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불편러 고객에 대하여
코로나19가 엄습해온지 벌써 1년 반이 넘었다. 이렇게나 지겹고 끈질기게 오래갈 줄 몰랐지.
많은 분야의 직장인 또는 자영업자들은 상당한 변곡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내가 속한 유통업은 단연 코로나19로 인한 변곡의 롤러코스터를 가장 많이 체감하는 곳이기도 하다.
불필요한 외출이 줄어들며 한동안 백화점 매출은 사상 최악의 적자를 기록하기도 했지만, 반면 이 지겨운 사태가 장기화가 되면서 사람들은 여행에 투자하던 비용을 명품 소비라는 대체 행위로 전환시켜 백화점은 역대 최고의 매출을 기록하기도 했다.
마찬가지로 내가 근무하고 있는 이곳 고객상담실도 지난 1년 반 동안 수백 번의 롤러코스터를 타고 오르락내리락 멀미 날 세도 없이 달려왔더랬다.
내가 코로나19 시대를 이곳에서 온 몸으로 부딪히며 느꼈던 한 가지.
코로나19가 잠식하기 이전보다 '프로불편러'들의 상담 건수가 눈에 띄게 증가했다는 것.
사실 내가 칭한 '프로불편러'들은 '선천적 불편러'인지 코로나19가 만들어낸 '후천적 불편러'인지는 알 길은 없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어떤 불편러라고 한들 그들을 불편하게 만든 사건들이 코로나19가 이곳을 덮쳐버린 이후로 더 많아졌다는 것이다.
며칠 전, 멀리서도 '나 완전 열 받았어'와 같은 음률을 지닌 구두 발자국 소리가 고객상담실을 향해 모델의 당당한 워킹 마냥 또각또각 걸어왔다.
이런 류의 발자국 소리를 듣게 되면 오히려 더 감정을 내려놓고 최대한 이성적이고 전문적인 상담원의 태도로 이미지 메이킹을 한다. 나는 고객의 성향에 따라 응대 스타일을 유연하게 하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이는 내 성향에서 묻어 나온 습관인데, 내 깊고 좁은 지인들의 나이와 직업, 성향의 스펙트럼이 넓은 까닭이기도 하다.)
당당한 모델 워킹의 고객들은 단 한 번도 실망시켜준적이 없다. 그들은 늘 문이 뚫릴듯하게 노크를 두어 번 '쿵쿵' 한 뒤 문을 벌컥 열어 버린다. 여기에서 쌓은 데이터로 통계학을 공부하고 싶을 지경이다.
그 고객은 들어오자마자 자리에 앉지도 않고, 인사는 당연히 생략하거니와 본론부터 말한다.
"여기 휴게의자에 바리케이드 친 사람 누구예요?"
자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 고객이 불만을 표현하는 방식이다.
불만을 야기하게 만든 책임자가 누구냐?라는 단도직입적 형태의 컴플레인을 제기한 것이다.
코로나19로 인해 백화점 내 모든 휴게의자는 사용하지 못하도록 조치를 해놓은 상황에서 고객은 왜 쇼핑을 하러 와서 불편을 겪어야 하냐는 것이 불만의 요지인데 그 모든 것을 띄어 넘은 채 책임자가 누구냐 묻는 것이다. 사실은 책임자를 불러주면 가장 편한 케이스지만 먼저 안내해야 할 부분을 말씀드려본다.
"고객님, 휴게의자의 경우 백화점에서 임의적으로 판단을 하여 사용 제한을 둔 것이 아니라 시청에서 보내온 방역수칙에 따라 조치한 부분으로 양해 부탁드립니다."
그러자 고객은 기다렸다는 듯이 내 말의 꼬리를 잡기 시작한다.
"시청에 누가 그렇게 지시했어요? 시청에서 백화점에 지시를 어떻게 내려? 내가 시청 관계자들을 꽤 아는데
시청에서 백화점에 지시 못 내려. 아가씨 잘못 알고 있는 거야. 바리케이드 친 사람 데리고 와, 직접 말하게."
시청 관계자를 정말 잘 알고 있다면 이런 말을 할 수 없다는 것을 알지만 한 번 더 고객에게 단계별 방역수칙에 따른 조치사항임을 양해 구했다. 그러자 고객은 예상치 못한 말을 하기 시작했다.
"아니 여기 백화점 안 되겠네. 지금 고객한테 갑질 하는 거야? 고객이 쇼핑을 하는데 불편하다잖아! 고객을 왕으로 모셔도 부족할 판에 지금 뭐 하는 거야? 당장 바리케이드 치우라고요! 아니면 바리케이드 친 사람 데리고 오라고!"
반말과 존댓말을 섞어가며 '갑질', '고객은 왕이다'를 시전 하기 시작한 그녀는 누가 봐도 상황에 비해 과도하게 화를 내며 고성으로 항의를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생각했다. 이 고객은 의자에 앉지 못해 화가 난 것이 아니란 것을.
그녀는 '코낳프’(코로나가 낳은 프로 불편러)인 것이다.
진짜 화가 나서 소리를 지르는 고객과 마음먹고 상대방 기를 죽여야겠다는 태도로 화를 내는 고객은 단번에 차이를 알 수 있다.
휴게의자에 앉지 못해 불편하다는 감정은 쉽게 느끼겠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분노를 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백화점에서 고객에게 갑질을 하려고 그러한 조치를 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이 고객이 화를 내는 이유는 그저 코로나19로 인해 심신이 지쳐 있는 상황에서 백화점만큼은 내 돈을 쓰러 가서 그만큼의 대접을 받을 수 있는 곳이었는데 그마저도 안되니 짜증이 났고, 이미 축적되었던 짜증은 어느새 분노로 진화해 해소할 곳이 필요해진 것(이라 생각하고 싶다)이다. 지금 이러한 분노의 상태를 누군가 헤아려주고, 조아려주고, 죄송하다는 말을 듣고 싶어진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무언가로 인해, 그러니까 화낼 일도 아닌 일에 지나치게 화를 내는 사람들은 사실 위로가 필요한 사람들이다. 어디서도 인정받지 못한 자신의 감정을 쉽게 터트릴 수 있는 곳에서 억지스러운 사과라도 받아야 분이 풀리는 것이다.
결국에는 책임자를 불러주겠다고 했지만, 본인의 시간은 금(金)이니 기다릴 수 없다고 하며 연락처를 남기고 갔다. 책임자는 고객에게 연락해 시청에서 내려온 공문을 바탕으로 조치하고 있음을 한 번 더 안내했고, 고객은 믿을 수 없다며 시청 관련 부서에 직접 연락하겠다고 하고 종료가 되었다.
백화점은 이 세상 모든 편의들이 모인 집합체가 맞다.
오감을 만족시키기 위해 대한민국의 모든 백화점들은 오늘도 열렬히 경쟁하고 있다.
하지만 코로나19로 인해 늘 누려왔던 것들이 제한되는 것은 백화점도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불특정 다수들이 늘 찾아오는 이곳 백화점 고객상담실은 정말 내가 죄송할 만큼의 불편을 입은 고객들도 사실 많이 찾아오지만, 소위 프로불편러라고 불리는 고객들도 심심치 않게 찾아오기도 한다.
사실 '프로불편러'라는 단어도 주관적인 것이다. 내가 불편하지 않다고 해서 다른 이도 불편하지 않을 것이라는 법은 없지 않은가. 다만 사회적, 통상적 의미에서 대부분이 이해하기 힘든, 아주 사소하고 생각지 못한 부분에서 불편을 느끼는 사람들을 우리는 '프로불편러'라고 부르기 시작한 것이다.
'프로불편러 고객'을 맞이할 때면 평소 에너지의 2배 이상을 소모하게 되어 상담원 또한 지치기 마련이다.
공감을 해주어야 하는 것이 상담원의 가장 기본적인 덕목인 것인데, 공감 자체가 불가능한 상황에서 이해를 시켜야 하지만 이해는커녕 점점 더 커지는 고객의 고성을 날 것으로 받아 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내가 여기 앉아서 선택적 고객을 맞이할 수 없는 한 앞으로도 무수히 맞닥뜨려야 하는 그들이기에 나는 조금 더 그들의 감정을 이해하기로 했다. 충돌보다는 이해가 편하다는 것을 어느새 나는 알고 있다.
그리고 전 세계를 잠식하고 있는 코로나19가 모두의 노력으로 잠식될 때까지, 적어도 '코낳프(코로나가 낳은 프로불편러)'가 더 이상 출현하지 않는 그날을 기다리며 내 자리에서 초연하게 하루를 맞이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