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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욱 Mar 15. 2021

시궁창탈출 넘버원! 사장님 말씀

꿈은 높은데 현실은 시궁창이야

생에 처음으로 우울증에 가까운 슬럼프를 겪고 있었다. 매장에 나가면 짜증스러운 일들만 투성이고 뭐 하나도 마음에 드는 것이 없었다. 나는 죽어라고 발버둥을 치는 데 아무도 나를 도와주지 않는다고 느꼈다. 매일매일 헤어 나올 수 없는 부정적인 감정들만 끊임없이 자가발전했다. 머릿속으로는 하루에도 수십 번씩 이 말이 떠올랐다. 


'하... 꿈은 높은데 현실은 시궁창이야'


보고 들은 게 있으니 꿈은, 눈높이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올라가 있었다. 나름대로 발버둥 치다 보면 '꿈만 같은 조직'은 아니더라도 '썩 괜찮은 조직'은 만들 수 있을 거라 믿었다. 하지만 매일 내 눈에 들어오는 모습은 시궁창이었다. 


사실 현실이 시궁창인 이유는 아주 간단했다. 꿈만 야무지게 꿀 줄 알았지 그 꿈에 닿기 위해 노력은 제대로 하지도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 


분명 운영 초기에는 나 대신 누군가가 무엇하나 해주리라 기대하지 않았다. 하지만 어느새 시간이 흐르면서 기대는 게 많아졌다. 나도 모르는 새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으면서 '이것도 안돼 있고, 저것도 안돼 있네. 도대체 뭐 하나 제대로 되는 게 없네'라며 남 탓만 하는 사람으로 바뀌어 있었다.  


비범한 결과를 바라면서 평범한 노력을 하는 건 욕심이다. 그런데 나는 노력조차 제대로 하지 않고 불평과 불만만 반복하고 있었다.


그래, 어쩌면 이 모든 게 나의 '욕심'에서 비롯된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따지고 보자면 지금까지 이뤄낸 성과들이 나쁘지는 않았다. 지역에서는 손꼽히는 매장 중에 하나가 됐고, 우리의 이야기가 책으로도 엮어 나오기까지 했다. 어쩌면 욕심의 속도가 노력의 속도를 추월하고 있어서 생긴 문제인지도 몰랐다.


이 모든 불행의 근원을 제거하기 위해 욕심을 버려보자 마음먹었다. 큰 욕심 내지 말고 지금은 시궁창 같아 보이는 이 모습도 '이 정도면 괜찮다'라고 마음을 먹어보기로 했다.


'이 정도면 괜찮다'라는 말이 처음에는 편했다. 하지만 얼마 가지 않아 오히려 마음이 더 불편해졌다. '미래를 대비하지 않은 채 아무것도 모른척하고 살아도 우리가 계속 생존할 수 있을까?' 


욕심을 버리면 마음이 편해질 줄 알았는데 이내 '이 정도면 잘하고 있다'는 그 말이 나 같은 사람들에게는 족쇄로 다시 돌아왔음을 알게 됐다. 


그런데 정말 뜬금없게도, 어떤 '사장님 말씀'을 알게 되면서 마음이 편해지기 시작했다.

LG생활건강 차석용 부회장님의 CEO Message였다.


엥? 갑자기 뜬금없이 사장님 말씀?

나는 마트를 운영한다. LG생활건강의 화장품을 제외한 생활용품과 음료 두 사업 부문의 제품들을 팔고 있는 사람이다. 판매의 최일선에 있는 사람으로서 생활용품과 음료산업이 성장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누구보다 피부로 느낀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매년 불경기를 말하며 현상유지만 해도 '이 정도면 잘하고 있다'라고 말한다. 


차석용 부회장님은 그 어려운 시장 상황 속에서, 그 성장하기 어려운 사업을 16년 연속으로 성장시켜오신 전설적인 경영인이다. 혹자는 LG생활건강의 성장이 화장품사업부 단독의 성장 덕분으로 알기도 한다. 하지만 자세히 내용을 뜯어보면 화장품 사업만 성장한 것이 아니고 생활부문과 음료부문도 꾸준히 성장했기에 가능한 성과였다.


2019년 LG생활건강의 성장 스토리를 담은 '그로잉업'이라는 책을 독서모임에서 읽으며 처음으로 차석용 부회장님을 알게 됐다. '그로잉업'은 홍성태 교수님께서 차석용 부회장님의 CEO Message와 LG생활건강 임직원의 내부 인터뷰를 통해서 엮으신 책이다. 차석용 부회장님이 어마어마한 성과를 낸 경영인임은 분명하지만, 혹시 홍성태 교수님께서 너무 좋게만 보신 것은 아닐까 궁금해졌다. 제 3자의 해석이 아닌 그의 Message를 원전으로 직접 읽어보고 싶어 졌다.


얼마 전 어렵게 LG생활건강 내부 공유용으로 제작된 CEO Message를 구해서 읽게 됐다. 이상하게도 분명 나와 전혀 관계없는 다른 회사의 사장님 말씀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내게 직접 말씀하는 것 같은 구절들이 많았다. 그리고 꼬마 경영자로서 어떤 마음으로 어떻게 조직을 운영해갈지에 대한 나름의 해답을 얻을 수 있었다.

불행은 닥치는 것이고 행복은 저절로 오는 법이 없습니다
성공의 반은 죽을지 모른다는 급박한 상황에서 비롯되고, 실패의 반은 잘 나가던 때의 향수에서 비롯됩니다
주요 경쟁사들이 최근 성장의 어려움을 겪고 고전하는 상황에 비추어 '우리는 이만하면 참 잘하고 있는 거다'라는 분들도 있는 것 같은데, 이는 매우 위험한 생각입니다. 우리의 비교대상은 남이 아니라 우리 자신이어야 합니다.

맥락을 떼어놓고도 각각 훌륭한 메시지였지만, LG생활건강이 어떤 상황에 처했을 때 어떤 맥락에서 이런 말씀을 하셨는지 알고 싶어 회사와 시장 상황에 관한 공부를 좀 더했다. 알면 알수록 나 혼자만 알고 있기 너무 아까웠다. 


동시에 차석용 부회장님께 정말 답을 듣고 싶은 질문들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정말 운이 좋으면 부회장님께 내 글(LG생건 성장의 비밀, 차석용과 CEO Message)이 닿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를 담아 글을 썼다. 이 글이 닿을 수만 있다면, 정말 듣고 싶었던 그 질문에 대한 답을 들을 수도 있지 않을까 꿈을 꾸며 글을 발행했다.


그리고 LG생활건강 측으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차석용 부회장님께서 며칠 전 작성했던 내 글을 읽으셨다는 내용이었다. 내 글을 좋게 봐주신 것만 해도 감사한 일인데 이렇게 신경까지 써주시다니.


몇 시간 뒤 회사 측에 연락을 드렸다. 좋게 봐주셔서 감사하다고. 사실 차석용 부회장님께 닿기 위해 글을 썼다고. 꼭 여쭤보고 싶은 것들이 있다고. 메일을 보내드릴 테니 전달해주실 수 있으시냐고. 장담할 수 없으나 알겠다며 일단은 보내보라 말하셨다.


수많은 질문들이 머릿속을 채웠지만 그중에 가장 꼭 답을 듣고 싶은 세 가지만 선정했다. 그리고 저녁에 메일을 보내드렸다.


답이 올지 안 올진 아무도 장담할 수 없었다. 아니 어쩌면 내 글이 부회장님께 닿았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기적 같은 일이라 생각했다. 그래도 1주 뒤? 1개월 뒤? 그래도 차석용 부회장님이라면 언젠가는 답장을 주시지 않을까 내심 기대를 하며 잠을 청했다.


그리고 그다음 날 점심.


띵동.


'차석용 부회장님의 답신을 전합니다'


이렇게 빨리? 진짜로?

기적 같은 일이었다. 


그토록 듣고자 했던 질문에 대한 대답은 역시나 내 삶을 흔드는 말들이었다. 농구선수를 꿈꾸는 아이가 NBA 스타플레이어에게서 game worn shoes를 받고 감격하는 것처럼 좋아할 수밖에 없었다. 


그가 존경스러운 이유는 세상 사람들이 단편적으로 보는 것처럼 고액연봉을 받는 코스피 시총 10위권의 대기업 CEO이기 때문이 아니다. 


내가 이해한 차석용 부회장님은 언론을 통해 요란하게 자신의 성과를 포장하려 하기보다 묵묵하게, 그리고 묵직하게 결과로 말하는 진짜 경영자였다. CEO Message를 통해서 보여주셨던 모습과 아주 단편적일지라도 내가 직접 회사와 커뮤니케이션하면서 봤던 모습 간에는 괴리감이 전혀 없었다. 과연 나였다면, 그렇게 빨리 글을 찾아 읽고, 그 글의 저자에게 감사인사를 전할 생각을 하고, 또 받은 메일에 그렇게 빨리 답장할 수 있을까. 


내가 CEO Message와 LG생활건강에 대해 공부하며 봐왔던 모습, 

그리고 내가 경험했던 그의 모습은 


분명히 내가 '닮고 싶은 사람'이었다.


후배 경영자는 선배 경영자의 등을 보며 자란다

자식이 부모의 등을 보며 자라듯, 꼬마 경영자들도 위대한 경영자들의 등을 보며 자란다. 나는 누군가를 롤모델로 가질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큰 자산이라고 생각한다. 선택의 기로에서 '그분이라면 어떻게 했을까'를 상상할 수 있는 인물이 있는 것만으로도 위안이 되고 의사결정의 방향성이 정해진다. 사실 지금까지는 특별히 그런 인물이 머리에 떠오르지 않았는데, 나도 이제는 그런 롤모델이 생겼다. 물론 혼자만의 뇌피셜이니 그 답이 진짜 그럴지는 알 수 없지만 최소한 혼자서 허우적대는 느낌에서는 벗어날 수 있었다.



차석용 부회장님이 내게 답장해주신 내용 중에는 '발전이 언제나 일직선으로 가는 것은 아닙니다. 발전의 비결은 실수를 인식하고 그것을 새로운 방식으로 바라보는 것입니다'라는 말이 있다. 이는 레이 달리오가 원칙에서 말한 발전의 방향과도 유사하다. 우리가 끊임없이 시도하는 한 이 세상에 실패는 없다. 오직 경험 혹은 성공만이 존재할 뿐이다. 


비록 지금은 잠시 방향을 못 잡고 우왕좌왕하는 것처럼 느껴질지라도 결국에 거시적인 관점에서는 분명한 우상향으로 가고 있다는 것, 그리고 결국에는 이 과정 끝에 조금 더 발전된 내가 있을 것이라는 믿음만 존재한다면 어떤 시행착오와 어려운 시기도 끝내 견뎌낼 수 있다. 


차석용 부회장님으로부터 답장을 받고 난 뒤, 그동안 나를 지배해왔던 '욕심'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보게 됐다. 


차석용 부회장님은 CEO Message에서도 다양한 표현을 통해 Winning Aspiration(승리에 대한 열망)을 말씀해 주셨다. 

Winning Aspiration은 단순히 경쟁자를 물리치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자신의 목표를 달성하는 것이고, 자신이 기준으로 삼았던 것을 넘어서는 것입니다. 또한, 능력의 한계치까지 도달하는 것이며 지속적으로 성장해 나가는 것입니다.

내가 품었던 것은 승리에 대한 '열망'이 아니라 방향성을 잃은 '욕심'이었다. 


하늘에 가까워지고자 했던 이카루스는 그의 욕심 때문에 추락했다. 하지만 인류는 날고자 하는 열망 덕분에 비행기를 발명해냈다. 시궁창 같다고 생각한 나의 현실은 어쩌면 그저 욕심만 부리고 있었던 내가 자초한 끝없는 추락 때문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이제야 들었다. 


이제는 나를 추락으로 이끄는 욕심만 부리며 남 탓만 하고 있을 것이 아니라 더 멀리 날기위해 품어야 하는 열망을 깨닫게 됐다. 남 탓만 하며 투덜대는 것이 아니라 시궁창에서 탈출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 지에 대해 다시 고민해보기로 했다. 남탓만 하며 방향잃은 화를 분출해내기보다 어떻게하면 함께 더 좋은 곳을 향할 수 있을지, 그리고 그 방법은 무엇이여야만하는지에 대해 더 진지하게 공부해보기로 했다.


깊은 잔향을 남기는 경험

내가 쓴 글을 통해 내가 닮고 싶은 분들과 연결되고 그분들께 더 깊이 배우며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은 정말 오래오래 간직될 아름다운 경험이다.


이성당 김현주 대표님을 뵀을 때, 성심당 임영진 대표님, 김미진 이사님을 뵀을 때, 그리고 이번 차석용 부회장님의 답장을 받았을 때 모두 내게는 인생에 아주 깊은 잔향을 남기는 경험이다.


꽃이 지고 나면 꽃 향기는 사라질지 몰라도 그 자리에는 열매가 남는다. 내가 닮고 싶은 분들이 남겨주신 이 진한 향이 어떤 열매가 될지는 이제 내게 달려있다.


나는 좋은 스승을 만나면 항상 주제넘을지라도 청출어람을 말한다. 그 목표가 이루기 쉬워서가 아니라 청출어람이 스승에게 드릴 수 있는 최고의 보은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말할 때마다 부담스럽지만, 귀중한 가르침을 주신 스승들을 생각하면 꼭 이뤄내고 싶은 목표다. 


이번에는 더더욱 청출어람이라는 말을 꺼내기가 참 쉽지 않다. 하지만 깊고 아름다운 잔향을 남기는 가르침을 주신 만큼 끊임없이 정진하며 나만의 방식으로 어떻게든 청출어람 해내겠다. 


오늘의 이 감정을 절대 잊지 않기 위해 이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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