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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이 친구가 될 수도 있던 때

by 춤추는나뭇가지

소나무 숲길의 어둠은 짙었다. 어디선가 무서운 짐승이 휙 하고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차가운 밤공기에 뺨은 싸늘해졌고, 주먹을 꼭 쥔 손바닥에는 땀이 흥건히 고였다. 그럼에도 나는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오늘도 밤길 끝에서 엄마와 마주치길 바라며 걷고 있었으니까.


일곱 살 어린 나이에, 나는 장에 갔다 늦어진 엄마를 마중하러 혼자 집을 나섰다. 해는 이미 지고, 골목길엔 어둠이 내려앉아 있었다. 그 길은 무덤가를 지나고, 마을을 휘도는 소나무 숲을 지나야 하는 길이었다. 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귀신은 없어, 귀신은 없어.’ 떨리는 작은 소리로 불안을 다독이며 어둠 속을 걸었다. 사랑받고 싶은 마음 하나로. 그날따라 유난히, 엄마가 다정하게 안아주며 말해줄 것만 같았다.


“우리 딸, 고생했네. 엄마 마중까지 나왔구나. 아이고 착한 딸, 역시 큰딸이야.”

그 말이 듣고 싶었다.

두려움에 작은 어깨가 안쪽으로 말아들며 가슴이 조여올 때면, 나는 하늘을 올려다봤다.


마당을 나설 때도, 골목을 지날 때도, 소나무 숲길을 지날 때도, 달은 언제나 내 머리 위에 떠 있었다. 내가 멈추면 달도 멈추고, 내가 걸으면 달도 나를 따라왔다. 그 사실이 어린 나에게 묘한 안도감을 주었다. 무서움 속에서도 달빛이 나를 비추고 있다는 것만으로 마음이 놓였다. 달은 늘 나를 지켜주는 존재 같았다. 아무도 내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을 때, 달만은 묵묵히 나와 함께 걸어주었다.


그때 나는 달과 비밀을 나누는 아이였다. 동생에게만 애정 어린 시선을 보내는 엄마에 대한 서운함과 동생에 대한 질투도 달에게 속삭였다. 달의 차가운 빛은 사람의 따뜻한 온기만큼 내 마음을 감싸주었고, 그 조용한 침묵은 오히려 내 불안을 잠재워주었다.


사람들 앞에서 나는 언제나 ‘어른스러운 아이’여야 했다. 아기를 돌보고, 집안일을 거들고, 밤길을 나서 엄마를 마중하는 나는 그저 ‘아이’로 머물 수 없었다. 그래서였을까. 사랑받고 싶다는 갈망은 늘 채워지지 않았다. 다른 형제가 부모의 관심을 받는 순간이 내게는 가장 참기 어려운 시간이었다. 특히 막내가 부모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듯 보일 때면, 질투와 미움이 한꺼번에 쏟아졌다.


“왜 나는 저런 사랑을 받지 못할까.” 그 질문이 어린 마음속에 깊게 박혔다.

갈증처럼 남은 사랑의 결핍은, 사랑받는 동생에 대한 미움으로 변했고, 나는 스스로 더 메말라 갔다. 하지만 돌아보면, 그 모든 시간 속에서 내 곁에 머문 오랜 벗이 있었다. 바로 달이었다.


엄마를 기다리며 걸었던 밤길, 무서움을 꾹꾹 눌러 삼키며 지나던 소나무 숲길, 혼자 속삭이던 외로움—그 모든 것을 달빛이 알고 있었다. 달은 내 슬픔과 두려움, 질투와 고독을 전부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때마다 조용히 속삭였다.


“너는 혼자가 아니야.”

그래, 너는 혼자가 아니야.


어쩌면 지금까지도, 나는 그 달빛의 기억에 기대어 살아오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엄마의 따뜻한 눈빛 대신, 달의 차가운 빛이 오히려 더 편안하게 느껴졌던 그 시절. 그 달은 지금도 여전히 하늘에 떠 있다. 누구에게나 어린 시절의 달빛 같은 무언가가 있다. 누군가에게는 책이었고, 누군가에게는 창밖의 나무였으며, 누군가에게는 정말 달빛 그 자체였을 것이다.


사랑받지 못한 아이는, 결핍을 견디기 위해 자신만의 빛을 찾아낸다. 나에게 그건, 언제나 달이었다. 지금도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나는 그 시절의 나를 지켜주던 그 달을 찾는다. 그럴 때면, 마음 한 구석이, 아주 조용히 따뜻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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