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노이 메종 센뜨랄의 빠삐용

베트남에서 프랑스 감옥을 탈출한 나비들

by 멧별

나의 실루엣은 공기 같은 자유 속에서 사진을 찍고 있다. 그러나 모로 누운 남자의 자유는 갈망의 대상이다. 베트남 수도 하노이에 위치한 화로 형무소(Hỏa Lò Prison)에서는 '자유에 대한 갈망(Khát vọng tự do, 캇봉뜨조)'라는 제목의 기념회가 열리고 있다. 역사상 있었던 여러 차례의 '탈옥'을 기리는 행사다. 저 남자의 이야기다.

목숨을 걸고 쇠창살을 뚫어 그가 느끼고자 한 것은 오직 하나 바로 '자유'다.

화로 형무소는 이제 박물관이 되었다. 남자가 열중하던 쇠창살 자르기의 결과는 이러하다고 지하 구조물을 친절하게 전시해 놓았다. 실물이라기보다 재현에 가깝다고 느껴지는 것은 잘린 공간의 폭이 매우 비현실적으로 보여서다. 기념회에 따르면 저런 방식으로 영어의 몸이 된 독립운동가들은 자유를 쟁취했다고 한다.

베트남 사람들은 날씬한 편이지만 저 틈으로...

화로 형무소는 베트남의 프랑스 강점 시기인 1896년에 지어졌다. 도기 가마(화로)가 있던 마을들을 철거하고 그 땅 위에 올려졌다. 그 과정에서 토착민들의 저항과 강제진압이 있었는지, 혹 인명피해도 있었는지는 알려진 바 없다. 저항한 사람들이 건설 노역에 동원되어 자기 손으로 지은 형무소에 도로 수감되었다 한들 식민지 국민에게 무슨 뾰족한 방법이 있었겠나 싶다.


정문 위 아치에는 불어로 '중앙형무소 건물(Maison Centrale, 메종 센뜨랄)'라고 적혀있다. 메종 센뜨랄은 프랑스 형법 상의 제도로서 형기가 1년 이상되는 죄수들을 수용하는 곳이란다. 1908년 그곳에 어떤 사건에 연루된 사람들이 단체로 투옥되었다. 그 사람들은 프랑스군이 주둔한 탕롱 황성 급수원에 독극물을 타서 군대를 무력화시키려는 기도를 했다. 그 사람들은 기요틴에서 목이 잘려 죽었다. 그 사진도 전시되어 있다.

하노이 황성 독극물 투여 사건 연루자들

프랑스 식민통치가 한창이던 1930년대, 베트남과 마찬가지로 남미의 '프랑스령 기아나'에도 프랑스의 형법 제도가 적용되고 있었다. 그곳은 세인트 요셉 섬에 있는 형무소로, 주인공 '앙리(별명 Papillon, 빠삐용)'는 '드가'와 함께 거기에 수감된다. 영화 '빠삐용'은 아내의 배신, 억울한 살인 누명, 탈옥 시도가 골자로 '쇼생크 탈출'의 원조라고 보면 되겠다. 내가 붙인 배우 '스티브 맥퀸'(앙리 분)의 별명은 '탈출 전문 배우'다. Ref. 'The great escape'


빠삐용이란 별명은 불어로 '나비'라는 뜻인데 그의 가슴에 새겨진 문신에서 유래했다. 나풀나풀 날아다니는 나비에 그의 자유에 대한 갈망이 담겨 있다. 또 다른 프랑스인 베르나르 베르베르도 '빠삐용'이라는 동명 소설에서 새로운 자유를 찾아 떠나는 사람들을 나비에 실었다. 억측을 해보면 프랑스인들은 자유로운 나비를 좋아한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


그런 우아한 자유로움과 달리 그들은 사람 고문하고 죽이는 기술도 뛰어났다. 까만 눈과 파란 눈의 차이일 뿐 동시대 하노이 메종 센뜨랄 수감자와 남미 세인트 요셉 형무소 수감자의 형편은 별 차이가 없어 보인다. 하노이에는 박애의 상징 세인트 요셉 성당도 있다. 그것도 프랑스 사람이 지었다. 재미난 사람들인 것 같다.

빠삐용은 누명을 썼다.하지만 꿈에서 만난 배심원들은 그가 유죄라고 한다. 억울함을 호소하던 그도 이내 시인하고 만다. 죄목은 '인생을 허비한 죄'. 지워지지 않는 대사다.

제국주의 국가의 개인에 대한 억압과 구속은 자국민과 식민지 국민을 따지지 않았다. 프랑스인 빠삐용도, 베트남인 응우엔도 똑같이 족쇄에 묶이고, 고문당하고, 착취당했다. 개인도 양쪽 모두 끊임없이 자유를 추구하며 탈출을 시도했다는 점에서 차이가 없었다. 인간이 국가를 구성하지만 국가는 인간을 통치한다. 민중이 프랑스혁명으로 새나라를 세운 듯했지만 새나라는 다시 통치의 습성으로 복귀했다.


인간은 자연스럽게 자유와 기쁨과 행복을 바란다. 구속된 상태에서도 자유를 탐닉한다. 슬픈 상태에서도 기쁨의 기회를 엿본다. 불행한 사이에도 머릿속은 행복을 꿈꾸고 있다. 하노이의 메종 센뜨랄에서도 빠삐용들은 자유를 쫓아 날아올랐다.


베트남전쟁 때 메종 센뜨랄은 미군 포로수용소로 용도변경한다. 밥 딜런은 그 당시 기타를 치며 그만 싸우라고 노래했다. 화로 수용소에도 그때 미군 포로들이 썼다는 기타가 전시되어 있다. 그들은 과연 어떤 노래를 불렀을까? 결국 주제는 자유이지 않았을까 추측해 본다.

전쟁포로들의 생활용품. 미군들도 내기 장기를 즐겼나 보다.
담장 위에 박아 놓은 유리조각. 평화가 왔지만 여전히 저곳은 넘나들 수 없는 곳이다.(와인쟁이들이라 유리는 많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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