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위 공감과 위로라는 것은 고통을 견딘 사람의 것이 아니라 고통을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의 언어다. 그것은 늘 잘 정돈된 공간에서 시작된다. 흰 벽, 낮은 음악, 말하기에 안전한 거리. 여기서 상처는 너무 깊어서는 안 되고 너무 오래되어서도 안 된다. 지금, 이 계절에 팔릴 수 있을 만큼만. 울지 않되 너무 강하지도 말 것. 나는 종종 생각한다. 이 위로들이 정말 누군가를 살려내는지, 아니면 살아 있는 척하도록 가르치는 것인지.
밤이 오면 모든 문장은 닫히고 책들은 조용히 제자리에 돌아간다. 그때 남는 것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혼자 앉아 있는 한 사람의 호흡이다.
누군가 묻는다. “그때 힘들지 않으셨어요?” 대답은 이미 정해져 있다. “힘들었지만, 그 덕분에 성장했습니다.” 여기서 성장하지 못한 자는 말할 기회를 얻지 못한다. 울음은 증거가 되지 못하고 침묵은 데이터가 없다. 공감은 클릭되고 위로는 공유된다. 그러나 정작 그 시간에 누군가의 옆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은 통계에 잡히지 않는다. 이 모든 것을 나는 알고 있으면서도 오늘 또 하나의 문장을 읽는다. 왜냐하면 아무것도 없는 것보다는 이 허위라도 손에 쥐고 싶어서.
위로는 많되
함께 우는 이는 드물다
말은 넘치되
침묵의 자리는 비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