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경욱 Jun 24. 2019

100% 사과주스와 100%짜리 진심

하은이가 가게를 뛰어 들어오며 물었다.


"아저씨, 사과주스 있어요?"

"응, 당연히 있지. 사과주스 마시고 싶어서 왔어?"

"아니, 아저씨 그게 아니라요... 친구랑 싸워서 사과할려구요..."

"하은이 친구랑 싸웠어?!"

"네... 아저씨..."


하은아, 자꾸 아저씨, 아저씨 하면 친구 말고 아저씨한테 먼저 사과해야 될 거 같은데?

라는 말은 그냥 속으로 삼켰다.


"엄마가 사과주스 주면서 다연이한테 사과하라고 그랬어요!"

"그랬구나.. 주스는 저쪽에 있어"

"네, 아저씨!"


하은이는 내 손가락이 가리키는 방향을 향해 다시 발랄하게 뛰어가며 대답했다.

그리고는 곧 사과 100이라고 쓰인 주스를 들고 돌아왔다.


시중에 유통되는 수많은 주스들의 포장지는 100%를 광고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실제로 그 안에 과일이 100% 들어있지는 않다. 주스는 과즙 함량에 따라 혼합음료, 과채음료, 과채주스로 나뉜다. 주스 중 대부분은 주로 과일농축액에 물을 타는 방식으로 생산되는 '과채음료'다. 농축액에 물을 타는 것이 아닌 착즙과 같은 과정으로 생산된 '과채주스'는 과즙 함량도 높지만 그만큼 가격도 더 비싸다. 하지만 일반 소비자가, 특히 하은이가 이런 상세한 내용까지 알기는 쉽지 않다. 주스가 그냥 주스지 뭐.

혼합음료 : 과즙 함량 10% 미만
과채음료 : 과즙 함량 10~95%
과채주스 : 과즙 함량 95% 이상

"하은아, 근데 엄마가 시켜서 사과하는 거야 진짜로 하은이가 사과하고 싶어서 하는 거야?"

"진짜로 하고 싶어서 하는 거예요! 그래서 100으로 골랐잖아요! 아저씨는 이런 거 모르죠?"


마트 아저씨는 그냥 빙긋 웃었다.


"하은아, 나중에 친구가 사과받아주면 둘이 손 잡고 와. 그땐 아저씨가 선물로 진짜 사과도 줄게"

"우와, 진짜요? 고맙습니다. 아저씨!"


진짜 사과를 갈아서 만든, 생과일 착즙주스만 100%짜리 주스일까. 어쩌면, 과즙 함량에 따른 과채주스니 과채음료니 하는 건 모두 나 같은 아저씨들이 만들어놓은 아저씨들만 따지는 규칙과 기준인지도 모른다.


하은이의 진심이 100% 담긴 주스라면, 과즙함량이 어떻든 그건 그 나름대로 100% 주스 아니었을까.

진심 어린 사과와 함께 사과주스를 내밀던 그 순간만큼 하은이는 100%짜리일 테니까.


나는 오늘 몇 % 짜리 진심으로 살았을까.

순도 100% 아저씨의 머리가 복잡해지는 순간이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