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의 『죽음과 죽어감』을 읽고
"마침내 우리는 우리 자신의 죽음이라는 진실을 대면하고 수용함으로써 평화를 -국가 간의 평화는 물론이고 우리 내면의 평화까지도 - 얻을 수 있다."
작별인사도 못했던 죽음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10년이라는 시간이 가까워오고 있다. 아직도 아버지가 돌아가셨는지 실감이 나지 않는다. 어디에도 아버지는 계시지 않고 볼 수 없다는 것을 알 뿐이다. 그렇게 슬퍼하지도 않았고 지금도 슬프다는 느낌이 없다. 어디 많이 떨어진 곳에 여행을 가있는 것만 갔다.
왜 그럴까 생각을 해보았다. 아버지와 그리 나쁜 사이도 아니었고, 아버지가 나쁜 사람도 아니었다. 대부분이 그렇듯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 사회에서 죽음을 앞둔 사람과 작별 인사를 하는 것이 일반적인 일은 아니다. 나도 아버지와 인사를 하지 못했다. 아버지의 거친 호흡만 지켜보았고 점점 느려지다 호흡이 멈추고 그게 아버지의 삶이 그것으로 끝나는 거였다.
너무 간단하고 짧은 순간이었다. 건강의 이유로 병상에 있다 죽음을 맞이했든, 살만큼 살고 나이 들어 죽음을 맞이했든 똑같다. 아무리 나이 들어도 죽음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사람은 많지 않다.
죽음을 앞둔 환자의 가족은 나를 떠나지 말라고, 나만 여기 남겨두면 안 된다고 간절하게 부탁한다. 지금 가면 안 된다고 울며 매달린다. 오랜 병으로 요양 병원에도 오래 있었던 아버지에게 그런 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아버지와 편안하게 가시라는 말은 못 했다. 아버지도 남겨지는 가족에게 아무런 인사를 하지 않았다.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죽음을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기까지 5단계
“나는 누구나 실제로 죽음과 맞닥뜨리기 전에 평상시에 습관적으로 죽음과 죽어감에 대해 생각해보아야 한다고 믿는다.” (p 73)
『죽음과 죽어감』은 죽음이라는 것을 부정하고 멀리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와 가까이 있는 것이며 삶의 일부라는 것을 알려준다. 평소에 죽음에 대해 생각하고 이해했다면 삶의 가치도 달라질 것이다. 또한 정말 죽음에 처했을 때 남은 시간을 가치 있게 보낼 수 있다. 내 삶은 물론 주변 사람들과도 제대로 된 정리를 할 수 있다.
“병을 앓는 시간 동안 자신의 죽음과 죽어감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다면, 실제로 죽음과 조우하게 되건 혹은 삶이 연장되건 그 시간이 축복일 수 도 있다.”(p 73)
평소에 죽음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못했더라도 건강이 좋지 않거나 다쳐서 아픈 동안 자신의 죽음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다면 행운이다. 끝까지 삶에 미련을 보이고 억울해하다 죽는 것보다 미리 억울할만한 일이 생기지 않도록 내가 내 삶을 주도할 수 있다.
저자인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는 인간의 죽음에 대한 연구로 평생을 바쳤다. 죽음에 대해 연구하고 죽음을 앞둔 사람들을 도우면서 그가 얻은 것들은 값진 삶이었다.
죽음을 앞둔 환자들을 만나면서 죽음의 5단계를 정립하게 되었다. 즉 자신의 죽음을 알게 됐을 때 심리의 변화 상태에 따라 태도도 달라진다. 즉 부정과 고립-분노-협상-우울-수용의 과정을 거치게 되는데 죽음을 사실로 받아들이는 수용 단계에 이르면 자신이나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도 돌아보고 정리하며 못 다했던 마무리를 하게 된다. 이 과정을 거치면서 죽음을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게 되고 편안하게 죽음을 맞이하기 위한 준비를 갖추어 간다.
죽음도 품위 있게 받아들일 수 있을 때까지
병원에 가서 오랜 시간 대기하다 담당 의사를 만나면 인간으로서 대하는 느낌보다는 감정 없이 알 수 없는 단어와 수치에 초점이 맞추어진 일방적인 의사의 말만 듣다가 나오곤 한다. 언젠가 눈이 안 좋아 안과에 갔다. 내 눈의 상태에 대해 의사에게 설명을 하려고 몇 마디 하자 의사는 언짢은 표정(개인적인 느낌이었을 수도 있다)으로 말하지 말고 자기 말을 들으라고 했다.
환자의 말을 충분히 들어주는 의사는 많지 않다. 죽음을 앞둔 환자들을 인터뷰하는 과정을 보면 하고 싶은 말을 못 해 죽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도 있었다. 가족 중 누군가에게 가지고 있는 죄책감, 아니면 억울함, 언젠가 꼬여버린 관계를 해결하지 못하고 남아있는 찝찝함 등. 죽기 전에 이 생에서 해결하지 못한 문제들을 마음에 품고 있었다.
마음에 부담이 되는 이러한 것들을 다 이야기하고 나면 편안하게 떠날 수 있다는 것을 퀴블러는 인터뷰하면서 알게 되었고 그러한 것을 이 책에 싣고 있다. 환자의 하고 싶은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고 나면 대부분 환자들은 다시 품위를 찾고 자신의 죽음을 물론 삶도 가치 있게 받아들이게 된다.
“전쟁, 폭동, 갈수록 늘어나는 살인과 각종 범죄들은 어쩌면 모두 죽음을 기꺼이, 품위 있게 받아들이는 우리 자신의 능력이 퇴화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지표일 수도 있다. 우리는 개별적 존재로서의 인간으로 돌아가서 다시 처음부터, 비극적이지만 피할 수 없는 죽음이라는 사건을 좀 더 이성적이고 두려움 없이 이해하고 직시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p 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