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서울은 사람을 직조한다. 나를 조각하고, 인식하기 좋게 만들어준다. 너무도 친절하게 내 자리를 찾아준다. 내가 설 곳. 내가 볼 것. 내가 원할 것들을 다 골라준다. 그걸 좇고 싶게 만들어준다. 그 중 어느 것도 내가 바란 게 없어도.
혼돈의 파도만큼 힘을 가진 건 질서의 유혹이다. 이것은 내가 자각하지도 못한 채 나를 배 밖으로 꺼내 간다. 꽁꽁 묶어놓을 커다란 돛대 없이는 그 누구도 버틸 재간이 없다.
그럼 세이렌의 노래는 너무도 아름다워 그렇게 홀리는가. 아니다. 그 노래는 어느 날에는 철저히 자기 파괴적이다. 어느 날에는 연민이 되기도 하고, 어느 날에는 정복과 배덕감, 그리고 어느 날에는 머리가 뜯겨도 좋을 듯한 쾌락이 된다. 이것들이 서로 섞여 하모니를 이룰 때 우린 배를 잃는다. 의지를 상실한다. 닫힌 시각은 커다란 소용돌이 속에서 끊임없이 배고픈 커다란 입으로 빨려 들어가려 할 때 돌아온다. 산산이 찢긴 널빤지들과 함께.
결정되는 것에 저항해야 한다. 그 결정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해야 한다. 질문하지 않을 때 라벨은 붙는다. 일련번호가 새겨진다. 박스와 함께 우주가 닫힌다. 그 작은 어둠 속에 나의 모든 감정이 자리한다. 그럼 판도라는 박스를 열 때만 풀려난다.
질문은 무의식을 멈춰 세운다. 은근히 적시고 있는 유혹을 드러낸다. 끊임없이 내게 새기려는 질서의 강압을 실체화한다. 그렇다면 오늘 나의 하루는 몇 가지의 호기심을 찾아내었는가.
길을 잃어야 길을 찾을 수 있다.
어느 날 발가락에 끼인 모래가 얼만큼이나 부서지고 부서져 다가온 것임을 알면 작은 알갱이가 품은 사랑을 도저히 가늠해낼 수 없다. 썩어가는 음식물과 때 탄 비둘기, 천과 빌딩, 강물과 자신 사이에 차이를 도저히 말할 수 없다면 우주를 품은 티끌은 탄생한다. 불어오는 바람이 파도가 된다. 먼지에서 별이 나타난다. 죽고 다시 죽음에서 돌아온다. 불안은 민들레의 고갯짓 같은 부드런 흔들림이 된다. 흔들림 속에 행복을 무너트릴 힘을 갖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