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휴 특선 영화

특별히 골랐으니 얼마나 재밌을까?

by 멧별

연휴 특선 영화 편성표’를 보면서 특선이란 특별히 골랐다는 뜻일 텐데 그 특별하다는 것들이 죄다 때리고, 죽이고, 부수고, 죄짓고, 벌받고, 감옥 가고 하는 영화라는 사실에 새삼 놀랐다. '국민의 영화 기호가 정치 및 국가경제 안정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고찰'이라는 논문을 누군가는 썼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고 찾아 봤지만 아직 아무도 쓰지 않은 것을 확인하고 그 정도까지는 아니구나 싶어 안도했다.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영화 평론을 꼭 하고 말겠다고 결심하고 특선영화를 보는 사람도 없을 테고, 넘쳐나는 케이블TV 영화채널과 경쟁을 해야 하는 지상파나 종편 방송의 입장에서는 최선을 다해 엄선한 영화들이 편하게 흥겹게 볼 수 있는 테마이어야 함은 당연할지도 모른다.


그래도, 혹 나에게도 연휴에 자유가 주어진다면 소파와 혼연일체가 되어 울고 웃으며 보고 싶은 영화들은 있는지라, 영화를 보기 전에 기억을 더듬어 리뷰를 해 본다.


1. 여인의 향기 (Scent of a woman)

보통 Por una cabeza란 음악과 함께 시력을 잃어버린 퇴역 군인 슬레이드 중령(알 파치노 분)이 바람맞고 우울하게 앉아있는 어여쁜 아가씨에게 탱고를 청하는 장면을 떠올리게 된다. ‘작업의 정석’이라는 단어와 오버랩 되면서. 그리고 이어지는 정말 신들린 알 파치노의 탱고 연기는 ‘죽기 전에 저것은 꼭 배워야겠다.’라는 결심으로 이어지게 마련이다. 춤이 끝나고 여성 파트너에게 질척거리지 않는 부분도 타의 귀감이 된다고 할 수 있다. 아주 깔끔하다.

개인적으로 나는 다른 장면도 기억에 무척 남는다. 바로 슬레이드 중령이 그의 진정한 친구가 되어준 주인공 챨리를 위해 고등학교 징계위원회에서 연설하는 장면이다. 챨리가 다니는 명문 사립학교는 겉으로는 전통과 명예와 리더십을 표방하지만, 뒤로는 금권에 매수되고, 친구간의 배신을 유도하는 비열한 방법으로 사건을 덮으려 한다. 힘없는 챨리는 무력하게 희생양이 되어야 하는 순간이었다. 군대를 호령하던 쩌렁쩌렁한 연설로 그는 학교에 일침을 놓는다.

그가 자신의 삶을 반추하며 “항상 바른 길이 있다는 걸 분명히 알았지만 나는 그 길을 선택하지 못 했다. 그 이유는 바로 그 바른 선택이라는 것 차체가 제일 어려운 일이었기 때문이다. 여기 찰리는 바른 길을 선택했다. 그런 챨리에게 기회를 주자. 계속 나아가게 해 주자.”라고 하는 대목에서 나는 혼자서 박수를 치곤 한다.


2. 행복을 찾아서 (The pursuit of happiness)

사업에 실패한 크리스(윌 스미스 분)는 어린 아들(친아들 제이든 스미스 분)과 함께 노숙자 숙소를 전전하며 의료기기 외판으로 생계를 이어가고 있지만 실패는 낭패로, 낭패는 완패로 이어지는 추락을 경험하는 중이다. 우연히 증권브로커의 멋진 차와 근무하는 빌딩을 보고 난 후 자신도 새로운 세계에 뛰어들어 재기하고 싶다고 결심하지만, 그에겐 돈도, 시간도, 학벌도, 배경도 아무 것도 없다.

오로지 의지 하나로 면접을 보는 것까지는 성공했지만, 뜻밖의 험한 일을 겪게 되고 인터뷰에 셔츠도 못 입고 나타나게 된다. 사장이 묻는다. “셔츠도 안 입은 당신을 내가 채용한다면 도대체 어떤 경우라고 할 수 있을까요?” 크리스가 대답한다. 난 이 대목이 너무 좋다. “아마 엄청 멋진 바지를 입었겠죠.” 농담 한방에 인턴으로 합격한 그는 노력 끝에 결국 정식 채용된다. 그리고, 실제로 그는 부자가 되었다고 한다.

웹툰 ‘미생’의 장그래도 뭔가 멋진 농담을 늘어 놨다면 정규직이 될 수 있었을까? 내가 아는 한 우리 현실에 그런 건 존재하지 않는다. 경직된 취업시장에서 많은 젊은이들이 보장도 없는 인턴생활과 아르바이트로 청춘을 보내고 있는 현실을 이런 영화가 달래 줄 수 있을까?


3. 빌리 엘리어트 (Billy Eliot)

작은 광산 마을, 작고하신 마가렛 대처 수상님의 구조조정으로 파업까지 일어나고 있는 가난한 그 곳에 광부가 될 천명을 거부한 한 아이, 왕립발레학교 시험에서 싸움질까지 하는 바람에 큰 맘먹고 데려간 아빠를 황당하게 만든 그 아이, 빌리 엘리어트.

하지만 “Like electricity”라는 명대사로 입학에 성공하고, 성장하여 셀럽 발레리노가 된 그는 유학간 아들을 뒷바라지하느라 폭삭 늙어버린 아빠와 형 앞에서 한 마리 백조가 되어 멋지게 비상한다. 이 장면에서 남자 백조를 창작한 매튜 본이 없었다면 가엾은 빌리는 아마 러시아 제국 군복에 장검을 차고 뛰어 다니는 호두까기 인형으로 등장했을 거라고 확신한다. 그리고 영화는 망했을 것이다.

그가 번쩍 날아서 등장한 무대를 동경의 눈길로 바라보는 다른 발레리노들의 모습에서 그가 이룬 성공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빌리와 비슷한 환경을 가진 많은 무용 꿈나무들은 재능과 열정은 있지만 엄연한 현실의 벽에 막혀 몸 안에 흐르는 전기를 무시한 채 아마도 전기 관련 공부를 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4. 파인딩 포레스터 (Finding Forrester) ♤R.I.P. Sir. Sean Connery♤

Finding하면 Nemo나 Dory지만 여기서는 William Forrester(숀 코너리 분)라는 노작가를 찾는다. 그를 찾는 사람은 슬램가에서 자란 Jamal Wallace란 흑인 소년이다. Wallace하면 용감한 심장에 자유를 좋아하는 우리의 William Wallace인데, 두 주인공의 이름을 합치면 그 이름이 된다는 사실이 놀랍지 아니한가? 별로 그렇지 아니한가?그렇다고 하자. 힝.

우연히 만난 William Forrester와 Jamal Wallace는 소울 메이트로 우정을 쌓아가고, 세상에 등을 돌린 노작가는 Jamal을 통해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게 된다. Jamal은 농구 특기생으로 명문 사립고에 진학하게 되었지만, 위장전입이 의심될 만큼 그의 재능과 관심은 문학에 집중되어 있다.

현학적 허세를 내세워 학생 괴롭히는 것을 천직으로 알고 지내는 괴팍한 교수에게 반항한 죄로 억울한 상황에 놓인 Jamal을 변호하기 위해 Forrester는 오랜 칩거를 깨고 세상 밖으로 나온다. 그가 통쾌하게 교수를 한방 먹이는 장면은 정말 압권이다. (쒸~쒸~ 하는 숀 코넬리의 Scottish 억양은 언제 들어도 좋다.) 스포츠로 성공하려면 공부를 모두 포기하고, 자질 미달의 자칭 지도자들에게 피를 빨리며 고통 받아야 하는 나라도 있다고 한다.


5. 포레스트 검프 (Forrest Gump)

처음 접했을 때 만고불변의 진리로까지 생각되었던 포레스트 검프 엄마의 말씀 “인생은 하나의 초콜릿 상자와 같다. 뭘 먹게 될지 절대 모른다.” 그 뒤로 내가 좀 살아보니 맞는 말 같기도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이런 반박도 하고 싶다. “그래도 적어도 초콜릿을 먹게 되는 건 확실하잖아요? 그러나 인생은 그렇지 않아서 진흙 속을 휘저어 손에 잡히는 대로 먹어야 하는 거에요.” 라고.

뭐 어쨌든. 제니가 검프의 가슴에 꽂힌 그 순간, 그는 그녀의 사랑의 노예가 되어 평생을 쫓아 다닌다. 마술 주문은 바로 그 유명한 “Run~ Forrest. Run~” 영화 속에는 지금 내가 살고 있는 나라도 잠깐 나온다. 그리고, 정말로 사랑한다면 저렇게 반갑게 만나야만 한다고 항상 생각되는 워싱턴 링컨기념관 앞 재회 장면. 전쟁을 반대하는 히피 제니와 전쟁 영웅 검프가 다시 만난다. 언제 봐도 재미있다.


이런 영화들을 보면서 연휴를 보내고 싶은데 근무에 준하는 만남들로 써 채워져 있는게 현실이다. 그래도 나는 성실한 갑근세 납부자로서 자랑스런 대한민국 국민이다. 다른 세금들(법인세, 상속세, 증여세, 소득세, 취득세, 재산세 등)도 나의 갑근세만큼 꼬박꼬박 걷히면 좋겠다. 세금을 내야 국민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