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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꾸는집순이 Jan 25. 2024

내 서랍, 통계, 뒤로 가기

일상을 잃은 브런치스토리 중독자

브런치스토리에서 제일 재밌는 건 역시 통계를 보는 일이다. 글을 하나 올렸을 뿐인데 한두 개씩 돌려받는 관심은 정말 너무 달콤하다. 그래서 브런치스토리를 켜면 통계 버튼을 제일 먼저 누르러 간다. 도파민에 흠뻑 중독된 나의 뇌가 그러라고 시킨다.


맨 처음은 작가 심사에 통과했을 때였다. 갑자기 작가가 되니 글을 꼭 발행해야 한다는, 아니 꼭 그렇게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마치 비싼 물건을 무료체험할 때의 느낌과 비슷했다. 언젠가는 돌려주거나 값을 지불하고 할부의 아픔을 견디거나 둘 중 하나를 택해야 하지만 결정하기 전에 아직은 공짜라서 마냥 기분 좋은 느낌이랄까.


맨 첫 글을 발행했을 때였다. 이렇게나 실시간으로 쏟아지는 글이 많은 곳에서 내 글이 읽혔다는 사실 자체에 인정을 받은 느낌이 충만했다. 조회수 1회가 너무나 소중했다.


 번째 글을 발행했을 때였다. 초보 작가들은 한 번씩 겪는다는 검색엔진 노출의 순간을 마주했다. 조회수가 몇천까지 나오니 자신감은 점점 더 차올랐다.


그 후로는 다시 잠잠해졌다. 글을 안 올리는 날은 조회수가 이진법으로 변하는 오류라도 있는지, 0과 1만을 맴돌았다. 왠지 슬펐다. 슬픔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글을 올리는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글을 올리기만 하면 안 올릴 때보다는 조회수 구경을 많이 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매일 글을 올리기로 나와의 약속을 잡고, 성실히 이행했다. 글의 퀄리티는 쓰다 보면 차차 나아질 거라며 자기 합리화를 했다. 매일 글을 올리고 나서는 통계 페이지를 수시로 들여다봤다. 글을 쓰려고 브런치스토리를 하는지, 통계를 보려고 브런치스토리를 하는지 분간이 안될 지경이었다. 통계를 확인하는 빈도는 점점 잦아졌고 일상생활에 지장이 되었다.


브런치스토리에 중독되었다는 것을 깨닫고 몇 가지 조치를 취해 보았다. 첫 번째로는 알림을 껐다. 라이킷, 조회수 알림이 나를 자극하는가 싶어서 알림을 꺼놨지만 무용지물이었다. 알림이 뜨든 안 뜨든 수시로 들어가는 건 마찬가지였다. 다음으로는 앱 타이머 기능으로 앱 사용시간을 제한했다. 브런치스토리 앱을 일정 시간만큼 쓰고 나면 그날은 더 이상 앱을 켤 수 없었다. 하지만 나에게는 태블릿도 있고 데스크톱도 있었다. 똑같은 중독 증세에 불편한 과정만 한 번 더 거칠 뿐이었고, 중독 증세는 나아지지 않았다.


그러다가 매일 글을 써서 발행하는 게 버거운 순간이 왔다. 왜 글을 쓰고 있는지, 어떤 글을 쓰고 싶은지 스스로를 다시 돌아봤다. 통계를 보기 위해서 글을 발행하고 있다는 것을 드디어 인지했다. 브런치스토리가 글쓰기를 하게 해 줘서 재밌는 줄 알았는데, 통계를 보여줘서 재미있는 거였다. 통계는 나에게 유의미하긴 해도 유익하진 않다. 그러므로 통계를 보기 위해 글을 쓰는 것을 멈추기로 했다.


짧은 글에서 시작된 작은 꿈은 작가가 되는 것이었다. 언젠가는 누군가에게 울림을 주는 진정성 있는 글쓰기를 일상적으로 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래서 더 인정하기 싫었던 것 같다. 나는 이런 꿈을 꾸고 있는데, 사실은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제대로 된 방향으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었다. 인정 욕구에 목말라 당장 눈앞의 반응만을 소진하고 있었다. 앞으로 어떤 글을 쓰고 싶은지, 그 글에 대한 이야기를 진심으로 쓸 수 있을지 고민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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