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관에 동의하지 않은 사이

by 아직 때때로





우리가 서로를 사랑했다고

적어도 그렇게 말할 수 있는 날들이 있었다


눅눅한 비가 내리던 오후

당신은 우산을 들고 있었고

나는 젖지 않았다


말 없이 앉아 있었으나

무언가 오갔다고 믿었던 저녁


가끔 당신이 늦었고

나는 그냥 기다렸다.

왜 그런지는 묻지 않았다


좋아한다고 말한 적은 있지만

그 말이 무엇을 바꾸는지

생각하지는 않았다


언제부터 였을까

보이지 않는 먼지 같은 것들이

우리 사이의 식탁 위에 내려앉았다


당신은 가끔 뒷모습을 보이며 멀어졌다

나는 그 모습이 풍경이 될 때까지 묻지 않았고

그게 배려인 줄 알았다


상처 받지 않을 만큼의 거리

가까워질수록 우리는 브레이크를 밟는 법부터 배웠고

그 이유를 끝내 입 밖으로 내지 않았다.


당신이 말이 없을 때

나는 가만히 있었다.

동의한 적 없는 계약서의 조항들처럼


무엇을 기다렸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같은 자리에

각자의 속도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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