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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욱 Apr 26. 2022

길은 가면서 만들어 진다

좀 걷고 싶었다. 사업을 시작한지 5년 만에 얻은 휴가다운 첫 휴가었다. 별생각 없이 하루 종일 걸을 곳을 찾는 내게 친구가 제주는 어떠냐 했다. 고즈넉한 해안 둘레길을 뚤레뚤레 걷는 것도 꽤나 운치 있겠다 싶어 급하게 제주행 비행기를 예약했다.

제주는 생각보다 거칠었다. 인생의 의미를 곱씹으며 해안길을 걷고자 했던 내게 '인생은 실전이야 임마'를 외치며 강한 파도를 집어던졌다. 고즈넉하게 둘레길을 걷기는 커녕 조금만 바다에 가까워져도 파도에 신발이 다 젖을 지경이었다. 파도뿐만 아니라 제주의 바닷바람도 너무나 매서웠다. 기자들의 입을 통해서만 들었던 '가만히 서있기도 어려운 바람'이란 어떤 바람인지 몸으로 배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걷고 또 걸었다. 한참을 걷다 보니 난 참 길 같아 보이지 않는 길을 좋아한다는 걸 다시금 깨달았다. 분명히 앞선 사람들이 먼저 걸어갔을 법한 길 같아 보이는 검증 된 길보다 가도 되나 싶은 애매한 길이 더 매력적으로 보였다. 그런 애매한 길을 만나면 이게 진짜 길인지 혹은 가도 안전한 길인지를 고민하지 않았다. '길은 가면서 만들어진다'며 까불거리고 또 설레며 일단 걸어갔다.


모든 길이 다 좋게 이어지지는 않았다. 걷다보면 막다른 곳에 도달해서 결국 갔던 뒤돌아 와야 하기도 했다. 앞만보고 가다가 돌아올 길을 잃어 조난을 당할 뻔 하기도 했다. 하지만, '모든 여행에는 비밀스러운 목적지가 있다'는 말을 증명하듯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제주는 내게 아름다운 풍광을 선물해줬다.

평소라면 절대 읽지 않았을 책을 제주에서 골랐다. 왜인지 모르게 이 책을 다 읽는 게 내 휴가의 마지막이 될 거라 생각했다. 요조의 실패를 사랑하는 직업이라는 책을 골랐다. '모른다는 말로 도망치는 사람과 모른다는 말로 다가가는 사람. 세계는 이렇게도 나뉜다.' 어쩌면 그렇게 오래 걸은 끝에 닿은 진짜 비밀스러운 목적지는 이 문장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여전히 세상에는 내가 잘 모르는 것 투성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발 더 나아가 본다. 모른다는 말로 다가가 본다. 이번 제주 여행에서 아름다운 풍광을 만났듯이 앞으로 만날 무수한 비밀스러운 목적지들을 기대하며.


길은 가면서 만들어지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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