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아이의 아빠가 되어 버린 축구 꿈나무

- 미련만이 아니다. 아직 식지 않은 열정이다.

by 꼬야

조카 콩이가 태어나기 전, 12월 31일의 일이다.


나는 매년 그랬던 것처럼 ‘나 홀로 송년’ 파티를 준비하고 있었다. 잔에 맥주를 따르고 잔 밑에서부터 올라오는 그 방울방울의 시원함에 감탄하고 있는 찰나, 인터폰이 울렸다.

‘누구지? 올 사람이 없는데?’ 하며 인터폰 통화버튼을 눌렀고, 너머에서는 낯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언니, 저예요.”

“웬일이야? 일단 들어와.” 하고는 문을 열어 주었다.

송년 파티의 손님은 그 당시 새색시였던 윰(現 콩이맘)이었다.

윰은 들어서자마자 소파에 올라앉아 씩씩거렸다.

윰의 말에 의하면, 새신랑이 임산부 아내를 두고 축구를 갔단다. 축구를 좋아한다는 걸 알았지만, 다 함께 하는 한 해의 마지막 밤인데, 결혼하고 처음으로 맞이하는 새해인데, 어쩜 그럴 수 있냐며 서운하다는 것이었다.

“너무 했네, 새신랑 너무 했어.”

나는 맥주잔에 주스를 따라주며 건배를 제안했다.

“언니, 그리고요.” 하며 쌓였던 이야기를 술술 풀어냈다.

“이눔의 자식, 지가 아직도 총각인 줄 알아? 정신 못 차렸네?”

신나게 동생을 안주삼아 임산부와의 송년 파티가 무르익어 갈 즈음 핸드폰 메시지 음이 울렸다.

‘누나, 윰 거기 있어?’

나는 피식 웃으며 답을 했다.

‘그래, 이눔의 자식아!’

그는 나의 메시지 답에 달린 1자가 사라지기가 무섭게 전화를 해 왔고. 나는 ‘네가 무슨 축구 꿈나무’냐며 당장 와서 데려가라고 나무랐다.


그리고 그 철없던 축구 꿈나무는 이제 두 아이의 아빠가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축구 꿈나무’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반바지에 무릎 밑까지 오는 스타킹 양말을 신고 일주일에 두 번 축구장으로 간다.

“고모, 난 이제 포기했어요. 뭐, 화목 축구 가려고 월수는 열심히 청소도 하고 분리수거도 하고 그러니까. 그렇게 나쁜 건 아니에요.”하고 이제 윰은 빙그레 웃는다.

‘포기했어요’라는 말이 나오기까지, 자기 위안 거리를 찾기까지 윰은 얼마나 서운해하고, 그들은 얼마나 다툼을 했을까? 그리고 누나인 나도 한마디, 엄마도 한마디 했던 것 같은데 그는 그렇게까지 축구가 좋을까 싶었다. 식구들 중 누구 하나 축구 가는 것에 대해 우호적인 사람이 없는데, 비도 오고, 눈도 오는데 축구가 뭐 그리 좋을까 싶었다.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이해가 되지 않았던 그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살던 집을 정리하고 이사를 계획했다. 이삿짐센터에서 다 알아서 해주겠다며 따로 힘들이지 말라 했지만, 서재는 그간의 메모와 작업들을 살펴볼 겸 (정확히 말하자면 쓸모없는 폐지가 더 많을 걸 알기에) 짐 정리에 들어갔다. 일찍이 부모님은 근교 전원생활에 들어가시고, 막내 동생과는 그가 결혼 전까지 같이 살아서 신혼집으로 가지고 가지 않은 자질구레한 그의 짐들도 남아 있었다. 대학 수업 노트, 책, 그리고 군복에 붙이는 이름표까지. 전해 줄 물건들은 한쪽에 챙겨 놓고, 버릴 물건들은 따로 분리했다. 수업 노트를 전해줄 물건 쪽으로 놓으려 하는데 그 사이에서 A4 세장 분량의 프린트물이 떨어졌다.

그 프린트물로 인해 나는 비로소 그를 이해할 수 있었다. 그의 축구 사랑을 비로소 이해할 수 있었다. 자신의 꿈과 미래의 이력을 적어놓은 글, 같이 살 때도 몰랐던 그의 꿈과 열정이 축구에 있었다는 걸 비로소 알게 되었다.


내가 광고 한 줄에 매료되어 카피라이터를 꿈꾸고, 작가를 꿈꾸고, 아직까지 글쓰기를 놓지 못하는 것처럼, 그에게 축구는 미래를 설계하고 열정을 쏟았던, 아직 아쉬움이 남아 있는 꿈이었던 것이다.

이제 두 아이의 아빠가 된 그는 어깨가 무거운 가장이 되어 조기 축구회에 간다.

아직 식지 않은, 미련 가득한 열정으로 두 아이의 아빠가 되어 버린 ‘축구 꿈나무’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