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리키는 사람 – 나오너라

by 아직 때때로



최안나 수녀님이 오래전에 엮고 집필하셨던 《요한복음 해설서-나오너라》를 읽으면서...

세례자 요한 - "가리키는 사람, 나오너라"


그는 언제나 먼저 나타났지만, 중심에 서지는 않았다. 사람들이 모이기 전부터 그는 이미 물러날 자리를 알고 있었다. 자신을 드러내기보다, 오실 분의 길을 준비하는 것이 자신의 사명임을 알고 있었다. 거친 옷차림으로 강가에 서 있던 그는 위로를 주지 않았다. 그의 목소리는 삶을 달래기보다, 마음 깊이 묻는다.“이 길로 오고 있는가, 아니면 스스로의 길을 따라 헤매고 있는가.”조금 고쳐 사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지금까지 걸어온 길 전체를 하느님 앞에서 돌아보아야 한다고 그는 조용히 보여주었다.

그는 씻기는 일을 했다. 그러나 그가 준 것은 구원이 아니라, 회개의 시작의 표징이었다. 차가운 물 속에서, 사람들은 자신을 숨기고 있던 삶의 무게를 느꼈다. 그는 누구의 죄를 헤아리지 않았고, 누구도 대신 용서하지 않았다. 다만 물속으로 들어가게 했고, 다시 나오게 했다. 짧은 순간이지만, 마음은 이미 달라질 준비를 시작한다. 그것이면 충분하였다. 그의 손길은 곧 하느님께 마음을 돌리는 길이었다.

사람들이 그의 정체를 물을 때마다 그는 자신을 앞세우지 않았다.

이름을 늘리지 않았고, 직함을 쌓지 않았다. 그는 하나의 소리만 남겼다. 울렸다가 사라지지만, 마음의 방향을 바꾸는 소리. 오래 머물지 않고, 오래 기억되기를 바라지 않았다. 누군가 다른 길로 발걸음을 옮긴다면, 그것으로 충분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자신보다 늦게 오신 분을 바라보았다. 설명할 말은 많았지만, 그는 단 하나의 몸짓만 남겼다. 빛을 붙잡지 않고, 빛 앞에서 자신의 그림자를 확인할 뿐이었다. 자신이 아니라는 고백은 패배가 아니라, 기쁨과 평안이었다. 사명이 끝났음을 아는 평안, 이제 모든 시선이 오직 그리스도께로 향한다는 안도.

그가 가리킨 분은 다른 방식으로 다가오셨다. 외침이 아니라 함께 걷는 삶으로, 판단이 아니라 자비로. 준비의 물을 건너, 사람들의 삶 한가운데로 들어오신 분. 죄를 드러내기보다 짊어지셨고, 돌아서라고 외치기보다 끝까지 함께 가는 길을 보여주셨다. 하나는 문 앞에 서 있었고, 다른 한 분은 그 문을 여시고 삶 안으로 들어오셨다.

앞선 이는 멈출 줄 알았고, 뒤에 오신 분은 끝까지 머무르셨다. 앞선 이는 줄어드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고, 뒤에 오신 분은 작아진 이들을 하나도 놓치지 않으셨다. 한 사람의 역할은 구원을 준비하는 자리였고, 다른 한 분의 사명은 구원을 완성하는 자리였다. 앞선 이는 물러나는 자리에서 가장 분명해졌고, 뒤에 오신 분은 내어주심 안에서 가장 또렷해졌다.

그는 결국 사라졌고, 자신이 남아야 할 이유를 만들지 않았다. 그가 남긴 것은 이름이 아니라 증언, 업적이 아니라 길을 가리킴이었다. 그 증언은 언제나 자신을 넘어, 오직 한 분을 향해 있었다.

오늘 우리는 여전히 많은 말을 하고, 많은 이름을 원하며, 중심에 서고 싶어 한다. 그러나 그의 삶은 조용히 묻는다. 자신을 앞세우지 않고도 그리스도를 가리킬 수 있는가. 자신의 빛을 낮추어 참 빛이 드러나게 할 수 있는가. 신앙은 붙잡는 일이 아니라, 비워내어 맡기는 일이며, 구원은 인간의 행위가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진 은총임을 우리는 지금도 그 질문 앞에, 말씀과 함께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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