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이 쏘아 올린 아주 큰 공
21년 3월 11일 NYSE에 쿠팡이 상장됐다. 공모가 35달러로 시작한 쿠팡은 장중 최고 69달러까지 치솟기도 하며 잠시 시가총액 100조 원이 넘는 회사가 되기도 했다. 3월 24일 현재 기준으로는 약 45달러 수준에서 거래되며 시가총액은 약 88조 원이 되었다.
쿠팡의 시가총액 100조가 쏘아 올린 임팩트는 아주 컸다. 쿠팡이 SK하이닉스를 넘고 우리나라 2번째로 큰 회사가 되었다느니, 100조는 금방 꺼질 거품이라느니 여기저기서 온갖 말들이 쏟아졌다. 쿠팡의 시가총액 100조는 주요 경쟁사라고 볼 수 있는 네이버(약 64조), 이마트(약 5조), CJ대한통운(약 4조) 등을 모두 합친 규모보다도 크다 보니 단순 비교하면 놀랄만한 사건이긴 했다.
하지만 시가총액은 주식시장에서 평가하는 상대적인 가치일 뿐, 스카우터에 찍히는 전투력처럼 절대적인 기업의 경쟁력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쿠팡의 경쟁력이 출중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현재의 시가총액만을 가지고 쿠팡이 네이버, 이마트 등을 모두 다 제치고 우리나라 e커머스 시장을 독점할 것처럼 이해하는 것은 너무 과한 해석이다.
쿠팡에게 이번 상장은 여러 가지 의미가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추가 투자금 확보의 의미가 가장 크다. 쿠팡은 이번 상장으로 약 5조 1,700억을 조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쿠팡은 이 투자금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우리나라 커머스 시장 경쟁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해야만 한다. 당신이 쿠팡의 CEO라면, 과연 이 돈을 어디에 어떻게 쓰고 싶은가?
쿠팡의 경쟁력과 경쟁사들의 움직임을 고려해보면 쿠팡의 여러 사업 중 풀필먼트(제트배송), 라스트 마일(쿠팡이츠), PB(CPLB) 사업이 가장 매력적인 투자처라고 생각한다.
로켓배송 받고 풀필먼트 하나 더
단연코 물류는 쿠팡의 최고 경쟁력이자 끊임없이 강화해야 할 핵심 경쟁력이다. 쿠팡은 자신들의 가장 강한 경쟁력인 물류를 활용하여 '3PL(3자 물류)'와 '풀필먼트(Fulfillment)'를 추가적인 수익모델로 생각하고 있다. 이 두 단어가 익숙하지 않을 수도 있는데 후려쳐서 말하자면 3자 물류는 택배사업, 풀필먼트는 종합 배송대행사업(보관/배송/교환 통합 서비스)이라고 보면 된다. 풀필먼트는 쿠팡이 상장을 준비하며 미국 증권거래 위원회에 제출한 S-1에 115번 등장했다. 막대한 투자금으로 향후 쿠팡이 뭐부터 제일 하고 싶은지 아주 명확히 보여주는 부분이다.
오픈서베이 설문에 의하면 사용자들의 79.9%는 쿠팡을 사용하는 이유로 '빠른 배송'을 말했다. 쿠팡은 지금까지 빠른 배송을 위해 누적적자 4.5조 원을 감수하며 압도적인 물류 인프라를 구축했다. 쿠팡은 이미 국내 30개 도시에 170개 이상 물류센터를 가지고 있고 추가로 8,700억을 들여 7개(대구, 광주, 음성, 김천, 함양, 대전) 물류센터를 건립할 예정이다. 촘촘해지는 쿠팡의 물류센터를 기반으로 쿠팡은 지금의 로켓보다 훨씬 더 빠른 배송을 향해 가고 있을 뿐만 아니라 본인들의 물류 인프라까지도 서비스로 제공할 준비를 하고 있다.
쿠팡의 롤모델인 아마존은 이미 FBA(Fulfilment By Amazon)라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판매자가 아마존의 물류센터에 판매할 물건을 갖다 놓기만 하면 보관, 출고, 배송, 사후처리 등은 다 아마존이 알아서 해주는 서비스다. 쿠팡은 지난 2월 로켓제휴라는 이름으로 시작했던 풀필먼트 사업을 제트배송이라는 이름으로 변경하며 풀필먼트 사업에 본격적인 시동 걸고 있다. 한국의 아마존을 자청하는 쿠팡답게 압도적인 물류 경쟁력을 바탕으로 그동안 숙원해왔던 풀필먼트 서비스를 위해 투자를 아끼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쿠팡이 풀필먼트 서비스와 함께 3PL(택배) 사업도 병행할 가능성도 있다. 쿠팡의 자체 물동량은 연간 약 5억 개로 추정된다. 이 물동량만으로도 롯데(약 3.8억 개) , 한진(약 3.7억 개)을 넘어 단번에 국내 2위 택배사가 될 수 있는 만큼 택배 사업은 쿠팡에게 부담이 상대적으로 덜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쿠팡의 가장 큰 경쟁자 네이버도 NFA(Naver Fulfillment Alliance)라는 이름으로 풀필먼트 사업을 준비하고 있다. 사실 직매입 위주의 사업구조를 가진 쿠팡보다 외부 셀러들이 활동하는 오픈마켓인 네이버가 풀필먼트 사업에 있어서는 더 유리한 구조다. 네이버 스마트스토어에는 40만 명이 넘는 셀러가 있는데 이들 중 대부분은 물류에 어려움을 가지고 있는 영세한 셀러들이다. 네이버는 풀필먼트의 필요성을 여실히 느끼는 잠재고객 40만 명을 확보하고 사업을 시작하는 셈이다. NFA는 올해 7월 생필품(대한통운), 신선식품(이마트), 대형 가구(하우저) 등 각기 다른 업체들이 각기 다른 카테고리를 담당하는 형식으로 본격적인 시작을 할 예정이다.
지금까지는 '배송은 쿠팡, 검색은 네이버'라는 말이 있었다. 하지만 쿠팡도 네이버 연합도 모두 물류에 큰 투자를 진행하고 있다. 물론 지금까지 투자한 규모 그리고 앞으로 투자할 규모를 보면 쿠팡의 물류경쟁력이 분명히 앞서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점차 시간이 지날수록 쿠팡과 네이버의 反쿠팡연합 간의 물류경쟁력은 상향 평준화되며 결정적인 차별점이 되기는 어렵지 않을까 싶다.
그렇다면 쿠팡 입장에서는 중장기적으로 물류에만 올인하기보다 '쿠팡은 할 수 있지만 네이버는 도저히 하기 힘든 사업'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방향 위주로 갈 것 같다.
라스트 마일, It's 쿠팡이츠 타임
쿠팡은 가지고 있지만 네이버는 가지고 있지 않은 사업은 바로 배달앱이다. 압도적인 점유율은 아니지만 쿠팡은 2020년 9월 기준 배달의민족(59.7%), 요기요(30%)에 이은 3위(6.8%) 사업자다. 배달음식 시장자체도 빠르게 성장하고 있지만 단순히 배달음식 시장뿐만 아니라 라스트 마일 물류까지로 사업을 확장해서 바라보면 쿠팡에게 배달앱 시장은 아주 매력적이다.
이미 우아한형제(배달의민족)은 라스트마일 시장을 본격적으로 공략하기 위해 2019년 B마트를 출시했다. B마트는 도심형 물류거점에서 30분 내에 빠르게 배송이 가능하다는 점이 가장 큰 특징이다. B마트 같은 라스트 마일 물류는 로켓배송이 채워줄 수 없는 즉시 배송 시장을 개척하며 그 가능성을 증명하고 있다고 평가받는다. 물류에 막대한 투자를 진행하며 경쟁력을 강화하고 있는 쿠팡 입장에서는 이륜차를 이용한 라스트 마일 물류까지 점령한다면 배송 능력이 더 촘촘해지고 더 빨라질 수 있다. 말 그대로 무결점 물류 끝판왕이 될 수도 있다.
단기적으로 국내 라스트 마일 시장에서 2위 사업자 요기요의 향방이 아주 중요하다. 쿠팡이 라스트 마일 투자를 생각한다면 요기요는 아주 탐나는 매물이긴 하지만 쿠팡이 요기요를 인수하기는 어렵게 됐다. 딜리버리히어로측에서는 주요 경쟁사로 판단한 카카오와 쿠팡을 입찰에서 제외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요기요 인수후보로는 사모펀드 같은 재무적 투자자뿐만 아니라 GS리테일 같은 전통 유통기업들도 거론되고 있다. 특히 GS리테일은 요기요가 요마트를 출시하기 전 2019년에 이미 요기요에 입점하여 배달 서비스를 제공해본 경험이 있기도 하고 지금은 자체적으로 우리동네 딜리버리라는 이름의 도보 배달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요기요가 어디에 인수될 지는 아직 아무도 알 수 없다. 하지만 만약 GS리테일이 요기요를 인수한다면 쿠팡 입장에서는 B마트를 보유한 배달의민족 이외에도 전국 1만 4,688개 매장을 보유한 강력한 라스트 마일 물류 경쟁자가 하나 더 늘어나는 셈이다. 쿠팡 입장에서는 요기요가 인수된 후 본격적인 시장활동을 전개하기 전까지 시간을 활용해 최대한 선제적으로 쿠팡이츠에 투자를 늘리는 대응을 할 수밖에 없을 것같다.
쿠팡 노브랜드, 쿠팡 스탠다드 CPLB
쿠팡은 하고 있지만 네이버는 하기 어려운 사업이 있다. 바로 PB(Private Label:자체 개발상품) 사업이다. PB사업은 유통회사가 제조부터 판매까지 담당할 수 있기 때문에 수익성이 더 좋을 뿐만 아니라 다른 유통업체에서는 찾을 수 없는 독보적인 제품을 판매함으로써 확실한 차별점을 만들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우리나라 대표 PB브랜드인 노브랜드는 2020년 이마트 전문점 매출 중 80%를 담당하며 효자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고 주요 편의점 매출에서 PB 매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30%를 넘었을 정도로 PB사업의 사업성은 시장에서 이미 충분히 증명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네이버는 현실적으로 PB사업을 하기 어렵다. PB상품은 보통 직매입으로 운영되는데 네이버는 자체적으로 운영하는 물류센터가 없다. 게다가 아마존이 자사 PB제품 위주로 검색 결과를 노출하도록 알고리즘을 조작했다는 의혹을 받았던 것과 동일한 의혹을 네이버도 받을 가능성이 존재한다. 이미 상품정보 검색 알고리즘 관련 제재를 받아 이를 두고 공정위와 다투고 있는 네이버로서는 PB사업은 사업성이 분명하다 하더라도 경제성과 규제 이슈로 인해 진행하고 싶은 사업은 아니다.
반면 네이버와 달리 자체적인 물류센터를 보유하고 있고 알고리즘 논란으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운 쿠팡은 2020년 CPLB(Coupang Private Label Business)라는 자회사를 설립하고 본격적으로 PB사업을 준비하고 있다. 쿠팡 내에서 단일 제품으로 가장 많이 팔린 제품이 쿠팡 생수인 '탐사수'일 정도로 쿠팡의 PB사업은 순항 중이다.
쿠팡이 어떤 카테고리를 어떻게 공략할지에 달려있긴 하지만 본격적으로 PB상품을 판매하기 시작하면 사실상 경쟁의 전선은 아주 넓어지게 된다. 생필품 위주의 이마트의 노브랜드부터 패션의류의 무신사의 무탠다드(무신사 스탠다드)까지 PB간의 경쟁 그리고 기존의 브랜드를 구축해온 NB(National Brand, PB의 반대개념)상품들과의 경쟁 모두 시작하는 셈이다. CPLB는 지금까지 상대적으로 소비자의 관여도가 낮은 생필품 위주의 PB상품들을 위주로 판매를 해왔다. 하지만 향후 건강식품부터 화장품, 패션의류까지 다른 카테고리에 성공적으로 진입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문법이 아닌 새로운 문법과 접근이 필요하기에 전방위적인 투자 집행이 필요한 순간이다.
쿠팡이 쏘아 올린 이 큰 공은 앞으로 어디로 갈까
아무리 쿠팡이 이번 상장을 통해 5조라는 큰 자금을 수혈했다고 해도 시장상황이 뭐 하나 우호적인 건 없다. 쿠팡의 눈 앞에는 네이버를 앞세운 反쿠팡 연합뿐만 아니라, 배달앱계의 절대 강호 배달의민족, NB같은 PB 노브랜드 등 강력한 경쟁자들이 대기하고 있다.
제프 베조스는 'Your margin is my opportunity'라고 했다.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는 한 국내 커머스 시장에서 razor thin margin 구조는 확실히 깨지기 어려울 것 같다. 최저가 경쟁도 물류 경쟁만큼 한계치에 가까워지고 있다.
가격과 배송에서 쿠팡과 네이버 간의 간격이 점점 좁혀진다면, 양사의 기본적인 전략방향은 상대방은 쉽게 할 수 없는 사업에 경쟁력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가야만 한다. 네이버는 웹툰, 웹소설 같은 콘텐츠 역량과 네이버페이를 적극 활용한 네이버멤버십을 강화하고 쿠팡은 네이버가 하기 힘든 분야인 쿠팡이츠와 CPLB에서 실마리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이 글에서 소개한 제트배송, 쿠팡이츠, CPLB는 쿠팡이 전개하고 있는 여러 사업들 중 일부일 뿐이며 쿠팡은 이외에도 쿠팡플레이, 쿠페이, 로켓직구 등 다양한 사업들에서 새로운 기회를 모색하고 있다. 어쩌면 이번에 확보한 투자금으로 화끈한 M&A를 단행하며 사람들이 지금까지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새로운 서비스를 출시할지도 모른다.
쿠팡이 쏘아 올린 이 큰 공이 또 어디로 움직일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경쟁자들은 각기 어떻게 움직이는지 주요 시장 참여자들의 분주한 움직임 사이로 생기는 새로운 기회와 위협요인들은 또 무엇이 있을지 계속 관심을 가지며 지켜봐야겠다.
참고자료:
이커머스 - 온&오프 시리즈 1: 쿠팡은 비싼 걸까?, 김진우 애널리스트, KTB투자증권
https://www.ktb.co.kr/research/article/commentary.jspx?cmd=detail&rGubun=&sctrGubun=&web=
http://weekly.chosun.com/client/news/viw.asp?nNewsNumb=002650100001&ctcd=C05
https://www.vop.co.kr/A00001556689.html
https://www.news1.kr/articles/?4232849
http://www.thescoop.co.kr/news/articleView.html?idxno=408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