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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욱 May 10. 2019

언제 제일 행복하세요?

나는 군산에서 작은 마트를 운영 중이다. 나를 소개하자 새로 나간 모임에서 누군가 내게 이런 질문을 해왔다. 


"장사하면서 언제가 제일 행복했어요?"


행복? 진상이랑 싸운 기억은 강렬히 남았어도 행복한 기억은 바로 떠오르지 않았다. 며칠이 지나도 그 질문은 계속 내 귓가를 맴돌았다. 그래도 이 일을 시작한 지 3년이 지났다. 언젠가 하루쯤은 눈물 쏙 빠지도록 행복한 날이 있지 않았을까. 그 날 이후로 하루하루를 좀 더 면밀히 살피기 시작했다. 여느 때처럼 손님들과 얘기를 나누던 중에 이런 게 바로 행복이 아닐까 싶은 순간이 드디어 왔다.


"사모님, 오늘은 애호박을 사셔야 합니다"

"왜요?"

"잘 안 팔립니다(웃음)"

"뭐예요 호호호 애호박은 아직 집에 남았는데"

"괜찮아요. 저도 그냥 말 걸고 싶어서 그랬어요."


내가 행복했던 순간은 방금처럼 애호박을 소재삼아 고객들과 이야기 나누면서 서로 한 번이라도 웃을 때, 아이에게 과자를 선물로 줬는데 아이가 '엄마 이거 먹어' 하면서 엄마를 먼저 챙기는 모습을 볼 때, 아이에게 풍선으로 꽃을 만들어줬더니 마치 세상을 다 가진 듯이 함박웃음 지으며 '우와 꽃이다'하며 좋아할 때였다. 이런 일들은 하루에도 몇 번씩 일어난다. 뭔가 거창하고 특별해 보이는 일은 아닐지라도 우리 마트를 이용하는 주변 이웃들과 얘기를 나누고 함께 웃음을 나누는 순간이면 물통에 물감이 퍼져나가듯 내 얼굴에도 미소가 번졌다.


가만 생각해보니 행복이란 것이 눈물 쏙 빠지도록 거창한 것만은 아닌 것 같다. 젊은 날엔 젊음을 모르고 사랑할 땐 사랑을 모르는 것처럼 행복할 때는 행복한지 모르는 것일지도. 나태주 시인은 행복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저녁 때 돌아갈 집이 있다는 것, 힘들 때 마음속으로 생각할 사람이 있다는 것, 외로울 때 혼자서 부를 노래가 있다는 것. 이 모두가 다 행복이라고 했다. 어쩌면 우리는 눈물 쏙 빠지도록 대단한 사건이 없더라도, 수중에 억만금을 갖고있지 않더라도, 사회적으로 엄청난 인정을 받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함께 웃음을 나눌 이웃만 있다면 이미 충분히 행복해 왔는지도 모른다. 


나는 오늘도 행복한 하루를 보내기 위해 고객들에게 먼저 말을 건넨다.


"사모님, 오늘은 애호박을 사셔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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