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 른, 글

글은 글의 형태를 갖춰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by 김민중

글이 써지지 않았다. 고될 것이 예상되는 일처럼, 글이 그렇게 느껴졌다. 타고난 것, 재능이라는 말을 좋아하지 않기에 자연스레 나의 게으름을 탓하게 됐고, 그럴수록 글은 더 어렵고 멀게 느껴졌다.


이동진의 파이아키아라는 채널을 통해 이동진 님의 생각과 이야기를 도강할 수 있었다. 설거지를 하며, 물소리를 거칠게 내며 듣기에 조금은 더 뻔뻔한 도강이겠다. 사실 이 채널에 대해서는 조금 더 이전부터 알고 있었으나 기업에서 운영하는 브랜딩 콘텐츠라는 괜한 거부감이 있어 듣지 않았는데, 요즈음의 내가 찾는 가장 적합한 콘텐츠라는 생각이 들어 더 이상 멀리할 수 없었다. 글이 써지지 않는다는 얘기를 먼저 하고 이동진 님 이야기를 꺼낸 것은, 이동진 님도 글쓰기를 괴로워하고 방치하고 어려워했다는 사실에 친근감과 공감이 들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였다. 글을 잘 쓰는 사람들은 글이 인생 같고 인생이 글 같은 삶이지 않을까 했던 어린 내 예상과는 달리 그들도 나처럼 글을 괴로워하고 어려워하고 방치했었다. 물론, 기어코 나와 같을 수 없는 그들은 그럼에도 글을 이어갔고 써 내려갔다.


글은 글의 형태를 갖춰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글이 더 어려웠다. 난 매번 새로운 느낌과 새로운 사람을 맞닥뜨리는 사람이 아닌데 글은 형태를 갖추면서도 다 달리 해야 할 것만 같았다. 새로움과 낯섦이라는 친구들하고는 유독 친분이 먼 내게는 이것이 정말 숨 막히는 일이었다. 그렇다고는 해도, 문맥도 내용도 단어도 시간대도 가만히 있지 못하고 날뛰는 이런 글이라도 써 내려가지 않는다면 글과는 남보다 못한 님이 될 것 같아 이렇게 써본다. 타인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라기보다는 일기와 보고에 가까운 글이겠다. 형태를 갖춘 글이 아니기에 글이라는 단어에서 획을 빼거나 뒤집은 극, 른 등의 형식으로 나타내야 할까? 싶은 고민도 잠시 들었으나 이내 거두었다. 글은 글이어야 할 것이다.


어떤 계기로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을 했는지는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다른 사람들보다는 잘 쓸 수 있겠다는 치기와, 찰나에도 수차례 지나가는 감정과 단어들이 갈수록 더 분명해진다는 무음의 아우성이 있었을 것이다.

몇 년 전, 호기롭게 스타트업에서 일하고 있던 때 만난 대학생, 지금은 훌륭한 문화예술 기자가 된 지인이 있다. 아직 내겐 대학생 혹은 그보다 여려 보이는 그녀는 글에 대해 횡설수설하던 나에게 그런 말을 했다. "글을 배설하듯이 써보세요. 그냥 써보는 거죠". 담뱃재는 하강시키고 말은 수평하게. 내가 글과 거리가 멀어질 때마다 이 말이 아직도 머릿속에서 재생된다는 걸 조만간 연락해서 전해야겠다. 그 말 덕분에 글을 쓰고 있고 진땀 빼고 있다고.


내가 겪고 있는 증상을 요즘은 더 쉽게 꺼내게 됐다. 술이 가까워져서 취기에 그랬을 수도, 체념이나 의욕이 묻어났을 수도 있겠다. 어쩌면 오랜만에 만난 아빠의 말마따나 증상이 얼굴에 대놓고 드러난 사람이라서 그랬을 수도 있겠다. 곁을 지켜주는 지인들에게 감사함은 늘 지니고 있었지만 증상을 겪고 있을 땐 다소 의외인 사람들에게도 감사함을 느꼈다. 대뜸 죽지 말라고 말하며 진심 어린 눈빛을 보내는 사람(원래 그런 사람이 아니다), 펴져있기보다는 꽉 쥐는 게 익숙해진 내 손을 잠깐잠깐 몇 번 잡아주는 사람, 밝고 친절한 모습으로 갑자기 연락해 전시를 같이 둘러봐준 사람, 헤어지고 각자 집에 갈 때쯤 장문의 텍스트를 보내주는 사람, 바쁜 와중에 어떻게든 시간을 내 식사를 함께해 주는 사람 등 증상을 밝힌 뒤로는 많은 사람들이 발걸음을 급히 향해주고 마주 보는 약속을 급히 잡아줬다. 그들의 이름만큼이나 온기와 의미가 느껴지는 몸짓에 한겨울임에도 온기를 느끼곤 한다.


의도한 것은 아니었는데 충동적으로 아빠에게도 증상을 말했고, 2개월 동안 대화가 단절된 막냇동생은 4일 뒤면 출가한다. 인간관계는 점점 속도감 있게 변화를 드러낸다. 아이러니하게도 진정으로 혼자였던 적이 없던 내게 며칠 뒤에는 많은 변화들이 찾아올 것 같고, 서툰 대처는 하지 않으려고 한다.


익숙해진 불면증과 밤을 같이 보내며 넘겨댄 쇼츠에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라는 만화가 떴다. 최종 보스와 싸우는 마지막 결전 부분 같았는데 최종 보스가 주인공을 가리키며 한 말이 꽤 인상 깊게 남는다. '나약한 강함', 나약했기에 홀로 할 수 없었던 것을 동료를 만들어가며 결국 이루어낸 강함을 얘기한 것 같다. 또는 나약했기에 이겨내거나 극복하기보다는 버텨낸 것의 강함을 말한 것일 수도 있겠다. 그 어느 사람보다 나약한 사람임을 자칭하는 난 어떤 방법이든 선택해야 할 것이다. 버텨내면 서사와 이야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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