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을 일으키다.

[레디메이드 대리 인생] 14

by 멧별

얼마만의 위로였던가? 대리운전기사가 고향사람이라니. 예수가 나를 위해 그렇게 강림한 것일까? 그가 한 짓이 아닐 것이다. 그는 나를 지켜주려다 어디로 끌려간 것이다. 외딴곳에 주차했다가 뉴스에서처럼 불량배들이 돈을 뺏으려 다가와 납치를 한 것이다. 차도 그들이 훔치려다가 사고를 낸 것이다. 그 사람은 무사한 것일까? 새로운 주인에게 아직 한 번도 운전대를 내준 적도 없는 이 조그만 차는 태어나자마자 남의 손에 맡겨진 미혼모의 아이 같다.


격렬한 반응이 엔진룸 안에서 불현듯 일어난다. 휘발유 냄새가 난다. 잠시 후면 치직 끊어진 전선을 통해 스파크가 일어날 것이다. 차는 화염에 휩싸일 것이다. 나는 불꽃 속에 의연히 앉은 채로 악마처럼 호방한 웃음을 지을 것이다. 마치 그곳이 천국인 것처럼. 유치한 시작은 유치한 결말을 낳았다. 차는 불붙지 않았다. 아프다. 울음이 난다. 다리와 팔이 아프다. 아파도 아픈 척할 수 없었던 몇 년간의 삶이 눈물이 되어 흐른다.


그는 나 대신 끌려가며 십자가를 지었다. 잠깐이었지만 의존의 깊이는 간질환자의 무의식처럼 깊었던 그가 돌아오지 않는다. 내 상황은 항상 이렇게 비장하고 심각했지만 괜한 오버라고 남들은 생각했다. 항상 나는 병신이었다. 그랬다. 가진 것이 없었던 나는 그랬다.

‘이제 됐어. 또 정신 차리고 출근해야지’

안전벨트를 풀고 몸을 일으킨다. 그를 데려간 나쁜 놈들은 반드시 경찰이 찾아내 벌을 줄 거라 믿으며.


한 시간 전 차는 자유로를 벗어나 운정신도시라 쓰인 표지판을 따라가고 있었다. 거친 말로 차주인 을 깨우는 대리기사가 차를 몰았다. 결국 깨어나지 않자 욕을 해 댔다. 차를 공터에 잠시 댔다. 차주인 이 계속 쓸데없는 말을 걸어오는 바람에 정확한 주소를 물어보지 못했다. 닥치라는 의미로 되지도 않는 위로의 말을 건넸다. 그리곤 남자가 잠이 들었다. 지갑을 뒤졌다. 돈은 딱 3만 원이 있었고 카드가 있었다. 돈과 카드를 챙겼다. 지갑은 운전석에 던졌다. 그냥 가려는데 뭔가 명분이 없는 것 같았다. 운전자는 주변을 살폈다. 시동을 걸고 가속 페달을 밟아 앞에 있는 트럭의 꽁무니를 들이받았다. 어떤 대리운전기사가 차를 몰다 사고를 내고 운전자를 버리고 갔다는 설정이다.


여의도에서 집에 올 방법이 없어 두리번거리다 술 취한 놈에게 땅에서 주운 명함을 건네면서 접근했다. 운이 좋게도 일산 방향이었다. 잠이 들지만 않았어도 순순히 집에 차를 대주고 돈만 받아 올 생각이었다. 사건은 차주인이 자초한 것이다. 전화번호도 이름도 아무것도 흘리지 않았다. 고향 사람이라고 다 믿고 털어놓는 걸 보니 어지간히 순진한 놈이라 생각했다. 김이 나는 부서진 차체를 보며 침을 한 번 뱉고 무덤덤하게 자리를 뜨는 대리기사를 박 대리는 조수석에 앉은 채 꿈을 꾸듯 고마워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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