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모르는 사이에 불쾌감을 주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평소 잔병치레를 많이 하거나 체력이 약하다고 생각한 적 없을 정도로 일상생활하는 데 건강 때문에 방해받는 일은 그다지 없었다. 그 흔한 감기도 독감 예방 주사 한 방이면 별 탈 없이 넘어가곤 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자잘하게 아프고 월요일부터 수요일을 보내고 목요일쯤 되면 체력이 조금씩 떨어져 금요일 저녁에는 방전된 휴대폰처럼 '충전이 필요해'라고 소리를 내고 있음을 느낀다.
건강에 자신했던 내가 부끄럽게 된 것이다.
얼마 전 그런 부끄러운 일이 하나 더 생겼다.
열흘 전부터 속이 안 좋더니, 조금씩 조금씩 체기가 쌓여 주말쯤 되어서는 속이 메스껍고 답답했다.
결국 욕실에 가서 10분 이상을 구토를 하는데 순간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번도 혼자 살면서 곁에 누가 없어서 무섭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는데 새삼 혼자임이 무서웠다. 아무튼 그렇게 속을 비워내고 죽을 먹어야 한다는 생각에 배달 어플로 죽을 시켰다.
죽이 오는 동안 속을 비워내서 그런지 한결 편해지긴 했는데 힘이 쭉 빠져나간 것처럼 늘어지는 것이었다.
죽 배달 오면 먹고 힘 보충하면 괜찮아질 거야 하며 배달이 오기 만을 기다렸다.
드디어 기다리던 죽이 왔고, 나는 소분 포장되어 담긴 쇼핑백을 재빨리 열었다. 짜증이 났다.
소분된 한 죽통의 뚜껑을 덜 닫아서 샌 것이다. 다른 것도 아니고 죽이 새서 여기저기 묻어 쇼핑백 안이 난리가 나 있었다. 물티슈로 닦아 내는 것도 죽이라서 그런지 쉽지 않았다. 힘은 바닥이었고, 먹기만 하는 것도 힘에 부치는 상황에 그런 상태로 배달 온 걸 보니 짜증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하지만 짜증을 남에게 전달하는 것은 히스테리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을,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문구 '기분이 태도가 되면 안 된다'는 말을 새기며 전화를 걸었다.
"저기, 죽 배달시킨 거 지금 받았는데, 뚜껑을 잘 못 닫으셔서 다 새 버렸어요. 이번은 그냥 먹고 다음엔 신경 좀 써주세요."라고 말했다.
그냥 먹을 거 굳이 전활 하지 말았어야 했나? 싶을 정도로 상대방에서는 간단하게 '네'라는 한마디로 답하고 끊어버렸다.
죄송하다는 말이 먼저 아닌가? 죄송하단 말을 들을 생각으로 전화를 한 건 아니지만 전화를 끊으면서 알았다. 내가 다음부터 신경 써달라는 말을 전달하려고 한 전화였지만 죄송하다는 말을 듣고 싶었다는 걸.
뭐 이런 경우가 다 있어하며 씁쓸한 마음으로 여기저기 묻은 죽통을 닦아 냈다.
그리고 얼마 후 느릿하게 업무를 보고 있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배 과장님이 전화를 받았고 네. 네. 만을 하며 공손하게 전화를 받은 후 씁쓸하게 끊으시는 거다.
나는 또 민원인가 해서 전화 내용을 물었다.
"민원은 아닌데, 담 넘어 00 아파트 관리사무소인데 우리 마당 대나무가 그쪽으로 넘어가 있나 봐 베어달라고 뭐라 하시네." 배 과장님은 담담하게 말했다. 하지만 나는 안다. 상대방이 그리 좋게 부탁하며 말하지 않았다는 것을.
"아니, 그쪽 은행나무 우리 쪽으로 넘어와 지저분해도 우리가 청소하고 우리가 베어내고 다 했는데 그건 생각 안 하나?"
"그러게. 두어 번 전화했었는데 내가 깜박한 것도 있고, 아무튼 빨리 베어달라고 성화시네."
그래서였을까? 어제 혼자 동영상 강의를 듣고 있는데 전화가 왔다.
그 옆 아파트 관리사무실이었고, 나무를 제거해 줘서 고맙다고 연거푸 인사를 하였다.
강의가 플레이되고 있어 급하기도 했고, 그 전 통화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도 있어서인지 나는 '네'만 겨우 하고 끊었다.
전화를 끊고, 동영상 강의도 다 듣고 난 후 생각해 보았다.
그분이 나에게 듣고 싶었던 말은 무엇이었을까?
두어 번 전화를 한 것도 걸리고 마지막에 화를 내신 것도 미안해서 사과의 제스처였던 건 아닐까?
불현듯 죽집 아줌마와의 전화 통화가 생각이 났다.
그리고 남들에게 상냥하다고 자신했던 내가 나도 모르는 사이에 불쾌감을 주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