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에서 6년 근무하고 다시 돌아온 작년, 한국의 일터는 꽤 낯설었다. 국수 가락이 엉켜있는 듯한 머릿속을 도저히 그냥 둘 수 없어 휴가를 냈다. 휴가 첫날 아침, 운전대를 잡고서야 속초를 가보자는 생각을 했다. 내 인생의 좋았던 날들이 그 결정과 연관되어 있음은 아무에게도 얘기하지 않았다. 새삼 이렇게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상처에 딱지가 앉아 이제 피는 안나기 때문이라고 해두자.
속초에는 내가 다니는 회사가 보유한 연수원이 있다. 직원들 교육시설로도 쓰이고, 휴양시설로도 쓰인다. 나는 신입시절 수도권에 있는 연수원 본원에 근무한 적이 있어서 업무상 여러 차례 속초 연수원을 방문했었다. 그때 그 시절 동료직원들은 이제 남아있지 않지만, 분주하고 신나기까지 했던 순간순간의 장면들은 아직 생생하다.
남궁옥분 노래도 있다. 설악산.
신입사원 연수를 받을 때 나는 연수생 대표를 맡았다. 젊고 발랄했고 자주 웃었던 시절이었다. 연수중에 속초 연수원도 방문을 했었는데 동기들, 선배들과 함께 기억에 남을 시간을 보냈다. 그때의 내 모습을 나는 사랑한다. 그런 인연으로 고향 부산에서 1년 근무하고 연수원으로 발령을 받았다. 인생의 큰 변화이자 도전이었지만 나는 자신감이 넘쳤다. 묵묵히 따라나서 준 아내에게도 감사드린다. 그렇게 적수공권으로 수도권 생활을 시작했다. 꼬박꼬박 수도권이라고 쓰는 이유는 그렇게 구분 짓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아서다.
아이들이 어릴 때, 속초 연수원을 휴가 차 한번 방문했었다. 좀 더 자주 올 수는 없었을까? 그들이 천사 같은 마음으로 천사 같은 말들을 지저귈 때 나는 귀 기울이지 못했다. 바쁘다고, 일이 많다고 그 소중한 것들을 많이 놓쳐 버렸다. 그 당시에는 무슨 뾰족한 대안도 없다고 여겼다. 그렇게 일해야 승진도 하고, 윌급도 더 받고, 팔자도 고치는 줄 알고 밤낮으로, 주말까지 일했다. 아주 좋게 봐주면 그런 공들이 쌓여서 지금도 직장을 다니고 있다고 생각하면 되겠고, 주변에 그러지 않아도 직장을 다니는 사람들이 있으니 좀 삐딱하게 보면 바보 같았다고 할 수 있겠다. 이제 다 지난 일이다.
신입사원 연수 때도 있었던 웅비. 변함없는 것들도 세상에 있구나 하고 생각했다.
오늘 업무 차 방문한 속초는 반갑게 날 맞아준다. 산도 바다도 그 옛날 그대로다. 그런 산과 바다가 작년에는 달라 보였는데 지금 오니 괜찮다. 시간은 가고, 아이들은 크고, 후회는 사무치고, 상처는 또 아문다. 그런 딱지를 몇 번을 벗기고 흉터만 남은 얼굴로 사는 것이 인생인가 보다. 24년 정도, 속초를 알고 지냈다. 때론 어둡게 때론 밝게, 내 곁에 있어준 속초가 정겹다. 아이들이 제대하면 꼭 같이 와서, 소주 한잔 나눠야겠다. 속초 밤바다에 바람이 스치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