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예수를 사랑했다.
그래서 더 믿을 수 없었다.
사랑은 늘 먼저
최악을 계산한다.
다시는 부르지 못할 이름을
미리 연습해 본다.
토마스는
기적보다
실패에 익숙한 사람이었다.
죽음이 얼마나 완전한지,
사람이 얼마나 쉽게 사라지는지
이미 알고 있었다.
예수가 죽었다는 소식은
놀라움이 아니라
확인에 가까웠다.
세상은 늘
그렇게 끝났으므로.
그러니 부활은
희망이 아니라
잔인한 소문처럼 들렸다.
또 한 번 기대하라고,
또 한 번 무너지라고
부추기는 이야기.
그는 알고 있었다.
믿음이 틀릴 때
상처는 더 깊어진다는 것을.
그래서 그는
손을 요구했다.
눈물이 아니라
체온을.
말이 아니라
찢어진 살을.
그의 의심은
신을 시험한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지키려는
마지막 방어였다.
다시 사랑할 수 있을지,
다시 잃어도 견딜 수 있을지
스스로에게 묻는
고독한 질문.
부활한 예수는
그 질문을 꾸짖지 않았다.
아무 말 없이
몸을 내어주었다.
그 순간 토마스는 깨달았다.
신은
강한 믿음을 원한 것이 아니라
부서진 마음을
데리고 올 수 있는 용기를
기다렸다는 것을.
그래서 그의 고백은
승리처럼 울리지 않는다.
그것은
한 번 완전히 무너진 사람이
다시 서는 소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