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기는 생각보다 짧았다.
하지만 내 마음은 아주 멀리까지 온 것 같았다.
제주에 도착하자마자
가장 먼저 느낀 건 ‘소리’였다.
자동문 닫히는 소리,
모니터에서 울리던 알림음,
복사기 돌아가는 기계음이
모두 사라진 세상.
대신
바람 소리,
이따금 스쿠터가 지나가는 소리,
그리고 고요한 마음의 숨소리.
숙소는 골목 끝에 있었다.
작고 낡았지만, 햇빛이 잘 들었다.
그 방에는 시계도 없고
TV도 없고
문자나 알림을 알려주는 벨소리도 없었다.
처음엔 어색했다.
너무 조용해서
무슨 일이 잘못된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커튼을 걷었다.
햇살이 바닥에 천천히 깔렸다.
그 위에 몸을 뉘였다.
어디에도 급하지 않은 자세로
오랜만에 가만히 누웠다.
‘이렇게 누워 있어도 괜찮을까?’
문득 떠오른 질문.
회사에선 이 시간에 보고서를 쓰고 있었겠지.
그런데도 지금,
나는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있었다.
그리고 아무도 나를 뭐라 하지 않았다.
점심이 지나고,
근처 바닷가까지 걸었다.
텅 빈 해변엔 사람도 거의 없었고,
작은 파도가 일정한 간격으로 밀려왔다.
나는 그 물소리를 따라 걷고,
걷다 멈추고,
멈추다 앉았다.
그게 다였다.
그날, 처음으로 깨달았다.
내가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해
얼마나 애쓰며 살았는지.
일을 하지 않아도
나는 여전히 나였고,
조금은 괜찮은 사람이었다.
뭔가를 끊임없이 해내지 않아도
나는 그 자리에 그냥 존재할 수 있었다.
‘아무도 나를 감시하지 않는 하루’
그건 생각보다 낯설고,
생각보다 따뜻했다.
그날 밤은 오래도록 환했고,
그 환한 밤 속에서
나는 조금 덜 불안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