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디메이드 대리 인생] 13
차를 보자마자 “허허, 차가 아담하네요.”하는 감탄사가 들려왔다. 차 문을 열고 운전석에 앉자 또다시 “아이코, 스틱입니까?”하는 질문이 날아왔다. 술에 붉어진 볼이 좀 더 붉어지는 느낌이었다. ‘어디 대리기사가 손님 차를 비웃어?’라고 크게 소리칠만한 천박함도, 대담함도 나에겐 없을뿐더러 그에게는 그런 말을 할 수가 없었다. 팀장이나 과장에게 말하듯 그저 “예, 죄송합니다.”라는 비굴하다기보다는 무의미한 한마디를 건넨 게 고작이었다. “허허. 면허시험 쳐보고 스틱은 처음인데.” 뭐 어쩌자는 건지가 불분명한 말들을 자꾸 던지는 그에게서 다음 대사가 흘러나왔다.
“거어는 안 가봐서 길을 좀 알리 주시야 됩니다.”
말에서 엄마가 만들어준 고등어 콩나물 장조림 같은 친숙함이 느껴졌다.
“일싼 옆이라고 했으이 일단 자유로 타고 쭉 갈께요. 잠들믄 안 됩니더.”
오르락내리락하는 억양. ‘다’인지 ‘더’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음가를 가진 종결어미. 나는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질문을 던졌다.
“고햐이 어뎁니꺼?”
오랜만에 시원하게 사투리가 튀어나왔다. 가슴 한편에 뚫린 구멍으로 바람이 통하는 느낌이 든다.
“부싸인데예”
갑작스러운 사투리 질문에 대답도 짙은 사투리로 돌아왔다.
“맞지요? 말하는 거 보고 내 딱 그랄쭐 아랐다이까. 부산 어뎁니꺼?”
“부전동예. 여 온지는 한 5년 됐심더.”
“지는 어릴 때는 초읍에 살았습니더. 와 거 어린이대공원 있고, 성지곡수원지 있고.”
“알지. 내가 거기 ㅈ고등학교 출신인데. 와따 반갑네.”
예수와 나는 어떻게 상경했냐, 살기 어렵지 않더냐. 에서 쉼표를 찍고, 고생이 많다.로 마침표를 찍었다. 잠깐의 침묵 뒤에 나는 뭔가 기억이 나서 이야기를 주절거렸다.
“서울에서 야구하는 거 본 적 있습니꺼? 나는 최근에 가족들 데리고 가거든요. 한동안 바빠서 잊고 살다가. 옛날에는 학교 바로 옆이 사직구장이라 참 자주 갔었는데. 선배들하고 후배들하고 가서, 여자 후배들 핸드백에 쏘주 숨카가. 통닭하고 먹으면 직이는데. 파도 타고 노래 부르고. 그런데 취직하고 서울 올라오고 하다가 완전히 다 까묵고 있었거든요. 그카다가 얼라들 장난감으로 글러브하고 플라스틱 빠따를 사 주는데 퍼뜩 롯데 생각이 나는 기라. 바로 인터넷 보고 잠실 예약해가 보러 갔지. LG 트윈스 하고 붙는데 와아 서울인데 3루 응원석에 롯데 옷 입고 깃발 들고 응원석에 응원단도 오고 고마 직이데요. 가슴이 막 뛰는 기라. 서울 놈들 죽어봐라 하는 생각도 들고. 처음에 와서 추석 때 부산 갈라꼬 하는데 여 인간들이 자꾸 ‘시골 간다.’고 카는 기라. 니미 부산이 우째 시골이고. 인마들은 서울 아니면 전부 시골인기라. 아 참 그래서. 그날 6횐가 끝나고 ‘부산 갈매기’ 노래 나오고 다 따라 부르는데 진짜 기분 좋데. ‘이 서울 새끼들아. 내가 부산 사람이다.’ 하는 기분도 들고. 9회 끝나고 이기뿌가 ‘돌아와요 부산항에’ 부르는데 내 거짓말 안 보테고 울어뿠다입니꺼. 그래에 눈물이 나오데.”
중간중간 주억거리며 “예, 예.”하고 추임새를 넣어주던 그는 “운정이란 데는 처음입니다.”라고 말을 꺼냈다. 약간씩 의식이 가물거리는 느낌이었다.
“한시 더 넘으면 콜도 없고, 오늘 번 돈도 없고, 어디든 가보자 해서 가자켔는데 길은 진짜로 모르겠네예. 스틱도 이기 차가 오래 돼서 그런지 기아가 잘 안 먹히네예.”
흥정인지 투정인지 모를 이야기에 다시 실내를 떠돌던 의식이 돌아왔다. 입으로는 희한한 말이 튀어나오고 있었다. 그것도 큰 소리로.
“내가 우째야 됩니꺼? 나도 오늘 개 같은 놈들 만나가 개 같은 꼴 당하고, 개 같은 놈들 만나러 또 출근해야 되는데 우짜라꼬요?”
왜 따짐을 당하고 있는지 궁금할 그는 말이 없었다.
“손님요. 무슨 말이든 해보고 싶은 거 있으면 다 하이소. 내도 여 와서 참 어렵지만은 손님도 쉽지는 않은 것 같네요. 힘내입시다. 집에 가믄 사모님도 있고 아아들도 있을 끼고. 서울이 문제가 아니고 이 세상이 미친기라요. 뉴스 보이소. 싸우고, 직이고, 불 지르고, 떨어져 죽고, 약 먹고 죽고, 물에 빠져 죽고 난리가 이런 난리가 엄써요. 그래도 우짜겠습니꺼. 우리같이 정신 멀쩡한 놈들이라도 제대로 살아야지.”
가르침 같은 대리운전기사의 목소리에 나는 자장가를 떠올렸다. 마음에 위안이 되는 것을 느끼며 참 복잡하게 입은 상처를 너무도 간단히 푼다는 생각을 했다. 예수의 얼굴을 한 대리기사와 한바탕 주절거리고 난 후 몰려드는 피로와 토닥이는 예수의 손길 같은 위로의 말에서 나오는 위안을 느끼며 나는 깨어나지 못할 것 같은 잠에 빠져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