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지 않을 방식

강화포도책방

by 아직 때때로

동네의 작은 책방들이
하나, 둘 사라진다
문이 닫힌 곳마다
말못할 사연들이
저녁처럼 남는다

그 말없음 곁에서
포도책방은
오늘도 제 시간에 불을 켜고
제 높이로 문을 연다
해가 지는 방향을
오래 바라본 자리처럼


그래서 나는 여기서
무언가를 얻으려 하지 않았다
고르지 않아도 되었고
설명하지 않아도
머물 수 있었다

말없이 서 있다가
그대로 나가도
하루가 줄어들지 않는 곳
그 점이
이상하리만큼 오래 남았다

책들은
서로를 재촉하지 않았고
공간은
사람의 걸음을 앞서지 않았다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게

그 사이로
들어왔다가 나가는 몸들
어떤 침묵은
가볍게 놓였고
어떤 말은
굳이 묻히지 않았다


이곳은
앞으로의 말을 세우지 않는다
다만 오늘의 문을 열어 두고
필요한 만큼의 불빛으로
자리를 지킨다

그렇게
하루가 하루를 보태며
조용히 지나갔다

돌아보면
이곳에서 내가 받은 것은
문장이 아니라
걸음의 간격
늦어져도 괜찮다는
작은 안심이었다

열두 달의 끝날,
이 조용함을 가능하게 한
여러 손길의 온기를 떠올린다

책과 사람과 시간이
서로를 서두르지 않는 동안
이 문은
내일도 같은 자리에서 열린다

이 고요한 지속에
한 해의 고마움을
함께 하신 모든 분들께
조용히 내려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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