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부모세대와 같이 공감할 수 있는 트롯이 좋다.
작년 이맘때인 것 같다.
친구와 만날 약속을 했는데 늦을 것 같다는 연락을 받고, 이미 약속 장소로 출발했던 차에 친구 회사 앞으로 가 픽업한 적이 있었다.
친구는 차에 타자마자 웃으며 말했다.
"뭐야! 이제 너도 나이가 드는구나?"
"뭔 소리야?"
"노래가 이게 뭐야?"
아뿔싸 트롯!
늘 따로 음악을 켜지 않고 라디오를 들으며 다니는데, 친구가 차에 타는 찰나 라디오에서 구수한 트롯이 흐르고 있었던 것이었다.
친구 말에 은연중에 공감을 해서인지 '왜 하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이 들면 듣는 노래, 트롯!
하지만 요즘은 이런 생각조차도 구시대적인 발상이다.
더 이상 트롯은 옛 것이 아니다. 2020년, 아주 핫한 트렌드가 되었다.
나는 항상 그렇듯 신승훈 오빠야의 명곡들을 들으며 주말을 보내고 있었다.
지난밤, 엄마와의 전화 통화에서 마늘을 심을 거라는 말을 들어 새참을 준비해 갈 요량으로 좋아하는 딸내미 표 계란과자를 굽고 커피를 내렸다.(부모님은 작은 텃밭이 있는 시골집에서 주말을 보내신다.)
과자가 구워지는 달콤한 향과 진한 커피 향, 그리고 감미로운 승훈 오빠야의 목소리.
역시 '발라드의 황제! 신승훈, 역시 가수는 승훈이 오빠야.' 감탄하며 나의 소녀 시절을 함께 해준 그의 노래에 빠져들어갔다.
요즘 어린 친구들에게는 이런 내가 촌스럽겠지?
세대차이 난다며 놀리는 그들에게 난 '니들이 사랑을 알아??' 하겠지.
주문한 치킨도 배달이 되고, 과자도 다 구워져 한 가득 새참 거리를 들고 시골집으로 갔다.
두 분은 음악을 들으며 다정하게 앉아 마늘을 심고 계셨다.
"왔냐?"
아버지는 양손 가득한 딸내미의 등장이 반가웠는지 함박웃음을 지으셨다.
"무슨 노래예요?"
"너네 아빠 하루 종일 저 노래만 듣고 있다."
"무슨 노랜데?"
엄마와 나의 대화에 아버지는 노래 자락을 따라 불렀다.
"아~~ 테스 혀엉~~?"
"훈아 형의 테스 형." 엄마는 웃으며 대답하셨다.
"나훈아의 테스 형?? 아, 들었어요. 근데 테스 형이 뭐야?"
"허허! 얘가 테스 형을 모르네." 아버지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말했다.
아버지는 요즘 이렇게 핫한 걸 모를 수가 있냐는 표정을 지으셨다.
나는 졸지에 트렌드에 뒤처지는 촌스러운 딸이 되었다. 얼마 전까지 임영웅의 유튜브 삼매경에 빠져 계셨던 핫한 우리 아버지, 이번엔 훈아 형의 매력에 빠져 '역시 훈아 형이야!'를 연발하신다.
"크크, 난 집에서 승훈오빠 노래 듣고 왔는데." 나는 웃으며 말했다.
나의 말에 아버지는 더욱 신이 나서 말했다.
"야야! 언제 적 승훈오빠냐!"
트롯이 대세인 요즘이 좋다.
우리 부모세대와 같이 공감할 수 있는 트롯이 좋다.
20대 자녀세대가 좋아하는 임영웅을 부모세대도 같이 좋아할 수 있는 트롯 시대가 좋다.
부모 세대의 빅 스타가 들고 나와 자녀세대의 공감을 사는 '테스 형'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