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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멧별 Jun 01. 2020

정승의 돈은 개의 돈과 뭐가 다른가?

개같이 벌어서 정승같이 쓰라는데

가끔 개에게 미안하다.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는데 개가 뭘 해서 돈을 벌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개가 버는 돈을 왜 그렇게 폄하하는가 말이다. 청렴하기로 소문난 황희 정승이 돈을 어떻게 썼는지도 역시 모르겠지만, 그는 돈이 거의 없었다고 하는데 그가 쓰는 것처럼 돈을 쓰라는 말은 무슨 소리냔 말이다.


사실 모든 것은 돈 때문이다. 살인은 대게 원한, 치정 그리고 돈이 이유라고 하는데 원한이 또 대부분 치정과 돈에서 비롯된 것이므로 살인의 이유는 치정과 돈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이수일이 김중배와 심순애를 죽이고 다이아 반지를 한강에 던져버렸다면, 이 사건은 돈 때문에 촉발된 치정에 얽힌 원한에 의한 살인이 되는 것이다. 추가로 재물손괴죄 적용.


역사시간에 배운 바 조개껍질을 돈으로 쓰던 시절이 있었단다. 동시에 먹다 버린 조개껍질로 된 조개무덤도 있다고 한다. 먹다 버릴 만큼 흔한 것이 어떻게 돈 구실을 하나 궁금했다. 알고 보니 조개껍질 돈은 꽤 희귀한 조개를 썼다고 한다. 그렇지. 그래야 말이 돼지.


돈은 벌기도 하고 불리기도 한다. 일을 해서 그 대가로 돈을 받게 되는 것을 주로 번다고 한다. 돈을 이용해서 돈을 버는 것을 불린다고 한다. 다른 표현으로 돈 놓고 돈 먹기라고도 한다. 이 표현은 주로 노름이나 투기 같은 돈 불리는 방법들을 낮춰 부를 때 쓴다. 하지만 괜히 말만 그렇게 비하한다. 정작 자기가 어떻게든 돈을 먹게 된다면 개고 정승이고 따질 것 없이 그 과정은 무시해 보리는 것이 보통이다.


돈을 벌면 돈을 쓸 수가 있다. 정승처럼 쓰라는 말은 돈을 착하고 가치있게 잘 쓰라는 뜻이라는 해석이 일반적이다. 정승까지 되려면 필시 도덕적이고 품행이 방정한 훌륭한 사람일 것이라 믿는 것이다. 일면 정승이라는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지위에 있으니 도덕과 품행은 엿바꿔 먹고, 떵떵거리며 권력을 휘두를 수 있다는 뜻 일 수도 있겠다. 역대 탐욕스러운 아무개 정승이 찢어지게 가난한 아무개 정승보다 그 수에서 살짝 더 많지 않았을까 하는 의심이 드는 것이다.


종합하면 적수공권에서 시작했다면 돈을 버는 과정이 좀 험하겠지만, 어느 정도 돈을 모으면 돈을 불릴 수 있게 되고, 그렇게 덩치가 커진 돈은 더 이상 과거를 묻지 않고, 돈 자체로서 존엄을 가지게 된다는 말이다. 돈이 만들어주는 힘이 모든 안 좋은 것들을 다 덮어준다는 말이다. 결국 돈이면 다 된다는 말이다.


나는 아무개 스님이 나에게 무소유를 설파하지 않아도 될 만큼의 개인적으로 무소유 경지에 올라있다. 내가 추구하는 경제생활의 핵심은 남에게 피해를 주지 말자는 것이다. 내가 일한 만큼 돈을 받고, 남에게 돈을 빌릴 일도 없고, 남의 돈을 탐내지 않으며, 내가 돈을 불리기 위해 남을 속이거나 피해를 입히지도 말아야겠다는 생각이다.


다만 지금 주머니가 허전한 것은 그 와중에 돈을 불릴 수 있는 어떤 기회를 또 어떤 이유로 놓쳐버렸기 때문일 수 있겠다. 아니면, 불릴 작정을 할 수준의 돈이 아직 주어지지 않았을 수도 있겠다. 아직이라고 하지만 언제일지 또는 영원일지도 알 수 없는 일이다.


많은 한국사람들이 자본주의적으로 미국을 추앙한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우리나라는 미국이 아니다. 두 나라는 역사적, 지리학적, 정치적, 외교적, 사상적, 종교적, 경제적, 자연환경적, 인구론적, 인류학적으로 상당히 거리가 있는 나라다. 자본주의 원론에서는 노동을 통해 돈을 버는 것이 삶을 이끄는 궁극의 목적이라고 여기며 절약하고 검소하게 살라고 한다. 지금에 이르러 원론이 왜곡된 면이 있고 설명하기 복잡한 상황이 되었다. 하지만, 그래도 미국은 아직 자수성가한 부자의 비중이 상당하다. 우리나라는 세습형이 절대적 비중을 차지한다.


아류 미국이 되고 싶 자본주의 한국인데도 불구하고,  노동을 통해 돈을 벌 때는 개의 돈이 되고, 엄청나게 쌓인 돈은 정승의 이 된다. 이런 모순이 우리 자본주의의 현주소가 아닐까? 종교가 잘 되려면 반대편에 악을 세워야 한다. 모 너튜버는 이 최고의 선이고, 돈이 없거나 돈을 못 버는 사람, 또는 돈보다 사람을 우선시하는 사람 악이라는 식으로 말한다. 자본주의를 종교화해서 사람들을 선동하는 것이다. 그 조회와 구독 수로 자기 자신을 정승으로 만든다.   


돈을 벌어 그만큼 돈을 쓰는 단순하고 구태의연한 경제생활을 하는 자로서 가끔 생각하게 된다. 나는 어느 쪽인가? 나는 개인가 정승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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