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가능한 모든 길을 검토했다.
높은 곳,
설득력 있는 연설,
기적의 연속 상영,
충분히 성공적인 결말.
그러나
그 목록 어디에도
사람을 끝까지 설명하는 항목은 없었다.
그래서 그는
가장 비효율적인 길을 골랐다.
오해가 누적되고,
증거가 불리하며,
증인이 침묵하는 쪽.
그 길에서는
정의가 스스로를 변호하지 못하고,
선함은
통계적으로 설득력이 없다.
십자가는
상징이 아니었다.
상징으로는 너무 무거웠다.
은유라기엔
살과 뼈가 너무 많았다.
그는
사람들이 피하려고 만든 모든 경우의 수 —
패배, 수치, 포기,
“이쯤에서 멈췄어야 했다”는 판단 —
그 한가운데를 통과했다.
누군가는 말한다.
다른 방법도 있었을 것이라고.
그러나 다른 방법은
항상
사람을 남겨두고 지나간다.
그 길은
구원보다 먼저
노출을 선택했다.
인간이 무엇인지
숨김없이 드러나는 쪽을.
그래서 지금도
세상은 빠른 길을 만들고,
그 길가에
이 선택을 불편하게 세워 둔다.
이해되지 않도록.
합리화되지 않도록.
다만
지워지지 않도록.
그는
승리를 증명하지 않았다.
대신
도망치지 않는 방식을 남겼다.
그것이
그가 선택한 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