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공에 흩뿌렸던 기도는 분명

물과 곰팡이

by 김민중

동생과 집에서 각자의 시간을 흘리며 한적한 오후를 보낼 때였다. 집 방구석 어딘가 즈음에서 문득 물이 새어 나온다는 느낌이 들었고, 이윽고 소리와 냄새가 들어왔다. 벽지에 물이 젖는 소리, 그리고 벽지에 물이 젖으며 곰팡이가 피는 냄새. 소리와 냄새라기보다는 그 자체로 병과 균과 가난 같은 것들. 다급하게 벽지로 뛰어들어 어찌어찌 벽지의 곰팡이를 닦아낸 것 같다. 그리고 잠깐 조그맣게 허락된 안도를 내쉬며 고개를 돌렸을 때, 다른 벽에서 더 큰 병과 균과 가난이 젖어들고 있었다.

꿈이라는 걸 알아채는 건 몇 번의 눈을 깜박일 만큼의 시간이 필요하다. 도둑질이라도 한 것처럼 거칠고 불규칙하게 뛰는 심장소리가 너무 시끄럽지만 어차피 온몸에는 힘이 주욱 빠져있어 그저 내가 할 것이라곤 심장의 소리가 잦아들기를 오롯이 혼자서 경청하는 것밖에 없다.

세상과 동네와 방이 고요한 밤에는 늘 두 번씩 깨기에 자주, 기절하듯 쓰러지는 낮잠에는 이따금씩 찾아오는 꿈이다. 꿈은 제각각의 색깔이 있는 듯 하지만 내용은 같다. 물과 곰팡이가 찾아든다. 저항할 때도 무력할 때도 있으나 기어코 더 큰 물과 곰팡이가 찾아든다. 꿈은 무의식과 의식의 반영이라고 한다. 이런 꿈이 찾아오는 목적은 모르지만 원인은 알고 있다. 내 경험과 공포가 그 원인일 터였다.

어머니였어야 할 친모가 현금으로 된 전재산을 들고나가 가정을 꾸린 뒤, 꽤나 오랜 기간 동안을 지하 또는 반지하의 공간을 집으로 부르며 집이라고 여겼다. 그리고, 모든 집이 그런지는 알 수 없지만 내가 집이라 여겼던 지하와 반지하의 공간들은 습기와 너무 친하게 지냈다. 돈을 벌기에 비교적 어린 나이에는 집의 관리와 보수가 모두 아버지의 권위이자 보좌인 것 같아 함부로 건들 수도 없었고, 내가 하는 것이라곤 젖어가는 벽과 늘어가는 곰팡이를 보며 동생들과 나의 건강을 염려하고 허공에 기도하는 일밖에 없었다.

삶과 인간과 사회가 주는 크고 작은 생채기를 얻으며 월급이라 불러줄 만한 돈을 받은 뒤로는 습기와 곰팡이를 마주할 일은 없었다. 건물에 이상이 있으면 전문가를 불러 보수를 하면 됐고, 집을 비울 때면 제습기를 강하게 틀어두면 그만이었다. 돈을 벌지 않을 때에는 난치병처럼 느껴지던 것들이 돈을 벌고 나니 적당한 잔병치레라고 느껴지던 것도 그때 즈음이었다. 그런데, 건물에게는 적당한 잔병치레 같은 것들이 내게는 그렇지 않았던 것 같다. 뇌과학과 건강에 관심이 많다. 인간의 몸은 복잡하면서도 단순하다는 것을 알기에 내 몸과 생각을 통제하는 것에 대해 자신감을 지니고 있다. 뇌과학과 건강에 대한 정보가 경험과 공포를 담아내지 못했을 리는 없을 텐데, 내게는 물과 곰팡이가 아직 남아있다.

잠에서 깼을 때 급하게 뛰는 심장소리와 함께 무언가 찾는 것도 없으면서 몸과 주변을 더듬는(어쩌면 토닥이는) 버릇이 언제까지 이어질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곁에 없을 물과 곰팡이는 여전히 아프고 두렵고 공포스러우며,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늘어났을지언정, 할 것이라고는 여전히 없다. 허공에 흩뿌렸던 기도는 분명 물과 곰팡이가 앗아갔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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