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경욱 Oct 20. 2021

욕심과 만족 그리고 행복에 관하여

꿈은 높은데 현실은 시궁창이야

나는 물욕은 없는 편이지만 성장에 한해서는 아주 지독한 욕심쟁이다. 죽을 때 지금보다 돈 더 못 벌고 죽는 건 안 억울해도 지금보다 더 성장하지 못하고 이대로 죽는 건 억울할 것 같다. 내게 성장은 단순히 커리어 개발이나 지식의 축적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인격적인 면에서든, 지식적인 면에서든, 어떤 면으로든 조금이라도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다. 내게 성장에 대한 욕심은 늘리고 싶다고 늘려지지 않고 줄이고 싶다고 줄여지지 않는 식욕, 수면욕처럼 자연스러운 욕망 중 하나다.


성장에 대한 욕심고통의 연속이다. 성장에 대한 욕심이라는 말은 일견 그럴싸하게 들릴 수도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성장을 위해 이런저런 내용들을 공부할수록 '꿈은 높은데 현실은 시궁창'이라고 생각하는 횟수가 늘어난다. 그리고 이 생각은 나를 철저히 불행하게 만들었다. 다양한 루트를 통해 좋은 사례를 더 많이 알게 되고, 또 운 좋게도 주변에서 실제로 잘 성장하고 있는 사람들을 더 많이 만나게 됐다. 점점 더 아는 게 많아질수록 눈높이는 저 멀리 올라갔다. 하지만 현실은 손바닥 뒤집듯 단시간 안에 바뀌지 않는다. 꿈은 하루에도 몇번씩 한계치를 갱신하며 높아져만 가는데 현실은 지지부진하게 그 자리에 머물러있는 것처럼 보였다. 자연스럽게 꿈과 현실의 간극은 날이 갈수록 더 커져만 갔다.


욕심은 나의 비루한 노력을 빠르게 앞질러 간다. 어떻게든 발버둥을 치며 성장을 향해 한발 한발 나아가려는 나름의 노력은 분명 지속했다. 하지만 끝도 모르고 높아진 눈높이에서 바라본 그 한 발 한 발은 너무도 작고 귀여워서 결국 시궁창 옆 시궁창으로만 보일 뿐이었다. 성장하기 위해 시작했던 공부와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는 노력이 결국엔 불만족으로 돌아와 버렸다. 성장하고자 하는 내 욕심이 나를 불만족으로 가득한 불행한 삶으로 이끌고 있었다.


욕심을 버리면 이 모든 고통이 끝나지 않을까 생각해봤다. 매일매일 시궁창 같은 현실을 살아가며 꿈과 현실의 크나큰 간극을 느끼다 보니 '포기하면 편해'라는 그 말이 떠올랐다. 이 모든 고통은 내 실력과 노력을 우습게 추월하는 욕심에서 비롯된 것은 아닌가. 역시나 행복하기 위해서는 욕심을 줄여야만 하는 걸까. 아니 그런데 애당초 성장에 대한 욕심을 줄인다는 것은 성장동력의 거세를 의미하지는 않는 걸까. 당장의 고통은 없어지겠지만 앞으로 평생 성장이 불가능한 사람이 되어 장기적으로는 더 불행한 거 아닌가.


욕심과 만족에 대한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는 질문과 같은 '더 나은 삶에 대한 욕심'과 '행복을 위한 만족'사이의 무한루프에서 출구를 쉽사리 찾을 수 없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깊은 바다 속으로 점점 가라앉는듯한 기분만 들었다.


그러던 와중에 페이스북 디자인 총괄 부사장이었던 Julie Zhuo의 아주 훌륭한 트윗을 보고 나름의 힌트를 얻게 됐다.


당신이 지불해야만 하는 대가

당신이 능력 있는 사람들에 둘러싸여 일한다면, 당신은 더 빨리 능숙해질 것이다
하지만 당신이 지불해야만 하는 대가는 본인이 무능한 것은 아닐지에 대한 끊임없는 의심이다

당신이 어떤 자산에 충분히 긴 시간 투자한다면, 당신은 돈을 벌 것이다
하지만 당신이 지불해야만 하는 대가는 끊임없이 중요한 트렌드나 거래를 놓치고 있지는 않은지에 대해 걱정이다

(...)

모든 화려한 결과에는 대가가 따른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위대함을 얻기 위한 그 대가가 엄청난 노력이나 희생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뒤에 정신적 싸움이 존재한다. 끊임없는 불만족의 북소리 말이다.

끝은 없다.
끊임없이 성장하고자 하는 사람은 어떻게 이것과 평화롭게 지낼 수 있는지를 배워야 한다.

물론 이 길이 단 하나의 길은 아니다.
때때로 소셜미디어는 무언가를 성취하거나, 승리하거나, 세상을 바꾸는 것만 가치 있는 게임처럼 보이게 하지만

아니다. 당신에게 맞는 게임을 해라.
하지만, 어떤 게임이든 대가는 존재한다는 것을 명심해라.


무언가를 얻기 위해서는 대가를 지불해야만 한다. 롤러코스터를 타든, 회전목마를 타든, 아니면 츄러스만 먹든 놀이 공원에서 재미있게 놀기 위해서 우리는 입장료를 지불해야만 한다. 어쩌면 '지금보다 더 나은 대안은 존재한다'는 그런 믿음을 가진 사람들, 성장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현실은 시궁창'으로 보이는 고통은 놀이공원 입장료처럼 반드시 지불해야만 하는 대가인지도 모른다.


성장을 원한다면, 더 나아진 삶을 원한다면, '꿈은 높은데 현실은 시궁창'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필연적으로 어떻게든 치러야만 하는 대가인지도 모른다. 대가는 전혀 지불하지 않으며 순탄히 성장만 하고 싶었던 나는 놀이공원 입장료는 내기 싫지만 롤러코스터의 짜릿함은 느끼고 싶어 하는 그런 사람이었는지도 모른다. 내가 지불해야만 하는 대가는 무시한 채 그저 나 혼자 열심히만 하면 모든 게 순조롭게 다 잘 될 것이라고 순진하게 믿었는지도 모른다.


삶은 고통이지만, 괴로움은 선택이다

부처께서는 '삶은 고통의 바다(苦海)'라고 하셨다. 하지만 '괴로움은 선택'이라고도 하셨다. 우리 각자가 살면서 치러야 할 나름의 대가는 우리의 삶을 고통의 바다에 깊이 침잠하게 만들지도 모른다. 하지만 부처께서 말씀하신 '괴로움은 선택'이라는 그 말속에는 고통의 바다 속에서도 우리가 괴롭지 않을 수 있는 길이 있다는 말은 아닐까.


우리 각자는 어떤 삶을 살아가고자 하든지 간에 어떻게든 대가를 치를 수밖에 없는 존재다. 그 사실을 인정하고 나의 대가는 무엇인지에 대해 정확히 이해하는 것부터가 꿈과 현실 사이의 간극에서 오는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첫 번째 단추가 될지도 모른다. 내가 치러야만 할 대가를 직시하는 순간에 비로소 욕심과 만족이라는 무한루프의 고리를 끊어낼 수 있다. 그래야 조금 더 자유롭게 한 발을 내딛을 수 있다.


물론 갑자기 하루아침에 부처님 말씀처럼 사는 것은 말처럼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최소한 이제는 고통의 무한루프에 빠지거나 고통의 바다 속 깊숙이 빠지지는 않을 수 있게 됐다.


오늘도 고통의 바다에는 파도가 몰아치지만, 나는 파도 속에서 헤엄치는 법을 배워보기로 했다.

가라앉을 것인지, 잘 헤엄쳐 나갈 것인지는 다시 내 손에 달려있다.



Julie Zhuo 트윗 원문:

The price you pay

https://twitter.com/joulee/status/1433170840611328001


같이 보면 좋을 트윗:

Which game are you playing?

https://twitter.com/joulee/status/1397410762042183681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