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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과는 늘 촘촘하고 지루한 매듭으로 엮여 있다 느낀다
추석에 고향에 다녀왔다.
by
꾸물
Nov 3. 2019
엄마는 나보다 먼저 내 짐을 챙겼다.
내가 부산에 내려와 얻은 이것저것을 튼튼한 장바구니에 욱여넣고는 수건은 안 필요하나? 깨는 있나? 하며 더 줄만한 것들을 자꾸 떠올리셨다.
나는 그가 내 짐을 살피고 나서도 한참 후에 무거운 몸뚱이를 일으켰다.
먼저 내려가 차 대 놓을게. 엄마가 나보다 먼저 집을 나섰다.
부산에 있는 동안 나눴던 대화를 꼽을 수 있을 정도로 서로에 말수가 적었던 아빠와 짧은 포옹을 했다.
간단하고 조용했지만 실은 말 많은 포옹이었다.
두 어깨에 짐을 지고 탄 엄마의 차에서 우리는 말수가 적었다. 창문을 내려 고향의 공기를 맡았다.
엄마보다 작던 시절부터 엉덩이를 붙였던 낡은 차가 영도의 오래된 밤 내음을 갈라 나섰다.
그의 운전은 능숙했다. 몇 년 전에는 엄마가 운전을 한다는 건 상상도 할 수 없었다. 한동안 언니나 나는 엄마의 차를 타면 불안해했다.
자주 함께일 수 없으면 오래도록 새삼스럽다. 나는 오늘 엄마의 운전이 새삼스러웠다.
신호 대기 중에 엄마가 낮에 다녀온 사주 얘기를 꺼냈다. 다 아는 내용이었지만 한결 마음이 정리됐다셨다.
그의 마음이 정리되는 일은 언제나 나의 시름을 더는 일이다.
부산에 올 때마다 무겁고 복잡한 누군가의 삶의 무게를 지고 간다.
나와는 다르게 살고 있는 나의 근원들에게서 기피하고 싶은 점이나 짐들을 발견할 때면 자꾸 마음이 동난다.
나는 그들 앞에서 인심이 짜다.
부산역에 멈춰 섰다. 깜빡이를 켜놓고선 엄마의 손을 잡았다.
'니 열나네. 몸살끼다 2층 가면 약국 있다 종합 감기약 사서 얼른 먹어라.'
약간의 열기를 느꼈지만 대수롭지 않았다. 목이 따끔거려 물도 챙겼다. 이 정도 컨디션에 내가 내게 줄 수 있는 인심은 이걸로 충분했다.
알았다 답하고 약국을 들리지 않았다. 기차 안에서 머리가 아프고 목이 퀘퀘하더니 기어이 콧물까지 나기 시작했다.
아직도 나보다 엄마가 내 상태를 더 잘 아는구나. 여전히 손 한번 잡는 걸로 당신네 딸을 알아맞히는구나.
배가 아플 때마다 엄마 대신 내 손으로 엄마 손은 약손을 한 지 오래되었다.
배를 문지르는 것으로 적잖이 편안해지곤 했지만 엄마의 무르팍에 누워 느끼는 모정의 손길은 자주 그립다.
집에 가서 감기약을 챙겨 먹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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