요일이 되었다.

그리고 그 고객은 폐점이 될 때까지 결국 오지 않았다.


나는 생각했다.

과연 그 고객은 내 시간을 지배할 만큼 나에게 가치 있는 사람이 될 자격이 있었던가?

알고 보면 나를 불행하게 만든 것은 그 고객이 아니라 나 자신이었던 것이다.

끊임없이 불안감을 증식해냈고, 그 사람의 목소리와 표정을 떨쳐내지 못해 스스로를 괴롭힌 것이다.

나는 휴일과 그 사건을 분리했어야 했지만 그 고객이 내 구역을 침범하도록 내버려 두었다.

휴일 내내 불안에 휩싸였던 나는 일요일 당일까지도 언제 올지도 모를 고객을 기다리며 근무하는 내내 모든 소리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전화벨이 울리면 심장이 터져 버릴 것 같은 상태로 하루를 보냈다. (이 정도면 직장을 다시 알아봐야 하는 것 아닌가 싶다)


그 고객은 본인의 한 마디가 한 사람의 일상을 좌지우지하게 될 것이라는 걸 알고 있을까?

물론 그게 목적이었다면 성공한 셈이지만, 고객에게 그 정도의 서사를 부여하고 싶진 않다.


생각해보니 그렇다고 해서 나는 지금 보다 더 무던하고 둔감한 사람이 되고 싶진 않다.

나의 예민한 감각과 세심한 공감 능력은 지금 나를 이곳에 계속 앉아 있도록 해 준 원동력이니까.

그저 고객이 무심코 던진 물수제비 같은 한마디를 내 공간과 분리시키려 노력할 것이고, 시간에 쫓겨 피 마르게 하루를 보내봤자 허무한 결과만 가져올 수 있다는 오늘의 교훈을 잊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더 이상은 그들에게 내 하루를 내주지 않을 것이다.


그래, 오늘도 얻은 것이 있다면 성공적인 하루인 것이다.

언제 올지 모르는 그 고객에게 조금은 더 살갑게 다가서 보기 위해 용기 내본다.

그래도 안된다면 할 수 없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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