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함과 불편함을 가르는 진짜 기준
보통 나와 비슷한 사람이 편하다.
취향이 비슷하면 대화가 통하고, 가치관이 비슷하면 갈등이 적고, 경험이 비슷하면 말하지 않아도 알아준다.
그래서 비슷한 사람 곁에 있으면 안심이 된다.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관계. 그건 분명 편하다.
그런데 가끔, 나와 놀라울 정도로 비슷한 사람을 만났는데, 편하기는커녕 불편한 경우가 있다.
그 사람의 말투, 행동, 반응 방식이 나와 닮아 있는데 오히려 그게 거슬린다.
이유를 정확히 설명하기 어렵다. 그냥 싫다. 보고 있으면 묘하게 짜증이 난다.
같은 '비슷함'인데, 왜 어떤 사람은 편하고 어떤 사람은 싫을까.
심리학에서는 이것을 유사성 매력 효과(Similarity-Attraction Effect)라고 부른다.
사회심리학자 도널 번(Donn Byrne)의 연구에 따르면, 태도와 가치관이 유사한 사람에게 끌리는 건 거의 본능에 가깝다.
이유는 단순하다. 비슷한 사람은 나를 위협하지 않는다.
내가 믿는 것을 상대도 믿고 있으면, 내 믿음이 맞다는 확인을 받는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상대도 좋아하면, 내 취향이 괜찮다는 증거가 된다.
심리학에서 말하는 합의 검증(Consensual Validation), 나와 비슷한 사람의 존재 자체가 "너는 틀리지 않았어"라는 메시지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비슷한 사람 곁에 있으면 긴장이 풀린다.
자기를 방어하거나 설명할 필요가 없다.
그냥 있어도 된다.
이때 우리가 느끼는 편안함의 정체는, 엄밀히 말하면 상대에 대한 호감이 아니라 상대를 통해 확인되는 나 자신에 대한 안도감이다.
비슷한 사람이 편한 건, 그 사람이 좋아서이기도 하지만, 그 사람 옆에 있는 내가 괜찮아 보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거울은 내가 보고 싶은 것만 보여주지 않는다.
나와 비슷한 사람이 불편한 경우, 심리학은 몇 가지 다른 경로를 제시한다.
첫 번째는 부정적 자기 인식의 투사다.
내가 나 자신에 대해 불만족스러운 부분 예를 들어, 지나치게 예민한 성격, 완벽주의, 타인의 평가에 민감한 면, 이런 것들을 나는 어렴풋이 알고 있지만, 정면으로 마주하고 싶지는 않다.
그런데 나와 비슷한 사람이 그 면을 고스란히 보여주면, 그건 피하고 싶었던 거울을 억지로 들이미는 것과 같다. 내가 싫어하는 나를, 타인의 몸으로 다시 보게 되는 것이다.
프로이트는 이것을 투사(Projection)라고 불렀다.
자기 안에서 받아들이기 어려운 특성을 타인에게서 발견하고, 타인을 향해 불쾌감을 느끼는 것.
상대가 싫은 게 아니라, 상대에게서 보이는 내가 싫은 것이다.
두 번째는 자기 차별화 욕구의 충돌이다.
인간은 소속감과 동시에 고유성(Uniqueness)을 원한다.
스나이더(Snyder)와 프롬킨(Fromkin)의 고유성 이론에 따르면, 나와 너무 비슷한 사람을 만나면 자기 정체성이 희석되는 느낌을 받는다.
"나만의 것"이라고 생각했던 관점, 경험, 감수성이 상대에게도 있다는 걸 알게 되면 편안함이 아니라 위협을 느낀다. 내가 특별하지 않다는 불안. 이것은 상대에 대한 반감으로 나타나지만, 실은 자기 존재의 고유함이 흔들리는 데서 오는 공포다.
세 번째가 있다. 이건 심리학 교과서에는 잘 나오지 않지만, 내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자주 발견하는 것이다.
겉으로는 비슷한 행동을 하는데, 구조가 전혀 다른 경우다.
예를 들어, 나도 내 이야기를 하는 걸 좋아한다. 그런데 자기 말만 하는 사람이 싫다.
이건 모순일까. 아니다. 겉이 비슷한 거지, 안이 같은 게 아니다.
내가 내 이야기를 하는 건 대화 안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상대의 이야기를 듣고, 흐름을 읽고, 그 맥락 위에 내 경험을 얹는다.
나의 "내 얘기"는 독백이 아니라 응답이다. 상대의 서사와 나의 서사가 만나는 지점을 찾는 행위다.
자기 말만 하는 사람은 다르다.
상대가 무슨 말을 했든, 대화가 어디로 흐르고 있든, 자기 이야기로 덮어버린다.
이건 대화가 아니라 방송이다. 수신 없는 송신.
그런데 밖에서 보면 이 둘이 비슷해 보일 수 있다. 둘 다 자기 이야기를 많이 하는 사람이니까.
그래서 이런 사람을 만나면 불편함과 동시에 불안이 온다. "혹시 나도 저렇게 보이는 건 아닌가." 비슷해 보이는 행동이 전혀 다른 구조에서 나온다는 걸 나는 알지만, 밖에서 보는 사람은 구분하지 못할 수도 있다.
이것이 비슷한 사람이 주는 불편함 중 가장 날카로운 종류다.
내가 가장 경계하는 방식으로 나와 비슷해 보이는 존재.
그 사람이 싫은 건 내 안의 그림자 때문이 아니라, 그 사람의 존재가 나의 방식을 오염시킬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그래서 비슷함이 편함이 되려면 조건이 있다.
나와 비슷하면서, 내가 수용한 부분을 비추는 사람은 편하다.
내가 "이건 나야"라고 받아들인 면을 상대도 갖고 있으면, 그건 동질감이 된다.
나와 비슷하면서, 내가 수용하지 못한 부분을 비추는 사람은 불편하다.
내가 아직 인정하고 싶지 않은 면을 상대가 그대로 갖고 있으면, 그건 동질감이 아니라 직면이 된다.
그리고 나와 비슷해 보이면서, 실은 내가 가장 경계하는 구조로 작동하는 사람은 불편함을 넘어 불안을 준다.
닮은 것 같은데 본질이 다르기 때문에, 구분하지 못하는 외부의 시선이 두려워지는 것이다.
결국 '다름'의 경우와 구조가 같다.
끌림과 거북함을 결정하는 건 상대가 아니라, 내가 나 자신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느냐다.
다른 사람이 거울이 되는 건 '다를 때'만이 아니다.
비슷할 때도 거울은 작동한다.
다만 비슷할 때의 거울이 더 잔인하다.
다른 사람에게서 나를 발견하는 건 거리를 둘 수 있지만, 비슷한 사람에게서 나를 발견하면 빠져나갈 곳이 없다.
그래서 나는 비슷한 사람이 불편할 때, 세 가지를 구분하려고 한다.
이 사람이 보여주는 것 중에, 내가 아직 받아들이지 못한 내 모습이 있는가.
그렇다면 그 불편함은 나를 더 알아가라는 신호다.
상대가 보여주는 거울을 피하지 않고 들여다볼 때, 나는 내가 외면하던 부분과 조금씩 화해할 수 있다.
이 사람의 존재가 나의 고유함을 위협하고 있는가.
그렇다면 흔들릴 필요가 없다. 비슷한 경험을 가진 사람이 있다고 해서 내 경험의 가치가 줄어드는 건 아니다.
같은 풍경을 봐도 사람마다 다른 그림을 그린다.
아니면, 겉은 비슷해 보이지만 실은 내가 가장 경계하는 방식으로 비슷한 것인가.
이 경우가 가장 주의가 필요하다.
"나도 저런 건 아닌가"라는 불안이 올라오지만, 겉이 비슷하다고 안이 같은 건 아니다.
대화 안에서 자기 이야기를 꺼내는 것과, 대화를 자기 이야기로 덮는 것은 전혀 다른 행위다.
내 방식에 대한 확신이 있다면, 비슷해 보이는 사람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을 수 있다.
비슷한 사람이 주는 편안함에는 감사하되, 너무 안주하지 않는 것.
비슷한 사람이 주는 불편함에는 귀 기울이되, 거기에 잠식당하지 않는 것.
편한 거울이든 불편한 거울이든, 결국 비추는 건 상대가 아니라 나다.
중요한 건 거울 앞에서 도망치지 않는 것,
그리고 거울이 보여주는 것과 내가 선택한 것을 혼동하지 않는 것이다.
비슷함도, 결국 내 서사의 한 장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