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사직서를 낼 때 아무도 울지 않았다

by Kkuek

1장

“사직서를 낼 때 아무도 울지 않았다”


책상 위에는 늘 그렇듯, 미팅 메모와 커피잔이 놓여 있었다.
모니터엔 그날의 할 일 목록이 떠 있었고,
그 아래쪽엔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않은 문서 하나가 조용히 켜져 있었다.
이름: 사직서.hwp

며칠을 망설였다.


다 쓰고도 저장하지 않았고, 저장해놓고도 다시 열어보지 않았다.
그 문서를 보낼 때까지, 나는 여전히 그 회사의 사람이었다.

그러다 어느 날, 정말 아무 일도 아닌 듯 메일을 보냈다.
첨부파일은 ‘사직서_최종.hwp’
메일 제목은 “퇴사 관련 안내드립니다.”
문장을 몇 번이나 지웠다 다시 썼고,
결국 가장 건조한 말만 남겼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감정은 넣지 않았다.
그리고 보내기를 눌렀다.


퇴사 통보 후, 회사는 조용했다.
인사팀에서 남은 연차 계산서를 보냈고,
팀장은 “생각해본 거냐”며 물었지만
그 물음도 오래 가지 않았다.

회의에선 여전히 내가 발표했고,
프로젝트 마감도 내가 맞췄다.
퇴사한다고 해서 누군가가 특별히 챙겨주지도, 건드리지도 않았다.
아무도 내게 관심을 갖지 않았다.
그게 가장 외로웠다.


마지막 출근 날엔 책상 서랍을 정리했다.
포스트잇 몇 장, 유통기한 지난 영양제,
어디선가 받은 손톱깎이 하나.

이것들이 내가 여기에 있었던 흔적이었다.

누구도 박수를 치지 않았다.
누구도 내 등을 두드려주지 않았다.
“아쉽다”는 말도, “잘 됐다”는 말도 없었다.

그날 나는 회사를 나섰고,
다시는 그 사무실로 돌아가지 않았다.


회사라는 곳은 이상하다.
수없이 많은 시간을 함께 보냈지만,
헤어질 땐 아무도 감정을 나누지 않는다.

정든 동료와도, 늘 함께했던 커피머신과도,
그 수많은 점심시간과 야근 사이에도,
작별인사는 없다.

그저 조용히, 아주 조용히
그 사람은 없던 사람처럼 사라진다.


퇴사란, 그런 것이다.
그날 이후에도 회사는 멀쩡히 돌아가고
그 사람 없이도 회의는 열리고
보고서는 제출된다.

그러니까,
내가 없다고 세상이 멈추진 않는다.

그걸 알았을 때,
서운했지만,
또 이상하게도 안도했다.

세상은 이렇게 잘 돌아가니까,
이제는 나도 나를 위해
한 번쯤 살아도 되겠다고.


이게 나의 마지막 출근길이었다.
지금은 그 길이 잘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날
내 안에서 아주 조용한 다짐이 태어났던 것만큼은
정확히 기억한다.

“이제, 다시 나로 살아보자.”

keyword
작가의 이전글0장 [에필로그] 회사를 나왔더니, 시간이 느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