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모두 부산광역시에 편입되었지만 예전에는 부산이 아니었던 곳이 있다. 김해가 대표적인 예다. 역사적으로는 가야연맹체제의 중심인 가락국의 도읍지였고, 그 번성의 배경에는 가야철기문화, 낙동강 서쪽의 비옥한 김해평야가 있었기 때문임을 국사시간에 배웠다.
그곳 사람들은 알지만 타지방 사람들은 잘 모르는 하단, 구포, 명지, 다대포 등등의 낙동강변 지역들도 부산으로 편입되기 전에는 다 고유의 역사를 가진 포구요 농토였다. 구포는 국수 체인점 이름으로 서울사람들도 들어봤겠다.
낙동강 동쪽의 부산에서 낙동강 서쪽의 부산으로 넘어가는 여러 방법이 있는데 '낙동강하구언'의 둑길을 타고 넘는 방법이 있다. 그길 중간에 '을숙도(乙淑島)'라는 섬이 있다. 낙동강 하류에 물길을 둘로 쪼개며 강 가운데 자리잡은 배모양의 섬으로 한자를 풀면 '새가 많고 물이 맑은 섬'이라는 뜻이다.
어릴 적 가족들과 을숙도에 소풍을 간 적이 있었다. 1982년 무렵이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강과 바다의 경계에 있는 섬이라 갈대가 무성한 모래톱인지 갯펄인지 모를 넓은 땅이 있었고 거기에 크고 작은 수많은 구멍들이 있었다. 그것들은 가가호호 민물털게가 사는 집이었다. 삽으로 파고 손으로 파헤치고 해서 털게를 잡았던 기억이 난다.
대낚시도 던졌는데 이름모를 민물고기들이 잡혔다. 나는 어리고 아무 기술이 없었는데도 열마리 넘게 낚아서 기분좋은 찬사를 받았던 기억이 있다.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그런 찬사들이 나중에 좋은 어른이 되는 밑거름이 된다고 믿는다.
김정한의 소설 '모래톱 이야기'이제 국사책을 가야국의 고대에서 근대와 현대로 넘겨보자. 김정한의 소설 '모래톱 이야기'는 내게는 좋은 추억이 있는 을숙도의 슬픈 이야기다. 책에서는 그 섬을 '조마이섬'이라 부른다. 경상도 사투리로 작다는 뜻의 '쪼매낳다', 작은 것이라는 뜻의 '쪼꼬마이' 등에서 온 것으로 보인다. 소설은 1966년에 발표 되었다. 주인공 소년 건우의 아버지는 전쟁에서 전사했다. 6.25 전쟁일 것이다. 그리고 '사라호 태풍'(1959년)을 이미 경험했다고 나오므로 1960년경이라고 추정된다.
조마이섬은, 몇 백 년, 아니 몇 천 년 갖은 풍상과 홍수를 겪어 오는 동안에 모래가 밀려서 된 나라 땅인데, 일제 때는 억울하게도 일본 사람의 소유가 되어 있다가 해방 후부터는 어떤 국회 의원의 명의로 둔갑이 되었는가 하면, 그 뒤는 또 그 조마이섬 앞 강의 매립 허가를 얻은 어떤 다른 유력자의 앞으로 넘어가 있다든가 하는 ― 말하자면 선조 때부터 거기에 발을 붙이고 살아오던 사람들과는 무관하게 소유자가 도깨비처럼 뒤바뀌고 있다
그 작은 섬을 두고 일제 때 일본의 동척(동양척식회사), 광복 후 한국의 국회의원, 그 후 어떤 유력자(힘 있는 놈)이 소유권을 돌려가며 가진다. 소설 속에서는 건우와 건우 엄마, 갈밭새 영감으로 불리는 건우의 할아버지가 대대로 조마이섬에서 살고 있었다. 어느 폭우가 내리던 날 그 섬은 큰 위기에 처한다.
상기 유력자가 매립을 한답시고 어설프게 둑을 쌓았는데, 그 둑이 불어난 강물에 무너졌다면 모두 떼죽음을 당할뻔 한 것이다. 다행히도 갈밭새 영감과 마을 사람들이 미리 둑을 허물어 위기를 모면한다. 그 과정에서 요즘으로 치면 용역깡패가 몰려와 작업을 방해하고, 갈밭새 영감은 분을 참지 못 해 그 중 하나를 물에 빠트려 죽이고 만다.
그 사건으로 건우네는 자취를 감춘다. 집이 수해를 입고, 생계의 축이던 할아버지까지 감옥에 가버리자 하릴없는 그들은 어디론가 떠나버린 것이다. 조마이섬의 매립작업은 계속되는 것으로 소설은 끝이난다.
그리고 또 세월이 흘러 역사는 반복되는데 '낙동강하구언' 공사로 인해 그 섬에 살던 사람들이 외지로 쫓겨난 것이다. 그것도 유력자의 소행인지는 모르겠으나 어떤 사정으로 그 곳에 들어와 살던 사람들은 대책없이 건우네와 같은 신세가 된 것이다.
공사는 우리 가족이 방문한 다음 해인 1983년에 시작되어 1987년에 끝난다. 지금은 철새공원, 강변공원 따위의 모습으로 꾸며져 있지만 아마도 하굿둑을 계획할 때 누군가가 침을 튀기면서 주장했을 '연평균 몇십만명 관광객 유입에 따른 지역경제 활성화 및 철새의 안정적인 서식지 조성을 통한 환경보호 효과' 같은 동화 속 이야기는 일어나지 않았으리라.
소유권을 주장할 법적 궁리가 없었을 사람들과 거기 살아본 적도 없지만 법적으로 철저히 자기 땅임을 서류화한 유력자들이 나라에서 받는 대우는 확연히 달랐을 것이다. 또 둑을 쌓는 공사를 따내고, 모래를 퍼서 내다 팔고, 어긋난 일들을 눈감아 주며 발생하는 돈부스러기들의 배분으로 몇몇은 배를 불렸을 것이다.
을숙도 주변 하단에는 ㄷ대학교의 캠퍼스가 있다. 거기를 나는 딱 두번 가봤는데 한번은 우리 대학교와 ㄷ대학교의 고등학교 동문들이 연합하여 체육대회를 했을 때였고, 한번은 유학설명회 포스터를 교내에 붙이는 아르바이트를 할 때였다. Arbeit macht frei 하길 바라면서 어릴 적 을숙도의 추억을 떠올렸었다.
작가가 경험한 사실을 토대로 쓴 소설이라고 하니, 건우네는 실제 우리가 웃고 떠들고 막걸리를 마시던 그 자리에 살았던 것이다. 우리가 모르는 소설 이후의 이야기에서 젊은 미망인 건우 엄마와 글재주가 있던 건우에게 세상이 그 모진 송곳니를 드러내지 않았으면 좋았겠다고 생각해 본다. 다음에 고향갈 땐 을숙도를 가봐야 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