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괜찮은 줄 알았다.
별일 없겠거니,
어제처럼 무던히 지나가겠지 싶었다.
그런데 작은 실수 하나에
모든 게 무너졌다.
순식간이었다.
회의실 안엔
차가운 말들만 가득했고
내가 앉아 있는 자리는
눈에 띄게 작아졌다.
몸을 조금만 움직여도
주변의 눈치를 봐야 할 것 같았다.
그 자리에 있었던 누구도
나를 미워하진 않았을 거다.
그런데도 나는
그 자리에서 혼자 미움받는 기분이 들었다.
창밖엔
밤비가 조용히 내리고 있었다.
유리창을 타고 천천히 흐르는 그 물줄기에
내 마음까지 흠뻑 젖는 느낌이었다.
누구에게 털어놓을 수도 없었다.
그냥 또 하루를 삼켰다.
한 번,
그리고 또 한 번.
그러다 보면
뭔가 조금은 나아질 거라 믿었는데
이제는 그조차 잘 모르겠다.
그리고 그날도
야근이었다.
이번 주만 벌써 네 번째다.
웃긴 건
일이 많아서 야근을 하는 게 아니라는 거다.
정확히 말하면
내 일이 아니라
남의 일까지 떠안아서 그렇다.
도대체 왜 자꾸 나한테까지 돌아오는 걸까.
말을 아끼고 묵묵히 한다고
그게 자격이 되는 걸까?
처음엔 “이번 한 번만 도와줘”였는데
그게 몇 번째였는지는
이제 나도 잘 모른다.
이유는 묻지 않는다.
대신 야근은 내가 한다.
매일, 묵묵히.
회의는 끝났고
사무실 불은 꺼졌고
사람들은 다 퇴근했다.
그런데 나는
아직 자리에 앉아 있다.
오늘도 정작 내 일은 손도 못 댄 채
다른 사람의 마감을 챙기고 있다.
일찍 퇴근한 사람들 SNS엔
맥주 사진이 올라오고
야경 사진이 올라오고
그 속에
나는 없다.
모니터 불빛에 비친 내 얼굴을 보면서
잠깐 그런 생각을 했다.
“나, 지금 왜 이러고 있지?”
딱히 누가 나쁘다기보단
그냥,
이게 너무 오래 반복되다 보니
이제는 내 탓 같기도 하고
그래서
괜히 눈물이 난다.
억울해서라기보단
허무해서.
불공평한 건 늘 있었지만
그걸 견디는 내가
점점 무뎌지고 있다는 게
더 슬프다.
누가 나 좀 불러줬으면 좋겠다.
“그만해도 돼”라고.
“이건 네 일이 아니야”라고.
근데 아무도 그런 말을 해주지 않으니까
오늘도 그냥
묵묵히 이 자리에 남아 있다.
불 꺼진 사무실에
나 혼자 남은 채로.
그러다 문득,
너는 아무 말 없이 다가왔다.
내가 부르지도 않았는데
그냥, 조용히 내 옆에 앉았다.
시선도 없었고
말도 없었는데
나는 알 수 있었다.
너는
내가 괜찮지 않다는 걸
그냥 알고 있었다.
아무 말 없이
나를 안았다.
사무실 공기보다
훨씬 따뜻하게
훨씬 조용하게.
그 순간
꾹 참고 있었던 감정이
조금씩
흘러내렸다.
눈물인지,
후회인지,
그냥 오래 쌓여 있던 것들인지
구분할 수 없었지만
그게 무너지는 순간만큼은
진심이었다.
말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이
내 옆에 있다는 게
참 이상하게
살아 있는 기분을 주었다.
그렇게,
불 꺼진 사무실에서
나 혼자 남았던 밤은
더 이상 혼자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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