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추억이라 부르는
중학교에 들어가고 나는 FM라디오를 듣기 시작했다. 1985년의 일이다. 한국의 가요는 80년도에 큰 변화를 겪었는데, 비장하면서 우울한 시대를 노래하던 대학가요제나 강변가요제의 수상곡들이 '바다에 누워', 'J에게', '그대에게', '젊음의 노트' 같은 분위기로 바뀌었다. 그 변곡점에는 '국풍 81'이라는 것이 존재하는데, '잊혀진 계절'이 그때 나왔다. 물론 전파를 타지는 못했지만 핍박을 견뎌오던 김민기*의 노래들도 공존했다. 사회학적으로는 우민화와 의식화라는 대비도 가능하다.
*감사와 존경의 마음으로 명복을 빕니다.
그런 두 개의 물줄기보다 훨씬 오래전부터 존재하던 흐름은 소위 '팝송'이라고 부르던 영어 노래들이었다. 1985년은 그런 세 개의 지류가 주류 다툼을 하던, 말하자면 삼류의 시대(三流의 時代)였다. 방송이 안 되는 김민기의 노래를 제외하고, 라디오에서는 나머지 두 개를 주로 다루었는데, 나는 그중 팝송 쪽이었다.
이 팝송이라는 것이 '영어공부'라는 멋진 명분을 만들 수 있었다. 그래서 부모님으로부터 라디오 듣는 것을 허락받기도 훨씬 쉬웠다. 아름다운 영어 선생님에게 푹 빠져 있던 나로서는 영어 수업 시간에 '아는 척'도 좀 할 수 있었기 때문에, 나는 점점 라디오에 중독되기 시작했다.
조금 오래된 노래들도 '올드팝'이라는 별명을 붙이고 자주 방송되었다. 조영남이 '고향의 푸른 잔디'라고 단순히 향수를 담은 곡으로 해석해서 불렀지만, 사실은 사형수의 노래였던 'Green Green Grass of Home(1966년, Tom Jones)'이 대표적이다. 내가 그즈음 배워서 최근까지도 노래방에서 즐겨 부르는 'Tie a Yellow Ribbon Round the Old Oak Tree(1973년, Tony Orlando and Dawn)'도 방금 출소한 죄수의 심정을 담은 곡이다.
우리는 '그때가 좋았지'라는 말을 나이 들어가면서 한 번은 하게 된다. 그런 마음을 담은 내 최애곡은 'Those Were the Days(1968, Mary Hopkin)'다.
Once upon a time there was a tavern...
Those were the days, my friend
We thought they'd never end...
For we were young and sure to have our way....
Oh, my friend, we're older but no wiser...
여기서 'We thought they'd never end'(우리는 그날들이 끝나지 않을 줄 알았지)는 김광석이 '머물러 있는 청춘인 줄 알았는데'라는 가사로 공감했다. 그리고, 'We're older but no wiser'라는 대목은 Alan Parsons Project가 'Old and Wise'에서 확신했던 또는 기대했던 현명함이 모든 사람들에게 해당되지는 않는다고 말해준다.
그래도, 우리는 나이 들어가면서 인생을 아름답게 보기도 하는데, 'What a Wonderful World(1967년, Louis Armstrong)'은 우리가 못 하더라도 자손들이 꼭 현명해질 거라고 귀띔해준다.
I hear babies crying
I watch them grow
They'll learn much more
than I'd ever known...
비운의 남매 Carpenters도 'Yesterday Once More(1973년)'에서 지금 나처럼 어릴 때 라디오에서 즐겨 듣던 노래를 추억했는데, 그 시절의 샤랄랄라 하는 후렴구와 멜로디는 그대로인데, 시간은 흘렀고 친구는 간데없다는 얘기를 한다.
'Casablanca(1982년, Bertie Higgins)'는 헤어진 애인과 자동차 극장에서 옛날 영화 '카사블랑카'를 볼 때, 사랑에 취해서 콜라와 팝콘이 샴페인과 캐비어처럼 달콤하고 감미로웠다고 말한다. 그때를 그리워하면서.
ABBA가 부른 'Our Last Summer(1980년)'에서도 젊은 날의 연인이 프랑스 파리에서 세느강, 에펠탑, 노트르담을 거닐었던 추억을 노래하고 있다. 1999년에 초연된 뮤지컬 '맘마미아'는 극의 줄거리에 이 노래를 정말 찰떡같이 발라 넣었다.
진부한 표현이지만 국가와 시대를 막론하고, 사람들은 '기억'과 '추억'을 구별해서 인식한다. 'The Way We Were'라는 영화 제목을 '우리가 있었던 방식'이라고 직역하지 않고 '추억'이라고 번역해 준 사람은 가히 예술가라 불러줄 만하다. 바브라 스트라이샌드와 로버트 레드포드*의 마지막 재회 장면은 우리 모두가 추구해야 할 'Cool'과 '추억'의 표본이다.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그런 의미가 있죠.'라는 가요도 있듯이.
*R.I.P. My Sundance Kid
팝송을 통해 내가 영어를 얼마나 배웠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라디오는 정말 질풍노도 속에서 나를 막아준 고어텍스 같은 존재였다. 나도 수많은 노래 가사처럼 옛날이 너무도 그립지만, 돌아갈 수는 없다. 추억이 모두 녹아 있을거라 믿으며, 오늘의 노래를 열심히 불러야 할 뿐인 것이다.
참고) Those were the days 가사 전문
1절
Once upon a time there was a tavern
Where we used to raise a glass or two
Remember how we laughed away the hours
Think of all the great things we would do.
후렴
Those were the days, my friend
We thought they'd never end
We'd sing and dance forever and a day
We'd live the life we choose
We'd fight and never lose
For we were young and sure to have our way
2절
Then the busy years went rushing by us
We lost our starry notions on the way
If by chance I'd see you in the tavern
We'd smile at one another and we'd say
3절
Just tonight I stood before the tavern
Nothing seemed the way it used to be
In the glass I saw a strange reflection
Was that lonely woman really me?
4절
Through the door, there came familiar laughter
I saw your face and heard you call my name
Oh, my friend, we're older but no wiser
For in our hearts, the dreams are still the sa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