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 보면, 누가 묻지 않아도 가끔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까' 단순히 먹고사니즘을 넘어 어떤 사람으로, 어떻게 살아가며, 어떻게 늙어갈지에 대한 삶에 대한 근본적인 생각 말이다.
삶이란 것이 그렇게 간단하지 않아서 그 누구도 어떻게 사는 삶이 정답인지 명백하게 말하기 어렵다. 하지만 나의 기준에서 벗어나는 명백히 아닌 선택지를 골라내는 작업은 상대적으로 쉽다. 그렇기 때문에 수많은 선택지 중 정답을 찾아 방황하는 것보다 진짜 아닌 오답을 차례로 지워가는 소거법이 '앞으로 어떻게 살지' 고민하는데도움이 될 수도 있다.
이런 접근방법을 고급스러운 단어로 비아 네가티바(Via Negativa)라고 부른다. 라틴어로 '부정의 길'을 의미하는 이 말은 진리가 아닌 것을 제거해 나가는 사고방식을 말한다. 간단히 예를 들자면, 건강이라는 목적을 위해서는 몸에 안 좋은 거 다 하면서 보약을 챙겨 먹는 것보다 단순히 담배를 피우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고방식이다.
최소한 나는 이렇게 살고 싶지 않다
뒤돌아보니 그동안 내가 살아왔던 방식은 비아 네가티바의 방식을 따르고 있었다. 퇴사라는 큰 결정을 할 때도 회사 밖에서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분명하니 퇴사한다기보다 최소한 내가 원하는 삶의 방식은 분명히 이 회사 안에 있지 않다는 확신이 들었기 때문에 나의 결정에 힘을 실을 수 있었다.
2019년 브런치북 프로젝트 대상을 받고 운 좋게 책을 출간한 이후부터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나'에 대해 계속 고민해왔다. 그러나 스스로에게 속 시원한 답을 내리기 어려워 답답했다. 다시 한번 퇴사를 결정했던 그때처럼 비아 네가티바의 힘을 빌려 앞으로 나아가 보기로 했다.
빈 노트에 생각이 나는 대로 내가 살고 싶지 않은 모습을 끄적이기 시작했다. 2019년 나의 첫 책이 내 인생의 강남스타일이 되는 것, 계속 눈빛이 살아있지 못하고 동태 눈깔로 변하는 것, 앞으로 하고 싶은 미래의 일보다 지금까지 해온 과거의 일을 더 길게 늘어놓는 것, 우리들마트나 고사리희망장터가 더 이상 발전하지 못하고 이대로 끝나는 것, 무엇보다 지금 이 정도 그릇의 사람으로 죽는 것은 당장 죽기보다도 더 싫었다.
내 머릿속에서 순서대로 나온 살고 싶지 않은 모습들을 곱씹어보며 나에 대해서 조금 더 이해하고 나만의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나는 오늘보다 나은 내일이 있다고 믿는다. 그리고 오늘의 나보다 내일의 나는 조금이라도 더 나아져있기를 바란다. 누군가는 이 삶의 태도가 끝을 알 수 없는 시지프스의 형벌과 같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나도 이런 나의 성향이 스스로를 끊임없이 채찍질하며 셀프착취하는 것은 아닌지 의심했다. 그러나 내가 내린 결론은 사람마다 이목구비가 모두 다르듯 각자가진 열망의 대상과 강도도 다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내게 끊임없는 성장에 대한 욕구는 고통이 아니라 갈증이자 허기였다. 우리는 갈증을 느낄 때, 허기를 느낄 때 무언가로부터 고통받는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갈증을 느껴야 물을 마시고, 허기를 느껴야 밥을 먹고 결국 그 과정을 통해서 우리의 몸을 건강한 상태로 유지할 수 있다. 나는 성장에 대한 갈증과 허기가 없는 삶은 고통이 없는 삶이 아니라 생존능력이 거세된 삶이라고 생각한다.
절대로 나의 결론이 모두에게 적절한 답이 될 수는 없다. 하지만비아 네가티바식접근하며 오랜 고민을 거치고 나니 내가 진정으로 원했던 삶은죽을 때까지 성장에 대한 갈증과 허기를 놓지 않는 삶이란 것을 명확히 깨닫게됐다.
어디까지가 손바닥이고 어디부터가 손등인가
불가에서는 '어디까지가 손바닥이고 어디부터가 손등인가'라는 질문을 한다. 모르긴 몰라도 대충 손을 펼쳐 손바닥의 가운데 어딘가를 가리키면 누구라도 손바닥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손을 뒤집어 손등의 가운데 어딘가는 손등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명확하게 어디부터가 손바닥의 끝이고 어디부터가 손등의 시작인지를 말하라고 하면 그 누구도 선뜻 대답하기 쉽지 않다.
우리의 삶도 사실은 이와 비슷하지 않은가 생각한다. 우리의 삶도 손바닥과 손등 사이 무수한 지점 그 애매한 어딘가에서 어렵게 찾아야 하는 것은 아닐까.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다면, 어떻게 살기 싫은지를 고민해보는 것도 길을 찾는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당신이 손바닥의 끝과 손등의 시작을 단박에 뽑아낼 수 있는 특별한 사람이 아니라면, 수많은 삶의 모습중 한 모습을 단박에 집어내려 헤매며 방황하지 않기를 바란다.
최소한 손바닥보다는 살기 싫으니 조금 더 손등처럼 살고 싶다든지, 최소한 손등보다는 조금 더 손바닥처럼 살고 싶다는 비아 네가티바의 방식으로 조금씩 움직이다 보면 언젠가 그 오랜 고민의 끝에 우리가 살고 싶은 삶에 가까이 도달할 수 있을지 모른다.
물론 우리의 삶은 손등과 손바닥으로만 나눌 정도로 그리 간단하지 않아 다양한 층위에서 다양한 색깔의 복잡한 고민을 계속 이어가야만 할 것이다. 아마도 우리는 죽을 때까지 이 끊임없고 어려운 고민을 이어가겠지만, 어디로 가야 할지 길을 잃었다는 느낌이 든다면 다음 발자국을 내딛는데 비아 네가티바가 도움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내게 그랬던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