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경욱 Dec 04. 2023

그래봤자 토마토? 그래도 토마토.

20 - 영월, 그래도팜

세상에 찰토마토, 짭짤이, 방울 말고 토마토가 뭐 또 있냐?

(출처 : 경욱의 브런치)

마트 아저씨로 수년간 토마토를 팔아왔다. 올해만도 지금까지 805 박스가 넘게 팔고 있다. 그래도 그동안 마트에서 토마토 팔면서 먹은 밥이 얼만데. 내가 토마토 박사는 아니지만 토마토라면 어느 정도 알고 있지 않을까 자부했다.


이번에도 여지없이 그건 무지에서 비롯된 자신감이었다. 내게 완전히 새로운 토마토의 세계가 열렸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토마토스러운 공간, 터치 한 번이면 새벽에도 토마토를 가져다주는 세상에 평균 2주, 길게는 12주 걸려서 받는 전설의 토마토를 파는 영월의 그래도팜을 다녀왔기 때문이다.


그래도 어쩌겠냐, 그래도팜

출처 : 그래도팜 공식홈페이지

그래도팜은 우리나라에 유기농이라는 개념도 없던 83년부터 '그래도 해봐야지, 그래도 어쩌겠냐, 그래도 그럼 쓰냐'를 말하며 농사의 기본인 땅부터 '살아있는 땅'으로 만들어오며 진심으로 토마토를 길러온 곳이다. 우리나라에서 유기농은 '농약 치지 않은' 조금 더 건강한 농법 정도로만 알려져 있지만, 사실 유기농은 재료 본연의 맛과 향을 더 진하게 살려주는 더 나은 식재료를 만들어 내는 농법이다.


하지만 유기농이 유기농이라 불리는 데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절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엄청난 노동과 오랜 기다림이 필요한 농법이기에, 유기농의 개념이 없던 때에는 '굳이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데 왜 사서 고생하냐'는 이야기를 듣기도 했다. 수십 년 동안 현실적인 한계에 부딪혔지만, 그래도팜은 '그래도, 그래도, 그래도'를 외치며 이겨왔다.


농사는 땅에서부터 시작된다

(출처 : 경욱의 브런치)


그래도팜은 농약은 물론 화학비료를 전혀 쓰지 않는다. 참나무 부산물과 미생물을 이용해서 자연숙성발효한 퇴비를 이용한다. 30~40년 동안 각종 양분을 먹고 자란 참나무 껍질로 퇴비를 만들면 볏짚이나 풀 더미보다 탄소율이 높고 영양분이 많다. 우리가 익숙하게 알고 있는 썩은 냄새나는 퇴비가 아니라서 손으로 만져도 전혀 이상하지 않고 코를 가까이 대고 냄새를 맡아도 재료가 썩는 역한 냄새는 전혀 나지 않는다.


계산이 빠르고 약은 사람들은 유기농을 못 합니다. 뚝심 있는 사람만이 이룰 수 있죠. 제대로 된 상품이 나올 수 있으려면 최소 10년 정도는 그런 땅을 만들도록 노력해야 해요. 농토는 식물이 양분을 모두 뽑아 먹기 때문에 관리를 잘 못 하면 점점 나빠지는데, 직접 발효시킨 퇴비를 쓰면서 땅이 점점 좋아지는 걸 느껴요.(원건희)

[톱클래스] 맛있는 토마토 만드는 '브랜드 파머' 그래도팜 원승현 대표, 조선일보


사실 생각해 보면 그렇다. 어차피 물이 다 거기서 거기 아니냐는 사람도, 각각 다른 물에 커피나 차를 타서 마시면 좋은 물의 중요성을 분명히 알게 된다. 땅 그거 뭐 어딜 가나 널려있는 거 아니냐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지력이 회복된 좋은 땅에서 정성스럽게 키워진 토마토를 한번 맛보면 바로 그 생각을 바꾸게 된다. 그래도팜 한편에 마련된 쏘일 갤러리(Soil Gallery, 토양전시실)에서는 우리가 그동안 한 번도 제대로 자각하지 못하고 살았던 땅의 중요성을 깨닫게 된다.


그래도팜에서 만나는 순종 에어룸(Heirloom) 토마토

(출처 : 경욱의 브런치)

맛이 기똥찬 토마토인 '기토'는 그래도팜의 대추방울토마토 브랜드이다. 기토는 그냥 먹었을 때 맛도 아주 기똥차지만 더 기똥찬 것은 기토잎의 향이다. 방울토마토 꼭지를 살짝 떼서 그 잎의 향을 맡아보면 기존에 우리가 알던 토마토의 향과는 완전히 다른 상큼하고 푸르른 레몬그라스 향을 맡을 수 있다.


그래도팜에서는 이탈리아, 스페인, 미국 등 세계 각지에서 가져온 유전자 조작이 없는 순종 토마토를 부르는 에어룸(Heirloom) 토마토 15종을 생산한다. 그동안 내가 팔아온 토마토는 다 뭐였지 싶을 정도로, 그래도팜에서 만난 토마토는 외형뿐만 아니라 색, 식감, 향 모두 다 다른 다양한 토마토였다.


직접 체험하기 전엔 내심 '그래봤자 토마토가 달라봐야 얼마나 다르다고'라고 생각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는 나의 무지와 제한된 경험에서 나온 아주 편협한 생각이었다. 그래도팜에서 토마토에 대해 깊이 있게 경험하면 할수록 왜 그렇게 집요하게 '그래도'를 외치며 토마토를 길러왔는지 단박에 이해가 됐다.


과일을 팔 때 자주 마주치는 질문은 항상 '이거 당도 좋아요?'라는 질문이었다. 사실 귤도 당도만 높은 달기만 한 귤보다는 당산비가 적당한 새콤달콤한 귤이 맛과 향이 더 좋다. 그러나 일반적인 우리나라 소비자에게는 '과일=당도'라는 공식이 강하게 자리 잡혀있다.


과일을 고를 때 당도 위주로 선택하다 보니 과채인 토마토를 선택할 때조차도 당도를 따지게 되는 것이 시장의 현실이다. 원승현 대표는 우리나라 시장이 그렇게 된 이유는 다양한 에어룸 토마토의 각각의 '다양한 맛과 향'을 아직 느껴보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토마토는 원래 '향'으로 먹는 채소예요. 감칠맛이 강하고 복합적인 맛이 나죠. 우리가 보통 토마토를 먹으면 단맛, 짠맛, 시큼한 맛 정도를 얘기하잖아요. 그런데 이 블랙 뷰티는 달달한데 끝에 시큼한 향이 은은하게 남죠.

1만 명이 기다리는 토마토 브랜드를 만들다, 롱블랙


생산량을 늘려서 싼 가격에 소비자들이 소비할 수 있는 것도 중요하지만, 다양한 맛과 향을 발현해 내는 더 좋은 품질의 토마토를 생산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런 면에서 그래도팜의 에어룸 토마토는 아주 소중한 존재였다.



토마토에 미친 사람만이 가능한, 토마토 테마파크 그래도팜

(출처 : 경욱의 브런치)

눈이 빛나는 원승현 대표의 이야기를 듣고 한참 듣고 나니 이 사람 정말 미쳤다 싶었다. 토마토에 관해서는 어떤 질문에도 막힘이 없었다. 얼마나 오랜 시간 동안 토마토에 대해, 그리고 좋은 토마토를 길러내기 위해 고민을 했을지, 공부를 했을지 가늠이 되지 않을 정도였다.


모르는 사람은 찾아오기도 힘든 영월의 한쪽에 그래도팜은 자리하고 있다. 이곳에서는 우리나라 어디에서도 할 수 없는 경험을 선물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여기에서는 세계 각지의 에어룸들과도 어깨를 나란히 하고 경쟁할 수 있는 그래도팜만이 길러낼 수 있는 '그래도레드'도 자라고 있다.


영월의 그래도팜에서 경험한 최고의 토마토를 위해 정성스레 만들어진 '살아 있는 땅'이란 무엇인지, 유통편의성이 위해서가 아니라 최고의 맛을 위해 '적시에 수확한 토마토의 맛'은 어떤지,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평생 모르고 살아왔던 '토마토 잎의 향기'는 어떤지 모두 다 기대 이상이었다.


개인적으로는 그래도팜을 방문하면서 반성이 많이 됐다. 나는 과연 이렇게까지 진심으로 나의 사업을 대하고 있는지, 이렇게까지 아름답게 나의 아이템을 사람들에게 소개할 수 있는지, 이렇게까지 미칠 수 있는지. 잠시였지만 눈이 빛나는 사람을 만나 진심이 담긴 이야기를 나누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영월에 올 가치는 있었다.


오늘도 수많은 사람들은 '그래봤자 토마토지'라고 말할지 모르지만, '그래도 토마토'를 외치며 최고의 토마토를 위해 노력하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알았으면 좋겠다. 그래도팜을, 토마로우(Tomarrow)를, 그리고 그래도 레드를 꼭 알았으면 좋겠다.


https://tomarrow.com/


https://tomarrow.com/tomarrow


매거진의 이전글 성심당을 튀소로만 알고 있으면 반도 모르는 거라구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