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 없이 끌린다고?

— 당신이 모를 뿐이다

by 꾸더칸

"이유는 모르겠는데, 자꾸 눈이 가요."

누군가에게 끌리는 이유를 설명해 보라고 하면, 우리는 종종 막힌다. 외모가 특별히 이상형도 아니고, 성격이 완벽한 것도 아니고, 조건이 딱 맞아떨어지는 것도 아닌데 ‘그냥’ 끌린다.

설명할 수 없는 끌림. 이유 없는 설렘.


그런데 정말 이유가 없는 걸까.

아니면 이유는 있는데, 내가 그 이유를 모르는 걸까.

심리학은 후자라고 말한다. 끌림에는 항상 이유가 있다. 다만 그 이유가 의식의 표면 위에 있지 않을 뿐이다.

어떤 끌림은 너무 깊은 곳에서 올라와서, 우리가 그 출발점을 보지 못한다. 오늘은 그 보이지 않는 이유들을 하나씩 들춰보려고 한다.


끌림의 첫 번째 이유 - 어린 시절의 각인

영국의 정신과 의사 존 볼비(John Bowlby)는 애착 이론(Attachment Theory)을 통해 인간관계의 뿌리를 밝혔다. 생후 0~3세 사이, 우리는 주 양육자와의 관계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기본 틀을 형성한다. 이때 형성된 내적 작동 모델(Internal Working Model)은 이후 평생의 대인관계 패턴을 결정한다.


발달심리학자 메리 에인스워스(Mary Ainsworth)는 볼비의 이론을 발전시켜, 애착 유형을 안정형, 불안형, 회피형, 혼란형으로 분류했다.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심리학자 신디 헤이잔(Cindy Hazan)과 필립 쉐이버(Phillip Shaver)는 이 이론을 성인 연애 관계로 확장했다.

그들의 연구에 따르면, 어린 시절 양육자에게서 경험한 관계 패턴이 성인이 되어 사랑하는 사람을 선택하고 관계를 맺는 방식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흥미로운 건, 이 패턴이 의식적 선택이 아니라는 점이다. 불안 애착을 가진 사람은 자신을 불안하게 만드는 사람에게 끌린다. 왜냐하면 그 불안이 익숙하기 때문이다.

회피 애착을 가진 사람은 거리를 두는 사람을 만나야 편하다. 가까워지는 게 두려우니까. 우리는 자기도 모르게 어린 시절 경험했던 관계의 질감을 다시 찾는다.

"왜 항상 나한테 차가운 사람만 좋아하게 되지?"라는 질문 뒤에는, 차가움이 내게 익숙한 온도였다는 사실이 숨어 있다. 끌림은 무작위가 아니다. 끌림은 기억의 재연이다.


끌림의 두 번째 이유 - 반복하려는 충동

지그문트 프로이트(Sigmund Freud)는 반복 강박(Repetition Compulsion)이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사람은 유아기에 해결되지 않은 갈등을 성인이 되어서도 무의식적으로 재연한다는 것이다.

놀라운 건, 그 갈등이 고통스러웠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그 상황을 만든다는 점이다.


프로이트는 "쾌락 원리를 넘어서(Beyond the Pleasure Principle)"라는 논문에서 이 현상에 충격을 받았다. 인간은 쾌락을 추구하고 고통을 피하는 존재라고 믿었는데, 반복 강박은 그 원리를 위반했다.

고통스러운 경험을 알면서도 자꾸만 비슷한 상황으로 돌아간다. 왜일까.


심리학자 데니스 홀리(Dennis Wholey)는 이를 '안전지대(Comfort Zone)'로 설명한다. 어린 시절 학대받은 아이는 학대가 없는 따뜻한 가정을 경험해 본 적이 없다.

위협적인 분위기가 두렵고 싫지만, 그게 그 아이가 아는 유일한 '집'이다. 따뜻함은 오히려 불안하다.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행복보다, 익숙한 고통이 더 안전하게 느껴진다.

그래서 자기도 모르게 폭력적인 사람을 다시 선택한다. 친절한 사람 옆에 있으면 몸이 먼저 긴장한다. 이게 맞나? 나한텐 과분한 거 아닌가? 곧 무너질 거 같은 불안.


"본인은 아버지와 같은 사람을 만나지 않겠다고 결심해도 아버지와 닮은 남자를 배우자로 선택해 어머니의 삶을 다시 사는 딸들"이 많다. 머리로는 안다. 이건 아니라는 걸. 하지만 몸은 익숙함으로 간다.

반복 강박의 무서운 점은, 당사자가 자신이 그 상황을 유발하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인식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들은 "왜 나는 항상 이런 사람만 만나지?"라고 묻지만, 실은 자신이 그런 사람을 골라내고 있다.


프로이트는 말했다. "우리가 선택하는 사랑은 결코 우연히 이루어진 것이 아니며, 사랑할 대상의 발견은 이미 결정된 이전 관계의 재발견이기도 하다."


끌림의 세 번째 이유 - 익숙함이 만드는 호감

사회심리학자 로버트 자욘스(Robert Zajonc)는 1968년, 단순 노출 효과(Mere Exposure Effect)를 이론화했다. 그는 실험 참가자들에게 무의미한 중국 한자, 낯선 얼굴 사진, 의미 없는 단어들을 반복적으로 보여주었다. 결과는 놀라웠다. 노출 횟수가 많을수록 사람들은 그 자극을 더 호의적으로 평가했다. 심지어 참가자들이 무엇을 봤는지조차 의식하지 못한 경우에도 효과는 나타났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명확하다. 호감은 의식적 판단보다 먼저 작동한다. 우리는 익숙한 것을 좋아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자욘스는 이를 정서 우선 가설(Affective Primacy Hypothesis)로 설명했다. 인지보다 정서가 먼저다. 우리는 뭔가를 좋아한 다음에 그 이유를 찾는다. 이유를 찾은 다음 좋아하는 게 아니라.


그래서 누군가에게 끌리는 이유를 설명하기 어려운 것이다. "그냥 좋아요"는 거짓말이 아니다. 실제로 이유를 모르는 것이다. 하지만 이유가 없는 건 아니다. 익숙함이라는 이유가 무의식 깊은 곳에 작동하고 있다.


어쩌면 당신이 끌리는 사람의 말투가, 표정이, 손짓이 당신이 어릴 적 사랑받았던 순간의 누군가를 닮았을 수 있다. 아니면 당신이 평생 보고 자란 부모의 관계 방식을 그 사람이 재현하고 있을 수 있다. 의식은 기억하지 못해도, 몸은 기억한다. 그래서 끌린다.


자욘스의 실험은 단순하지만 시사점이 크다. 우리의 끌림은 생각보다 훨씬 더 많은 부분이 과거의 반복이다. 낯선 사람에게 느끼는 '운명적' 끌림조차, 실은 낯설지 않은 무언가가 작동한 결과일 수 있다.


그렇다면 모든 끌림은 과거의 재연인가

여기까지 읽으면 조금 씁쓸해질 수 있다. 그럼 내가 지금 느끼는 이 끌림도 결국 어린 시절의 상처를 반복하려는 무의식의 장난인가. 내 선택엔 자유가 없는 건가.


나는 여기에 한 가지를 더 얹고 싶다.

심리학 이론들은 끌림의 구조를 설명한다. 애착 이론은 우리가 왜 특정 패턴에 끌리는지를 보여주고, 반복 강박은 익숙함의 덫을 밝히고, 친숙성 효과는 무의식의 작동 방식을 증명한다.

이 이론들은 모두 옳다. 끌림에는 분명 이유가 있다. "이유 없는 끌림"은 없다. 다만 "이유를 모르는 끌림"이 있을 뿐이다.


하지만 이론이 전부는 아니다.

첫째, 이유를 알았다고 해서 끌림이 사라지는 건 아니다.

"아, 내가 회피 애착이라 저 사람한테 끌리는구나"를 깨달았다고 해서 끌림이 자동으로 소멸하지 않는다.

무의식을 의식화하는 것은 변화의 시작이지 끝이 아니다. 알아차림은 중요하지만, 그것만으로 패턴이 바뀌지는 않는다. 삶은 습관이고 행동이기 때문에, 교정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다.


둘째, 모든 끌림을 분석할 필요는 없다.

끌림의 이유를 찾는 작업은 내가 반복적으로 고통받는 패턴을 벗어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다. "왜 나는 항상 나를 무시하는 사람만 좋아하게 되지?"라는 질문 앞에서는 과거를 들여다봐야 한다.

하지만 그냥 좋은 사람이 좋은 거라면, 꼭 이유를 캐낼 필요는 없다. 어떤 끌림은 그냥 느껴도 된다.


셋째, 알아차림은 자유의 시작이다.

이유를 모를 때, 우리는 끌림에 끌려간다. 이유를 알면, 선택할 수 있게 된다. "아, 이 끌림은 내 안의 상처가 익숙함을 찾는 신호구나"를 알면, 그 끌림을 따를지 말지를 결정할 수 있다.

무의식은 자동이지만, 의식화된 무의식 앞에서는 자유가 생긴다.


끌림에 이유가 있다는 건, 우리가 그 이유를 이해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이해할 수 있다는 건, 바꿀 수 있다는 뜻이다.

애착 유형은 고정된 운명이 아니다. 건강한 관계 경험을 통해 안정 애착으로 변화할 수 있다.

반복 강박도 치료의 장에서 새로운 관계를 경험하며 깨질 수 있다.

친숙성 효과를 알면, 익숙함에 속지 않고 낯선 것을 선택할 용기를 낼 수 있다.


이유를 모른다고 이유가 없는 건 아니다. 하지만 이유를 알았다고 끌림이 틀린 건 아니다.

중요한 건, 내가 끌림의 주인인가 하는 것이다. 끌림에 끌려가는가, 아니면 끌림을 이해하고 선택하는가.


당신이 누군가에게 끌린다면, 그 끌림을 의심하기 전에 한 번 물어보자. 이 끌림은 어디서 오는가. 과거의 상처가 익숙함을 찾는 건가, 아니면 내가 진짜 원하는 무언가를 발견한 건가.

끌림의 이유를 찾는 건 끌림을 부정하기 위함이 아니다. 끌림을 제대로 선택하기 위함이다.


이유 없는 끌림은 없다. 당신이 모를 뿐이다.

그리고 그 이유를 알아가는 과정이, 어쩌면 당신을 진짜 사랑으로 이끄는 길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