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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꼬야 Apr 23. 2020

아버지는 택시드라이버

어디냐고 여쭤보면 항상 "양화대교"

아버지는 택시드라이버

어디냐고 여쭤보면 항상 "양화대교     


흔히 택시 기사라는 직업은 이미지가 별로 좋지 않고, 사건 사고에도 많이 이용되기도 한다. 그 영향으로 범죄 스릴러물에서도 종종 그 직업군이 나오기도 한다. 하지만, 그건 일부인거고, 조금만 다르게 생각해보면 택시기사라는 직업이 그만큼 범죄에 노출되어 있는 다소 위험한 직업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많은 승객들을 대하는 직업이다 보니 정신적인 스트레스도 심하고, 몇 시간씩 운전대를 잡아야 하는 육체적 피로도 중노동급이다. 



  자이언티의 '양화대교' 가사 중    

                 

       우리 집에는 매일 나 홀로 있었지 
       아버지는 택시드라이버, 어디냐고 여쭤보면 항상 "양화대교" 
       아침이면 머리맡에 놓인 별사탕에 라면땅에 새벽마다 퇴근하신 아버지 주머니를 기다리던 
       어린 날의 나를 기억하네 
       엄마, 아빠, 두 누나, 나는 막둥이, 귀염둥이 
       그 날의 나를 기억하네 기억하네 

       행복하자, 우리 행복하자, 아프지 말고 아프지 말고 
       행복하자, 행복하자, 아프지 말고 그래 그래 



억울한 일도 많다.

뉴스에서는 택시 기사가 여승객을 성폭행 했다는 기사만 나오지만, 그 반대인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술에 취해 조수석에 앉아 운전을 방해하는 여자 손님들도 많고, 물건을 놓고 내린 본인 실수는 생각 하지 않고, 무작정 자신이 있는 곳으로 가져다 달라하여 택시비를 주셔야 한다하면 왜 내야 하냐며 무경우를 쓰는 승객도 많다. 그래서 기사들은 그런 시비가 싫어 가까운 지구대에 갖다 주면 승객들은 또 왜 거기다 갖다 주었냐고 항의다.  

  

한번은 월요일 출근하자마자 민원 전화를 받았다.

29세 싱글 여성, 다소 뚱뚱하단다. 그리고 그 원인이 폭식, 먹는 걸로 스트레스를 풀고, 그 스트레스는 부모님이 넷인 가정사 때문이란다.

민원의 요지는 자기가 뚱뚱한데 기사분이 자꾸 그걸 화젯거리로 삼아 이야기를 하시더란다. 처음엔 예의상 받아 몇 마디 주고받았는데 도를 넘어 섰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정신적으로 피해를 받았고, 택시비 환불은 물론이고 피해보상금까지 받아야겠다는 것이다.     

회사 측에서는 죄송하다고 사과를 했지만, 이미 민원 신청을 한 상태였고, 민원 신청을 한 이상 회사에서는 시에서 회사로 부과하는 과태료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럴 때면 사실 여부를 떠나 합의하고 민원신청을 취하시키는 것이 먼저다.     


“제가요. 뚱뚱한 건 알아요. 근데 그걸 왜 기사가 뭘 먹어야 살이 빠진다는 둥, 운동을 하라는 둥 하냐고요? 그건 아니잖아요.”

“네.. 아니죠.. 죄송합니다.”

“제가요. 스트레스 받는 걸 다 먹어서 풀어 살이 찌는 건데, 그 기사가 내 스트레스에 대해 아냐고요?”

“아... 그렇구나. 기사님께 다음부터 이런 일 없도록 주의 시키겠습니다.”

“제가 엄마 아빠 도합 넷이예요.. 그래서 스트레스 받고 그런 건데.. 내 살 가지고 왜 지가 지랄이냐고요?”

점점 말이 거칠어지고 심지어는 욕까지 하는 거다.

“죄송합니다.”

“죄송하단 말 그만하시고요. 어떡할거냐고요?”

그리고는 그런 레퍼토리를 8회 정도 더 해댔다.

나도 슬슬 약도 오르고, 욱 해 좋은 말이 안 나갈 것 같은 상태였지만, 입술을 꾹 깨물고 말했다.

“죄송하단 말도 하지 말라고 하시니까 그 말도 더 이상 못하겠고, 그럼 제가 어떻게 해드릴까요?”

그렇게 나오길 기다리기라도 한 사람처럼 피해보상금을 요구해왔다.

“그럼 우리 쪽에서도 블랙박스 확인 후에 다시 연락 드리겠습니다.”

하고 전화는 일단 끊고 기사를 불러 자초지종을 듣고 블랙박스 영상도 확인한 결과, 살 이야기를 꺼낸 것도 민원인이 먼저였고, 대화를 주도한 것도 민원인이었다. 확인 후 자신의 이야기를 술술 풀어내는 민원인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그녀의 가정사가 사실이고, 정말로 자신이 택시 기사님과의 대화에서 불쾌감을 느꼈다면 그녀는 피해망상증 환자일 것이고, 자기연민을 악용해 부당 이득을 취하려 일부러 그랬다면 그녀는 관계에 있어 을에게 갑이 갑질을 한 것이다.     


이런 일들을 겪어 내야 하는 택시 기사님들은 우리 아버지들이시다. 

자이언티의 ‘양화대교’라는 노래 가사처럼 가족들의 행복을 다짐하며 핸들을 잡으시는 많은 아버지들이시다.

새벽에, 아니면 늦은 밤, 일을 나가며 아들딸들에게 행복하자를 다짐하는 아버지들,  

그들의 자녀 중에는 경찰도 있고, 교사도 있다. 승객들의 험한 모습들을 겪어내며 기본 요금 삼천삼백원을 받는다. 그 꾸깃꾸깃한 천 원짜리 지폐를 반듯하게 펴서 차곡차곡 쌓으며 키워낸 자녀들은 어느 사회인 못지않게 훌륭한 대한민국을 이끌어나갈 인재들이다.  

지금 택시 업계는 과거 카카오 카풀과 타다의 등장으로 곤혹을 치렀고, 이제는 코로나19의 영향으로 누구, 어느 업계보다도 더 거센 타격을 입고 있다. 이런 어려운 현실에서 승객을 태울 때가 제일 좋다는 우리네 아버지들을 제발 승객만이라도 배신하지 말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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