꺼삐딴 리의 의사생활
그도 슬기로운 의사생활을 할 수 있었을까?
일제강점기, 광복, 6.25전쟁을 거쳐 전후 격변기까지. 꺼삐딴 리는 그 시대를 걸쳐 의사생활을 한 소설 주인공 이인국을 가리킨다. 소설 중에 소련 사람이 이인국을 치켜세우며 그렇게 불러서 제목이 그러하다.
인터넷이 없던 시절에 누군가 이게 소련말이라고 알려줬던 기억이 있다. 등단 작가 겸 번역가로 활동중인 노어노문 전공 친구에게 물어본 바로는 캡틴을 당시 노어로 '꺼삐딴'이라고 읽었고 그것이 우리나라로 들어와 쓰이게 된 것이라 한다. 아마 '파르티잔'이 '빨치산'이 된 것과 같은 맥락일 것이다. 소설을 쓴 전광용 선생도 꺼삐딴 리와 동시대를 살았으므로 제목을 그렇게 지을 수 있었을 것이다. 가수 리치 발렌스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 '라밤바'에서 그가 부른 노래 '라밤바'의 가사에도 이런 대목이 있다. '요노 소이 마이 네로. 소이 까삐딴 소이 까삐딴' 그래서 또 한번 친숙하다. '난 선원이 아니라 선장이에요.'라는 뜻이라는데, 속옷 차림의 날렵한 모습이 언론에 공개된 어떤 선장 때문에 그 단어가 또한 불편하기도 하다.
전광용 선생은 1919년 3월 1일 생이다. 이쯤에서 "어?" 하고 감탄사가 나온다면 크게 두 부류일 것 같다. 7,80년대 주입식 교육을 통해 연도와 날짜를 외운 4,50대이거나, 설민석 선생을 추종하여 역사 인강을 열심히 들은 밀레니얼 세대이거나. 앞 단락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나는 전자에 속한다. 그날은 바로 그 유명한 기미년 3월 1일이다. 하루 쉬는 날이자 국경일이며 그날 정오에 유관순 열사께서 대한독립 만세를 외친 날이다. 이름은 3.1절이다. 그 전에도 그랬지만 그 이후의 한반도는 말그대로 격변기였으며 작가는 그 시대를 관통하고 1962년에 이 작품을 남기고 서울올림픽을 3개월 앞두고 1988년에 작고한다.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슬의생) 의사 5인방은 99학번이다. 전광용 선생과 꺼삐딴 리와 대략 60살 정도 차이가 난다. 그들의 손자뻘이라고 보면 되겠다. 같은 땅에서 산 두 세대의 삶은 달라도 너무 다른 것 같다.
슬의생 5인방은 능력있고, 직업 좋고, 사람냄새 나고, 잘생기고, 젊다. 당연히 있어야 거짓말이 안 될 인생의 무게도 조금씩 짊어지고 있다. '인방'이라는 단어가 좀 촌스럽다고 느끼지만 '총사'나 '인조' 보다는 낫다고 생각하여 쓰기로 했다. 그들을 보고 있으면 신이 난다. 인생이 아름답다. 이 나라 젊은이들은 모두 저런 친구들이 있었으면 좋겠다. 내일까지 흔들바위를 굴려 떨어뜨려야 인류가 멸망하지 않는다고 해도 친구들과 함께 하면 문제없다고 여길 만큼의 든든함. 울산바위도 할 수 있을 것 같은 근자감. 어떤 난관이 닥쳐도 살만할 것 같다.
꺼삐딴 리와 슬의생 5인방의 공통점은 직업이 의사라는 점이다. 꺼삐딴 리가 몇인방 친구가 있었는지는 소설에 안 나와 있다. 다만 '뻔질나게 드나들던 몇몇 친구들도 소련군 입성이 보도된 이후부터는 거의 나타나질 않는다.'고 하여 그에게도 친구가 있었던 것으로는 보인다. 뻔질나다는 말에서 친구들이 그에게서 뭔가를 얻을 심산이었다는 상상이 피어나고, 거의 나타나질 않는다는 말에서 그 의도가 무산되니 더이상 찾아올 이유가 없어졌다는 추측이 나온다.
그런 꺼삐딴 리에게도 가까이 붙들어 매야할 인물들이 있었으니 일제강점기에는 일제의 고관대작들이었고, 소련 입성 후에는 소련군 장교였으며, 1.4후퇴 때 월남한 후에는 미국의 고관대작이 그들이었다. 이인국은 의술과 재물을 그런 인물들에게 제공하면서 자신은 살아남았고, 아들은 소련으로 유학을 보냈고, 딸은 미국으로 유학을 보냈다. 그의 이런 의사생활은 슬기로웠는가? 슬기롭기 않았다면 그것은 누구의 잘못인가? 그는 지금 시대에 태어났다면 슬기로웠을까? 지금 시대에는 이제 꺼삐딴 리같은 의사는 없는 것인가?
발랄한 현대 의사 다섯 명의 이야기에 100여년 전에 태어난 사람의 이야기를 덧씌워 비교하는 것이 무리가 있다. 그래도 그들이 슬기롭다길래 그 옛날 한 의사로부터 시대가 앗아간 슬기로움은 무엇인지 궁금했다. 그 당시에는 그것이 슬기로움이었는지 모른다고도 생각했다. 99학번 슬기로운 의사들이 있지만 분명 동시대에 어딘가에는 99학번 추악한 의사들이 있을 것이다. 일제강점기 기회주의자 의사醫師가 있었다면 슬기로운 의사義士들도 있었다.
그래서 시대가 가능한한 그런 선택의 기로를 만들지 않으면 좋겠고, 최대 다수가 최대로 슬기로울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겠다. 타고난 재능을 좋은 일에만 쓸 수 있다면 정말 좋을 것 같다. 코로나19 시대에 슬기로운 의사 5인방과 꺼삐딴 리와 닥터 돌리틀을 생각한다. 아 참, 돌리틀은 수의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