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춤추는나뭇가지 Oct 06. 2020

죽음은 침묵 속에서 다시 살아난다

《침묵 박물관》죽음의 완결을 저지할 그 무엇 

한 사람이 이 세상에 살았다는 증거가 될 수 있는 물건이 있다면 어떤 것이어야 할까?

무엇으로 그 사람의 존재했었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을까?


"그 육체가 틀림없이 존재했다는 증거를 가장 생생하고 충실하게 기억하는 물건... 그게 없으면 살아온 세월이 송두리째 무너져 버리는 그 무엇, 죽음의 완결을 영원히 저지할 수 있는 그 무엇" 이 소설에서 유품이 가지는 의미다.  


죽은 사람이 살았던 증거, 그를 대표하는 물건인 한 사람의 유품을 수집해 전시하는 <침묵 박물관>

가장 그 사람을 잘 말해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이 없으면 안 되는 것, 다른 사람에게서는 없는 것,

 " 이 세상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그러나 반드시 필요한 것" 그것이 무엇일까.


박물관 건립을 위해 의뢰받는 "나"는 외딴 마을의 저택을 찾아간다. 그 저택에서 의뢰인인 노인이 평생 수집해온  유품을 정리하고 보존하고 전시할 박물관을 만드는 일을 맡게 된다. 그러나 이 마을로 이사를 오고 나서  마을에서 살인 사건이 일어나고 유품을 수집하는 일까지 도맡게 되면서 무척 바빠진다. 유족에게서 유품을 건네받는 것이 아니라 대부분은 몰래  뭔가를 찾아야 하는 것이라 힘든 일이다.  


돌아가신 어머니를 기억하기 위해 가지고 다니던 어머니의 책 <안네의 일기>와 형에게 물려받은 현미경을 

박물관에 같이 전시하게 된다.  유품과 함께 영원히 존재한다는 안도감, 죽음으로써 육체와 함께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침묵 속에 영원히 존재하게 된다. 그것은 산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살아있다는 뜻이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고 했지만, 이름을 남긴다는 것은 뭔가 그럴듯한 업적을 남긴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름을 남길 만큼 그럴듯한 삶을 살지 못한 그저 그렇게 평범한 삶을 살았던 사람들의 존재도 가치와 의미가 있다. 지구 상에 존재했던 생명의 거의 대부분은 평범한 사람들이며 그 평범한 삶을 살고 있는 나에게도 존재 가치가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책 속 한 줄의 문장이 주는 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