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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꾸는집순이 Jan 10. 2024

10살이 되자 본격적으로 욕심이 많아진 아이

아이는 갑자기 변한 걸까?

 욕심부리는 행동들이 눈에 띄게 잦아졌다. 예를 들면 이런 경우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1. 이천 원 정도 하는, 딸 마음에 꼭 드는 장난감이 생겼다. 친한 친구도 같이 가지고 있으면 놀 때 더 재밌겠다는 생각에 (아이와 상의는 하지 않았지만) 그 친구의 것도 구매했다. 그때부터 불편감을 드러내기 시작하며 친구에게 선물하는 것을 납득하지 못했다. 그 친구가 평소 자랑을 많이 하기 때문이라서 자기도 자랑하고 싶어서라는데, 내가 보기엔 그저 욕심처럼 보였다.
2. 마라탕 두 그릇을 주문해 세 명이서 나눠 먹는 상황이었다. 그릇에 음식이 가득한 상태였는데도 내가 젓가락을 갖다 대자 눈을 흘겼다. (물론 두 그릇은 아이들이 직접 고르게 하고, 그릇들 또한 아이들 앞에 놓아주고 나는 조금씩 덜어먹는 방법을 택해서 '자기 것'이라는 인식이 생긴 것이 당연했겠지만) 그 많은 걸 혼자 다 못 먹을 텐데 욕심부리는 모습이 못마땅했다.
3. 결정적으로 가족 식사 때 문제가 불거졌다. 4명이서 먹는데 만두는 8개였다. 딸은 만두가 맛있다며 그중 5개를 혼자 다 먹었다.


처음 한두 번은 '이번만 그렇겠지'라는 생각에 따끔하게 바로잡아주지 못했다. 하지만 만두 사건 때에는 아이 아빠가 분명히 짚어 주었다. 모두가 나눠 먹는 자리에서는 각자가 먹을 수 있는 몫이 있으니 같이 먹고 있는 사람들이 몇 개를 먹었는지, 하나라도 먹기는 했는지 살피고, 내 몫에서 더 먹고 싶다면 양해를 구해야 한다고 가르쳤다.


식사 후에 남편과 이야기를 더 했다. 아이가 요즘 부쩍 욕심을 부리는 일이 잦다며, 원래 10살 발달 특성이 그런 걸까? 하고 물었다. 남편은 자기 어릴 때랑 똑같다며, 원래 타고나기를 그렇게 욕심 많은 거라고 했다. 단지 지금까지는 위장이 작아 만두를 2개밖에 못 먹었기 때문에 욕심부리는 성질을 못 알아챘지만 신체가 성장하면서 만두를 많이 먹을 수 있게 되니 이제야 눈에 띈 것뿐이라고 했다. 이렇게 드러날 때 제대로 알려줘야 한다고 했다. 남편은 이 욕심 많은 딸을 키우기가 무지 어려울 거라는 말도 덧붙였다.


앞으로 무엇을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 어렵고 막막한 마음에 검색창에 '초3 욕심'이라고 검색했다. 어떤 질문 사이트에 나와 비슷한 고민이 올라와있었다. 밑에는 대부분 욕심을 줄이게 하고 배려를 잘 가르쳐야 한다는 맥락의 답변들이 주를 이루었고, 나는 스스로를 세뇌하듯이 그 말들이 읽고 싶었던 것이었다. 하지만 다른 결의 대답이 자꾸만 눈에 밟혔다.


아이가 기질적으로 욕심이 많으면 배려하는 사람으로 키워야 한다는 생각을 할 수 있는데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충분히 채워줘야 합니다. 자신이 만족스럽지 않은 아이가 다른 사람과 나누기는 쉽지 않을 것입니다. 기질적으로 채워야 하는 그릇의 크기가 크다고 생각하면 어떨까요. 예를 들어 음식을 먹는 양이 사람마다 다른 것처럼 아이는 담고 싶은 게 많은, 다른 아이보다는 조금 더 큰 그릇을 가지고 있는 거예요. 그릇이 왜 크냐고 하기보다는 어떻게 채울 수 있는지 생각해 보고 가득 채우지 않아도 만족감을 느끼며 나눌 수 있는 여유를 갖도록 유도해 주는 것이 바람직할 것 같습니다.


욕심 많은 이 아이를 당장 해결하고 싶은데 거기에다 그릇이 크다는 말을 하다니, 심지어 그걸 충분히 채우라니. 욕심 많은 사람으로 잘못 크도록 부추기는 건가? 왜 저런 답변을 하셨을까? 위로를 하고 싶은 거였을까? 여러 생각이 들며 혼란스러워서 일단 껐다. 다음날 다시 들어가서 저 말을 다시 읽어 봤다. 천천히 읽어 보니 욕심 많은 채로 방치하라는 얘기가 아니었다. 중요한 부분은 "가득 채우지 않아도 만족감을 느끼며 나눌 수 있는 여유를 갖게 해 주자"는 것이었다.


결국 배려를 가르쳐야 한다는 맥락은 동일하지만, 그의 말에는 '욕심 많은 아이'를 잘못된 게 아니라 그 자체로 그럴 수 있다고 받아들인다는 점이 달랐다. 이제 고민하는 방향이 조금 달라졌다. 아이를 어떻게 욕심을 줄이고 나눌 줄 아는 사람으로 바꿔야 하는지가 아니라, 큰 밥그릇(=욕심)을 어떻게 꾸며야 적당히 채우는 법을 알아차릴까를 고민하게 되었다. 커다란 그릇의 안쪽 윗부분에 좋아하는 그림이 그려져 있다고 상상해 보면 쉽다. 식사할 때마다 내가 좋아하는 그림을 감상하기 위해서라도 음식으로 그 그림을 가려버리지 않고 적당한 선까지만 음식을 담을 것이다.


욕심부리는 성질이 나쁘다는 것은 편견에 불과하다. 욕심은 누구나 있고, 잘못이 아니다. 딸의 욕심은 그럴 수 있다고 인정하되 다른 사람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도록 경계선을 알려주면 된다.


나 역시도 딸의 욕심이 불필요하게 자극되지 않도록 행동을 수정해 보았다. 위 1,2번 사례의 괄호 안의 행동이 그런 것이다. 예를 들어 그날 이후로는 식사 때 자기 것을 분명하게 인식할 수 있도록 각자의 그릇에 음식을 담아줘 봤더니 다른 그릇에 담긴 음식을 탐하지는 않았다. 한 그릇에 담긴 요리가 배분되지 않은 채로 있으면 욕심이 자극 것이다.


아이의 그릇이 자기만의 그림들로 꾸며질 것을 상상하니 벌써 예쁘다. 지금은 찰랑거릴 정도로 아슬아슬하게 채우고 있지만, 점차 그릇을 꾸미는 법을 배워나갈 앞으로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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