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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꾸물 Oct 28. 2019

핸드폰을 쥐었을 때 조은이는 나를 울렸다

우리는 같이 있으면 천둥벌거숭이가 된다.

2019년 10월 5일 응급실에 다녀온 지 이틀째 된 날.



건강을 염원하는 집 콕 정물이 될 바에야 자유로운 동물이 돼야지. 약간은 열 오른 몸으로 얼굴에 무표정을 쓰고선 따릉이를 타고 나섰다. 오늘 웃을 일이 없을 것 같아 걱정이었다.


밝아지는 핸드폰 화면으로 조은이의 카톡이 보였다.

너 블로그 봤는데 글 잘 쓰더라. 근데 왜 거기 나 없어! 하는 내용에 이모티콘이 잔뜩 붙은 문자.

너무 그 다운 간만의 연락이어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이런 건 밤에 해야 하는데 참을성 같은 거 없으니 지금 하겠다고.

그 카톡을 열어보지도 않고 미리보기로 훔쳐보고는 변태같이 곱씹고 있다. 누가 봐도 안색이 좋지 않은 피폐한 여자가 왠지 물어봐줘야 할 것 같은 미소를 띠고 페달을 밟는 모습이 퍽 기괴했을 것 같다. 망원시장에 가는 지금 신호에 많이 걸렸지만 짜증 나지 않았다. 빨간불이 빛날 때마다 이 글을 적었으니.

웃을 일


들뜬 마음에 너무 많은 식재료를 샀다. 절반 이상은 지금 먹을 수 없는 것들. 양손 가득한 뜬구름을 놓고 핸드폰을 쥐었을 때 조은이는 나를 울렸다.

미쳐 다 읽지 못한 내용에 진득하고 진심 어린 그의 마음이 담겨 있었다. 엊그제 많이 운 게 괜스레 민망해 애써 시큰해지는 코를 부여잡았다. 그 앞에서는 유독 정신 나간 사람처럼 신나게 웃고 갓 태어난 아이처럼 서럽게 울었다.

서로를 속속들이 알 때도 앉은자리에서 페이스타임으로 다섯 캔의 맥주를 깔 정도로 할 얘기가 많았다.

시답잖은 장난 속에 웃고 바라는 이상을 공유했다. 어렴풋하게 떠오르는 어릴 적에도 같은 하늘을 보며 비슷한 류의 얘기를 나눴었나. 지금보다 훨씬 이상적이고 귀여운 얘기를 맑고 촉촉한 입술로 놀려댔겠지.

그때의 우리도 서로에게 각별한 애정으로 잦게 다투곤 했는데 어째 입술만 탁해졌지 지금도 그 유치한 싸움은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


연인을 대하듯 각별한 설움이 폭발했던 날, 술집 밖 차양막에서 비를 피하며 취기가 잔뜩 오른 생떼를 부렸다. 엉엉 울면서 나한테 좀 잘해달라고 눈물인지 빗물인지 설움인지를 전화기 너머로 뜨겁게 쏟아냈다. 그때 빗속에서 내 통화를 우연히 엿들었던 남자는 아무래도 미친 여자 같았다며 아직도 놀려댄다.

우리는 이렇게 같이 있으면 천둥벌거숭이가 된다.

뼛속까지 고아낸 애정이나 애증이나 기타 날것의 삶의 태도를 공유한다. 그렇다 보니 철석같이 뺨을 맞대고 있다가도 천둥과 번개 따위를 배경으로 등져버리기도 한다. 그가 가진 섭섭함에 내 부담이나 미안이 늘기도, 내가 가진 집요함에 조은이가 답답함을 느끼기도 했다.

오랜 날들이다. 10년이 지나면서 우리는 다른 상황과 사람 속에서 자랐는지 퍼졌는지 모를 성격을 가졌다. 환경이 바뀌면서 고집 같은 가치관도 단단해지고 서로에게 포기해야 하는 부분과 타협할 수 있는 부분을 적당히 가감하고 들이댈 수 있게 됐다.


갖은 약속과 관계 속에서도 그와의 관계는 유독 특별하고 퍽 기괴하다 느낀다. 내 오랜 성장을 옆에서 지켜본 그가, 삶에 부끄러운 태도를 뭣 모르고 취하는 나를 잡던 그가, 도무지 모르겠다며 멀어지고 또 가까워지던 그가 나의 근원과 가까운 곳에서부터 죽 내 옆자리에 있었다는 걸 알고 있다.

마음의 옆자리와는 관계없이 부산에서 서울에서 각자의 삶을 사는 동안 서로의 디테일에 대해 점차 아는 게 없어졌다. 종일 붙어 앉아 일상과 남자와 가족과 사건에 대해 떠들던 때와는 달랐다. 물리적 거리는 생각보다 컸고, 어른의 무게는 생각보다 바쁘고 무거웠기 때문이다. 이제는 드문 한 연락 속에서 어떤 디테일에 대해 생략하고 침묵한다. 사건의 한 복판이 아닌 잘 정리된 지난 일을 공유하고 지금 겪고 있는 일에 크게 호들갑 떨지 않고 응원한다.


처음에 조은이는 그런 점에 대해 몹시 속상해했다. 기왕이면 서로의 일거수일투족을 실시간으로 알고자 했다.

그는 내가 쓰는 글에 자신이 좀처럼 등장하지 않는 것 때문에, 그보다 다른 사람들과 더 친밀해 보이는 것 때문에, 나의 삶에 본인이 가득하지 않은 것 때문에 자주 토라졌다. 내가 가진 지인 중 가장 애착 어린 질투를 많이 하는 사람이다. 나의 연인이나 내게 구애하던 사람들 보다도. 그의 구애는 다른 이들의 것과 사뭇 달랐다.

나는 현재를 유독 실시간으로 살아낸다. 어제와 오늘과 오늘과 오늘을 씹고 또 씹느라 주변의 가득한 어떤 것에 자주 벅찼다. 그때문에 키 작은 네가 내 표면 위로 드러나지 않았다면 미안한데,

우리가 조금 떨어져 있다고, 지금 내 곁에 네가 없다고 네가 내 안에 없는 건 아니라고. 우리가 쌓은 날들이 없었다면 지금의 나는 뭐겠냐고.

표현에 수줍은 사람은 변명이 많다. 원래 나는 사랑한다는 말에,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보고 말하는 사람에 유독 부끄러움이 많았다.

이건 사실 자주 토라지는 그를 위한 헌정글, 사실 너를 적어놓고는 괜스레 딴짓을 많이 했었다.

네가 내 옆에 있을때는 또 네가 내 현재였지

함께 교복을 줄여 입고 학교 선배와 연애하던 그때가 내가 떠올리는 가장 선명한 옛 기억이다. 그는 내게 항상 선명한 사람이었다. 앞으로도 또렷하고 뾰족하고 사르르 녹는 기억을 때때로 쌓을 것이다. 그러다가 우리가 칠순을 맞이하면 칠순잔치 사회는 내가 볼게. 그때 내가 탱탱했던 우리의 빛바랜 때부터 차곡차곡 모은 기록을 야무지게 뭉친 촌스러운 사진집을 너에게 선물할게. 그러니까 내 선물이 좀 늦어도, 쑥스러움에 말이 없어도 토라지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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