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다시 벼랑 끝에 서 있었다
무너진 회사 앞에서 우리는 선택해야 했다.
그냥 떠나거나, 끝까지 책임지거나.
동료Y와 나는 버려진 오더를 끝까지 책임지기로 했다.
도망치는 건 쉬웠다. 하지만 나 몰라라 팽개칠 수 없었고, 기존 바이어들과의 관계를 끊고 싶지 않았다.
이미 40대에 들어선 우리가 다른 회사에 취업하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젊은 사람들이 넘쳐나는 시장에서, 경력은 무기가 아니라 짐이었다. 영업 전문인 Y와 오더 진행 전문인 내가 함께 한다면 작은 회사를 차릴 수도 있는 일이었다. 확실한 오더만 있다면, 신뢰만 있다면, 돈이 부족하더라도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나는 Y의 첫 직장 사수였다. Y의 첫 사회생활부터 봐온 터라 Y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사람은 선하지만 마음이 약하고 매사에 일 처리가 깔끔하지 못한 것 또한 알았다. 그래서 나는 동업을 전제로 조건을 내걸었다.
"자금 지출은 반드시 계획대로만 해야 해. 누가 사정한다고 해도 절대로 줘선 안돼."
버려진 오더를 마무리 짓는 과정에서 자금 투입과 지출을 상의하여 결정하였고, 절대로 상의 없이 임의로 행동하지 않기로 했다.
하지만 Y는 이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어느 날 갑자기 돈이 새기 시작했다. 자금 상황은 뒤틀려버렸다. 결국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최소한의 자금조차 확보하지 못한 채 일이 마무리되었다. 나도 더 이상 Y를 신뢰할 수 없었다.
버려진 오더를 마무리하면서 자금 흐름이 꼬일 때마다 친인척 S사장이 도와주었다. 그러다 보니 몇 차례 밥도 먹고 술도 먹었다. 하지만 상처받았던 마음은 쉽게 풀리지 않았다.
중국에서의 일들이 자꾸 떠올랐다. 퇴사당하고, 유산하고, 가족 간에 인연을 끊었던 일들이 고스란히 상처와 자책으로 남아 있었다. 5년이 넘도록 S에 대한 분노가 사그라들지 않았다. 악몽을 꾸고 울면서 잠에서 깨는 일이 잦았다. 분명 지나간 옛일이지만, 상처는 현재 진행형이었다.
어쨌든 당장 도움을 받고 있으니 내가 굽혀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런데도 마음이 풀리지 않았다. 이성은 잊으라 말했지만, 감정은 여전히 날을 세웠다.
그때 S사장이 자기가 도와줄 테니 혼자 사업을 시작해 보라고 내게 제안을 했다.
"내가 무슨 사업을?"
상상도 해본 적이 없는 일이었다. 난 사업할 그릇도 능력도 없는 사람이니까. 하지만 계속된 설득에 솔깃해졌다. 업종을 바꿔서라도 취업을 해보려 했으나 딱히 적당한 자리도 없었다.
'어린 아들과 남편을 책임져야 하는 상황에 무슨 자존심을 차리나.'
영원한 원수는 없다고 하지 않았나. 어쩌면 S가 이제 나에게 귀인이 되어주려나 보다. 그렇게 믿기로 했다.
베프 M언니가 빈 사무실이 있으니 그냥 쓰라고 빌려주었다. 이렇게 좋은 사람들에 둘러싸였는데, 안 될 리 없다고 생각했다.
개인 사업자를 내고 새 출발을 했다. S가 오더를 소개해주고 자금도 빌려줬다. 회사 명의의 차량도 쓰게 해 주었다. 두 사람의 도움으로 공짜로 사업을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며칠 지나지 않아 사무실에 구청 직원들이 찾아오고 문제가 발생했다. M언니네 회사에서 절세를 위해 빌려둔 사무실이었는데, 내가 사업자를 내고 문제가 발생했다. M언니네 회사는 거액의 벌금을 냈다.
나는 바로 쫓겨났다. 미안함과 민망함에 고개를 들 수 없었다.
세 식구가 사는 6평 원룸에서 일까지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일을 하는 건 괜찮은데, 아무래도 사무 집기와 자재들을 놓을 곳이 없었다. 남편과 아들이 잠든 밤에야 겨우 책상을 펼칠 수 있었다.
두어 달쯤 지났을 때, S사장이 자기 회사 사무실에 자리를 내어주었다. 그 회사는 예전에 내가 다녔던 회사였다. 다시 돌아온 곳. 예전엔 직원으로, 이젠 독립 사업자로.
사무실에는 10여 명의 직원이 있었다. 물론 나는 그들의 서열 관계에 끼지 않는 독립된 위치에 있었지만, 그들이 반가웠다. 예전에 막내였던 직원을 과장으로 만나니 든든하고 좋았다. 새로 만난 젊은 직원들에게는 내가 아는 것을 알려줄 수 있어서 좋았다. 혼자서 일하는 나로서는 그들의 도움이 필요했고, 그들은 나의 경험이 필요했다. 서로에게 필요한 존재가 된다는 건, 생각보다 위안이 되었다.
S사장이 소개해 준 거래처 O업체는 S의 회사와 오랫동안 대량의 오더를 진행하고 있는 유명 브랜드였다. S의 소개로 오더는 바로 받았지만 납품 과정이 꽤나 까다로운 회사였다.
납품할 때마다 제품을 다 쌓아둔 상태에서 랜덤으로 검사를 진행하고, 통과하지 못하면 납품을 할 수 없었다. 물건을 다시 트럭에 싣고 돌아가야 했다. 전량 베트남에서 생산하는 상황에서는 말이 안 되는 시스템이었다.
컨테이너 기사들은 검사가 끝날 때까지 기다려 주지 않는다. 불합격하면 다음 날 다시 트럭을 배차해야 했다. 한국 공장을 섭외해서 물건을 옮기고 원하는 기준에 맞춰 수선을 했다. 그리고 다시 이동해서 검사를 받았다.
납득할 수 없는 '갑질'이었다. 하지만 '을'은 시키는 대로 해야 했다.
한국에서 검사에 걸려 한 번이라도 재검을 하면 이미 손해였다. 무조건 검사를 통과시키는 것이 내가 해야만 하는 일이었다.
그래서 나는 물건이 투입되면 베트남 공장으로 날아갔다. 한 번 가면 한 달, 두 달씩 묶였다. 물건이 만들어져 나오면 직접 전량 검사를 해서 완성했다. 그렇게 일 년이면 5~6번 출장을 갔다.
낮 기온이 40도인 베트남. 봉제 공장 안은 그보다 더 뜨거웠다. 줄줄 흐르는 땀이 눈으로 들어가는 것을 막기 위해 머리에 수건을 두르고 매일 8시간씩 서서 일했다. 내가 바이어이니 공장에서는 웃으며 맞아주었지만, 얼마나 나를 싫어하는지는 느낄 수 있었다. 그래도 뻔뻔하게, 정말 미친 듯이 일했다. 검수 불합격은 곧 파산을 의미했으니까.
그런데 그렇게 힘들여 납품을 해도 결제가 바로 나오지 않았다. 처음에 들었던 2달 후 결제는 한 번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외담대'라는 것으로 대금 결제가 이루어진다고 했다.
'외담대'는 '외상매출채권 담보대출'의 줄임말이었다. 그때 처음 들어본 단어였다. 납품 후 O업체가 '외상매출채권'을 지정은행으로 발행해 주면, 은행에서 그걸 담보로 나에게 대출을 해주는 것이다.
이것의 문제점은 명확했다. 받지도 않은 돈을 담보로 내가 대출을 받았기에, O업체가 정해진 기일까지 대금을 은행에 지급하지 않으면 내가 대출을 갚아야 하는 것이다.
어음은 할인받고 나면 나에겐 책임이 없다. 그런데 이건, 만일의 사태가 발생하면 내가 모든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이었다.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S사장은 다른 하청 업체들도 다 그렇게 한다며, 아무 문제없다고 했다. 설상가상으로 이 매출채권도 약속한 날 나온 적이 없었다. 언제나 미뤄지고, 연기되고, 기다려야 했다.
그렇게 2년이 지났다.
어느 날부턴가 O업체의 자금난이 심각하다는 소문이 돌았다. 그러더니 갑자기 1차 부도처리 기사를 접했다. 2월 말에 2억 원어치 납품을 하고 며칠 후, 3월 초였다.
그때만 해도 O업체의 담당자들은 태연했다. 3차 부도까지는 가야 최종 부도니까 아직은 시간 여유가 있다고, 잠깐 자금흐름이 꼬인 것뿐이라고 했다. 사장은 돈이 많은 사람이고, 이렇게 회사를 버리지는 않는다고 큰소리를 쳤다.
나도 알고 있었다. 그 말들이 얼마나 무책임했는지, 그 큰소리가 얼마나 공허한지. 그러나 너무나 간절히 그 말들을 믿고 싶었다.
이미 여러 번 무너지는 회사를 봐왔다. 그리고 그때마다, 끝까지 남아 책임지는 건 힘없는 사람들이었다.
바보라는 소리를 들으면서도 스스로 떳떳하기 위해 항상 마지막을 지켜왔지만,
다시, 내 이름이 부끄러워지는 시간이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