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영된 TV쇼 '책 읽어 드립니다.'에서 '걸리버여행기' 편을 보고 집에 책이 있는지 찾아봤다. 강독을 듣고 내가 그렇게 홀린 듯 책을 찾으러 간 것은 설민석이 털어놓은 바로 그 말, 말 때문이다. 그는 다단계를 했으면 '플래티넘 다이아몬드 등급'이 되었을 것이고, 교회를 차렸으면 전 세계에 퍼질 '별천지 교회'를 만들었을 것이며, 장터에서 방짜유기 닦는 광약을 팔았어도 '화학 재벌'이 되었을 것이다.
직업에 귀천이 없듯이 책에 경중이 있겠냐만은 집에 있는 버전은 학습지로 유명한 출판사에서 펴낸 청소년판이었다. 아내가 독서 선생 일을 할 때 우리집에 오셨으리라. 막상 읽기 시작하니 삽화가 엄청 많은 것이 완전 내 취향이었다. 그림도 꽤나 잘 그려서 흥미로웠다. 하지만 책 어느 구석에도 누가 그렸는지 소개하는 내용이 없어 좀 의아했다.
한국에서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갑을 구조로 모든 것을 보게 되는데, 그런 시각으로 몇 가지 가능성을 떠올려 봤다. 첫째, 중국에 외주를 준 것인지, 둘째, 국내 작가들이 겨울에 언 손을 호호 녹여가며 그린 그림을 대형 출판사가 헐값에 사용하는 불공정 계약을 한 것인지, 셋째, 외국의 어느 출판사에서 기성품을 그냥 사 온 것인지. 번역가 겸 작가로 활동 중인 친구에게 확인한 결과 둘째와 셋째를 병행한다고 하는데 조금 더 경제적인 쪽은 둘째라고 한다. 내가 뭐라고 할 권리는 없기에 짧게 한마디만 한다면. '그린 사람 이름이라도 책에 넣어줘라!' 아니 '넣어 주시면 안 될까요?'
우리의 출판산업이 미약했던 내가 어릴 적에는(Latte is horse는 아님) 일본에서 발간된 책을 일한 번역을 하고, 삽화도 그대로 가져와서 책을 만들었다. 지식수준이 낮거나 인습에 젖은 사람을 가르쳐서 깨우치게 할 거라는 어떤 출판사가 펴낸 그림동화집 등이 그러했다. 저작권이라는 개념이 희미했던 시절이라 다들 그렇게 무단으로 기존 책을 베꼈고, 해적질은 단계를 더 할수록 종이의 질, 책의 묶음 상태, 문장과 삽화가 조악해져 갔다.
소설 김승옥의 '서울, 1964년 겨울'에는 어떤 남자가 아내를 병으로 잃고 방황하다 자살하는데 그 남자의 직업이 '서적 판매 외교원'이다. 요즘 말로는 책을 방문 판매하는 외판원이란 말이다. 정확한 이름은 아니지만 '세계명작그림동화집', '학생대백과사전', '학생컬!러!대백과사전', '한국문학전집' 등과 같은 책들이 수록된 전단지를 들고 가가호호를 방문하여 책을 파는 직업인데 결제방식은 대부분 할부였으며, 할부금은 거의 연체였다.
우리 애들을 키울 때 그림동화책 한 질을 처음 샀는데 나는 책을 펼치고 정말 큰 실망을 했다. 내용은 옛날 그대로인데 삽화는 예전의 사실성(寫實性)을 잃고 피카소의 화풍을 모방하고 있었다. 거기에도 앞서 말한 경제적 손익이 개입되었을 것이다. 정교하게 그려진 옛날 책들의 아름다운 삽화들을 이제는 못 보겠구나 생각했다. 그러던 차에 이 '걸리버여행기'의 삽화를 접하게 되어 매우 기뻤다.
걸리버여행기를 통해 작가는 그 당시 사회를 풍자했다. 소인국, 거인국, 하늘에 떠 있는 도시 라퓨타를 거쳐 말이 인간을 지배하는 나라까지 걸리버를 여행시키면서 부조리와 기만과 부도덕과 불평등으로 가득한 세상을 비꼬았다. 인간은 자업자득으로 비극적인 종말을 맞을 수도 있다는 사조가 깊게 깔려 있다. 소설 타임머신에서도 엘로이라는 힘없고 의식이 박약한 존재로 전락해버린 미래의 인간이 나온다. 요즘 알려진 말로 '디스토피아'라는 개념이다.
걸리버여행기를 찾다가 같은 책꽂이 한 켠에 '제3인류'로 자연스럽게 눈이 갔다. 조나단 스위프트가 먼저 걸리버여행기를 쓰지 않았어도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제3인류를 쓸 수 있었을 것이라 생각하지만, 두 소설을 이렇게 같이 두고 이런저런 재밌는 생각을 할 수 있으니 더 바랄 나위가 없다. 그건 그런데 난 항상 저 프랑스 작가의 이름을 왜 저따위로 불어, 일어, 한국어 3개 국어를 거쳐 이상하게 발음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그리스 신화를 모티브로 한 전개가 너무나 흥미로웠던 제3인류는 '가이아'로 등장하는 지구가 의식을 지닌 존재여서 지표에 살고 있는 생물들을 관찰하고 있다는 설정이다. 배후의 절대자와 그것에 지배당하는 인간, 이런 상상은 누구든 한 번쯤은 해봤으리라. 절대자가 외계에서 온 경우로 영화 '다크시티'와 '오블리비언'이 있고, 절대자가 AI인 경우는 '매트릭스'와 '터미네이터'가 대표적이다. 인간이 절대자를 자처한 경우가 '트루먼쇼'다.
과거 소설들이 '인간은 까불다가 큰 코 다칠 거다.' 식이었다면 현대의 영화들은 '인간은 한번 된통 당하긴 할 텐데 특유의 자유의지, 투지, 희생정신으로 극복해 낼 거다.'는 메시지를 주로 준다. 여기서 인간은 호모 사피엔스를 말하는데 제3인류는 '에마슈'라고 명명한 인공의 소인을 가이아 위에 살게 될 다음 세대로 설정했다. 그렇게 전개될 개연성을 호모 사피엔스가 멸종시켜버린 이전 인류 '호모 기간틱스'를 등장시켜서 설명한다. 인류가 작아지면서 이전의 더 큰 인류를 몰아낸다는 설정이다. 호모 사피엔스가 만든 영화에서의 긍정적 전망을 살짝 틀어서 '그렇게 쉽지는 않을걸'이라고 버나드 웨버는 말하고 싶은 것 같다.
가장 천방지축으로 그려지는 호모 사피엔스는 좀처럼 서로 협력하지 못하고, 싸우고, 죽이고, 핵미사일을 쏘고, 전염병을 퍼트리고, 자연을 파괴한다. 지구 가이아도 그들을 매우 골칫거리로 생각한다. 자기들의 필요로 만들어놓은 에마슈도 파괴하려 하고, 에마슈가 자기들을 구해줬음에도 배은망덕으로 응한다. 그 와중에도 제3의 인류는 자기들만의 세상을 구축해 간다.
혹 걸리버는 어딘가 있을지 모를 타임 워프에 빠져 과거의 호모 기간틱스와 미래의 에마슈 세상에 다녀온 것은 아닐까? 라퓨타를 거쳐 결국 말의 노예가 되는 길을 걷고 있는 호모 사피엔스를 어느 시간 언저리에서 보고 온 것은 아닐까? 걸리버가 이렇게 많은 체계적 경험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책에도 나오지만 그의 뛰어난 '외국어 습득 능력'덕분이었다. 아마 한국 학부모들에게는 이것이 책이 주는 가장 큰 교훈이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