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이야기

언제나 가고 싶은 그 곳

by 멧별

추운 겨울날, 문득 제주도가 생각났다. 제주는 정말 아름다운 섬이다. 우리가 신혼여행을 갔던 곳이고, 그 후로도 가족여행, 부부여행, 여름휴가, 친목여행 등등 각종 명목으로 찾았던 곳이다.

대학 1학년 때 미니시리즈 『여명의 눈동자』를 보고, 조정래의 『태백산맥』을 읽고, 노찾사의 『잠들지 않는 남도』를 들으며 한국 근현대사의 슬픈 단면들을 알게 되었다. 특히 『잠들지 않는 남도』를 통해 제주 4·3 사건을 처음 접하게 되었다.

윤여옥과 장하림과 최대치, 김범우와 소화, 그리고 이름 없이 스러져간 ‘피에 젖은 유채꽃’ 같은 사람들. 휘몰아치는 역사의 소용돌이를 때로는 순응하며, 때로는 거스르며, 누구는 살고, 누구는 또 죽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내게 가장 선명하게 남아 있는 느낌은 다름 아닌 ‘살을 에는 추위’다. 무슨 따뜻한 옷과 장갑과 신발이 있었으랴. 헐벗은 그 청춘들이 텅 빈 마음으로, 백두산에서, 지리산에서, 한라산에서 서러운 시절과 마주했을 때, 항상 칼날 같은 추위가 함께했다. 기온이 조금만 떨어져도 곧 죽을 것처럼 호들갑을 떠는 요즘과 그들의 차디찬 시간을 비교하게 된다.

지금도 한라산 큰노루손이오름과 거친오름 사이에 위치한 제주4·3평화기념관에서 우리는 그때를 잊지 않고 기억할 수 있다. 노벨문학상 수상자 한강도 『작별하지 않는다』에서 4·3 사건의 민간인 학살을 다루었는데, 한림원도 ‘역사적 트라우마에 맞서고 인간 삶의 취약성’을 표출하는 그의 글을 높이 평가한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런 각성을 통해 이 땅에 다시는 공권력의 총부리가 국민 앞에 겨눠지는 일이 없도록, 그런 생각을 가진 자들이 다시는 권력을 가질 수 없도록, 우리가 깨어 있을 수 있다.

그 어두운 시절을 지나, 아름다운 이야기들이 제주를 배경으로 전해져 왔다.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는 4·3 사건을 경험했을 1세대와 그 뒤에 태어난 2세대, 그리고 그다음 세대까지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전쟁은 지나갔건만, 팍팍한 섬살림이 나아진 것은 아니었고, 여자들이 억척스럽게 삶을 지탱해 나갈 때 그 원동력은 또 감귤처럼 열려 가는 자식들이었다.

요절한 엄마가 남긴 어린 딸에게도 세상은 험하게 다가왔지만, 그 곁을 지켜 준 좋은 남자가 있어 헤쳐 나갈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둘의 딸 역시 좋은 남자를 만나, 세대를 더하면서 나아지는 모습이 더없이 좋았다.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도 제주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맛깔나게 풀어주었는데, 한 번도 한라산을 못 가본 엄마를 모시고 이병헌이 산에 오르는 장면, 바닷가에 놓인 한지민의 조그만 카페, 한라산 기슭에 자리잡은 신민아의 예쁜 집이 기억에 남는다. 드라마『올인』의 촬영지였던 섭지코지는 지금도 유명한데, 이병헌을 제주도 전문 배우라고 불러도 되겠다.

육지에서 보는 섬, 제주는 항상 떠나는 곳이다. 특히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을 때, 가장 손쉽게 가장 낯선 곳으로 떠나는 방법이 바로 제주행인 것이다.
여러 가수들이 불렀던 『제주도의 푸른 밤』가사는 그런 제주도의 존재를 제대로 알려 주고 있다.

‘떠나요 둘이서 모든 걸 훌훌 버리고…
아파트 담벼락보다 바다 볼 수 있는 창문이 좋아요…
떠나요 제주도 푸른 밤 하늘 아래로…’

내가 좋아하는 가수 최승호의 곡 『제주의 봄』에는 제주도에서 맞이하는 봄의 정수가 담겨 있다.

‘하늘 길을 날아 내리는 제주에는
푸르른 하늘과 파란 바다 어서오라 반기네
놀멍 쉬멍 걸으멍 사라봉에 오르니
코끝을 시원히 스쳐 가는 한라산의 봄바람…
사려니숲길 사이로 내리는 따스한 햇살...
꼬닥꼬닥 걸어 볼까 도두봉 오름길을
파아란 바닷길 따라 노오란 유채꽃 따라…
아름다운 제주의 봄이여’

이렇게 철이 바뀌면 철이 바뀐 대로, 마음이 어지러우면 또 어지러운 대로 항상 제주도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바다와 맞닿은 파란 하늘과 구름, 눈덮인 한라산과 검은 돌들과 유채꽃과 감귤들. 슬픔을 삼키고 이제 보석같이 우리 곁에 와 있는 섬. 다음이 언제일까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