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 후, 제주에서 내가 다시 태어난 이야기
아무도 울지 않았다.
사직서를 냈을 때도, 마지막 퇴근길에도, 박수를 치는 사람도, 말을 아끼는 사람도 없었다.
나조차도 담담했다.
어쩌면 그게 더 서글펐다. 그토록 오래 다녔던 곳인데, 마치 하루 쉬는 것처럼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어쩌다 이렇게 된 걸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가 정해준 자리에 앉아, 정해준 일을 하며, 정해진 시간에 웃는 사람.
그게 내가 된다는 건, 누구도 가르쳐주지 않았는데.
그렇게 사는 게 어른이라는 걸,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는데
나는 너무도 자연스럽게 그 어른이 되어 있었다.
하루하루는 정말 바빴다.
모든 걸 열심히 했다.
회의에서 누구보다 빠르게 정리했고, 이메일 답장도 놓치지 않았다.
회사에선 '일 잘하는 사람'이라고 불렸고, 나는 그 말이 싫지 않았다.
어쩌면 그 말 하나에 내가 계속 버틴 걸지도 모른다.
'쓸모 있는 사람'이라는 이름표.
그게 떨어지면, 나는 도대체 뭐가 될까 봐.
그런데 이상했다.
일을 잘하고 있는데, 점점 내가 사라지는 기분이었다.
아침마다 거울 앞에 서면, '어제보다 피곤한 나'만 보였다.
말은 줄었고, 표정도 줄었고, 웃음도 점점 작아졌다.
무언가를 계속 하고 있는데,
정작 아무것도 이루고 있지 않은 느낌.
내 안에 누군가 조용히 울고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멈추기로 했다.
사직서를 내고, 정해지지 않은 시간으로 들어가 보기로 했다.
어디로든 도망치듯 떠나고 싶었고, 그래서 제주로 갔다.
처음엔 비행기 표도 망설였고, 짐도 몇 번이나 쌌다 풀었다.
근데 이상하게도, 떠나는 날엔 마음이 아주 고요했다.
“이제 시작이구나.” 그런 기분이었다.
그곳엔 시계가 없었다.
TV도 없고, 스마트폰 알림도 꺼두었다.
시간은 느려졌고, 마음도 느려졌다.
하루는 아주 길었고, 저녁은 길게 붉었다.
나는 오랜만에 내 감정에 이름을 붙이기 시작했다.
'서운하다', '외롭다', '안심이다', '괜찮다'
어쩌면 처음으로 내 감정과 말을 나누기 시작한 것 같다.
나는 이제, 나를 다시 배워야 한다.
‘어떻게 사는 게 나답지?’라는 질문 앞에서
서두르지 않고, 조급해하지 않고,
천천히, 찬찬히, 나를 살아보려 한다.
누군가에겐 별 일 아닐 수 있지만
내겐 인생이 바뀌는 경험이었다.
퇴사는 끝이 아니라,
조금 늦게라도 나를 사랑해보겠다는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