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기간 발버둥치며 존재해나가야 비로소
결과가 좋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개선을 위해 힘쓰지 않는 것은 나태보다는, 자해에 가깝지 않을까? 계절이 옷을 갈아입는 요즘의 나는 자해하는 환자에 가까운 듯 하다. 사실, 나태도 게으름도 자해도, 그 어떤 단어도 현재를 퍽 잘 설명하리라 기대하지 않는다.
노력과 성실은 찬란한 왕관이자 피를 맺는 가시면류관이다. 재능은 그 힘과 빛이 다해도 존재했음에 찬사를 보내지만, 노력과 성실은 오랜 기간 발버둥치며 존재해나가야 비로소 토닥임에 가까운 박수라도 받을 수 있다.
번아웃이라는 말을 싫어한다. 타인에게 진심을 다해 웃음을 띄운 적도 없으면서 자신이 웃음을 팔고 다닌다고 생각하는, 자아비대화와 자기합리화가 역겹게 얽힌 말처럼 느껴지기에 그렇다.
언제쯤 번아웃이라는 말을 나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게 쓸 수 있을까. 큰 불에 휩싸여보지도 못한 채, 난 아직 작은 불씨에 발버둥조차 제대로 차내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