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룩업> 끊임없는 농담의 시대

뭐라도 하는 하루

by 변석호

영화 <Don't look up> (2021), 아담 멕케이 감독 / 넷플릭스

(영화 전체의 개괄적 내용도 있으니 결말이 중요하다면 주의하세요)


뭘 해도 지겨운 시대다. 첫 숟갈은 분명 정신을 내려쳤었는데, 머리를 박고 그릇을 비울 때면 달고 짜고 매워 뭔 맛인지 뭐였는지도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단단한 것을 단단한 것으로 부수고, 화려한 것을 화려한 것으로 덮다 보니 온 세상이 축제다. 상경 초기에 놀러간 성수동도 그랬다. 팝업스토어란 이름으로 테마파크처럼 꾸민 공간에 가득 찬 제품과 광고, 그곳에 제대로 보기 힘들 정도로 인파가 몰려있었다. 환상같은 곳에 현실이 가득 들어와있는 것이 어두운 방안에 홀로 틀어져있는 만화영화를 떠올리게 했다. 이젠 역사적으로 어른은 몇 없었다는 것을 세상이 인정한 것일지도 모른다. 무서운 표정으로는 더 이상 따라오지 않으니, 네버랜드라 적힌 티켓을 쥐어 주며 어른이든 아이든 도시를 깡총깡총 뛰게 하는 것일까.

영화 <돈룩업> 또한 비슷했다. 시작부터 육중한 천체 망원경의 정교한 움직임과 작동음, 각종 자료와 커피 인서트의 나열. 행색부터 말투까지 과학자라고 외치고 있는 사람들이 모여 칠판까지 써가며 계산한 피할 수 없는 혜성 충돌이라는 전지구적 사형 선고. 시급한 문제에 우주방위국의 협조로 탱크도 실어나를 거대한 군용기에 달랑 사람 두 명을 태워 백악관으로 직송한다. 보고를 앞두고 신경안정제까지 훔쳐먹으며 진정하는 연구원들에 비해 대통령부터 세상은 아주 장난스럽다. 그들에겐 죽음보다 중요한 것이 많다. 선거, 돈, 성애, 레스토랑, 생일, 전처, 연예인, 소문… 당연하다. 우린 아직 살아있으니까.

재밌는 것은 주인공 교수 랜들과 대학원생 디비야스키를 제외하고, 모두가 그렇다는 것이다. 연출자까지도. 음악, 앵글, 인서트 모두 등장인물들의 태도에 비해 한 걸음 더 나가 있다. 인물의 행동보다 더 앞서 나가서 ‘이들은 방위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어. 혜성 충돌이란 인류적 문제에 몰두하는 멋진 장면이라고!’를 호들갑 떨며 말해준다. 보여주기보다 말이 장황하게 앞서 나가는 사람들을 볼 때면 우리의 머리에 들어오는 생각은 하나다. 그리고 마찬가지인 이런 연출을 보여주니 드는 생각도 같다. ‘이거 실패하는구나.’

주인공 둘을 뺀 등장인물부터 감독까지 놀리고 있으니 첫 장면을 봤음에도 헷갈리기도 한다. 혜성이 사실 없는 건 아닐까? 이들의 과대망상일까? 전문성은 있는 게 맞나? 자연스럽게 그 사회에 녹는다. 그리고 선지자들도 예외가 없다. 어느 날 우주가 다가와 알려준 신성한 사명보다 성애, 돈, 레스토랑, 인기, 선거가 머리속에 더 빠르게 회전한다.

종말은 장난이라는 듯 영화는 혜성을 미러볼 취급을 한다. 혜성은 정치파벌의 상징이 되기도 하고, 공연의 소재가 되기도 하고, 막대한 부의 자원이 되었다가 히피 생활의 근거가 되기도 한다.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혜성과 결부된 죽음보다 중요한 것들이 등장인물의 대사 수준에서 현상과 상황으로 카메라에 직접 제시된다. 아름답고 화려하게. 대혜성 로봇도 개발되고 빛이 난무하는 콘서트도 열린다.

축제의 클라이막스처럼 나타난 혜성은 완급조절 없이 곤두박질 쳐 충돌한다. 모두 무참히 죽는다. 비명 소리도 없이 전부 파괴된다. 죽음보다 중요한 것들은 죽음이 오기 전까지만 유효하다. 혜성이 다가올수록 비례해서 격정적으로 변하는 화면전환과 화면내 움직임, 그리고 실제 혜성의 속도를 그대로 담은 듯 단 1초도 걸리지 않은 채 대지와 충돌하며 스위치가 꺼져버리는 듯한 대비가 강렬하다.

처음에 자연스레 떠오르던 <아마겟돈>(1998) 또한 감독의 의도로 느껴진다. 해양생물부터 시작된 질식사, 생물다양성 붕괴, 환경문제라는 종말적 경고 키워드들. AI, AGI를 통한 초혁신사회 같은 기술낙관적 키워드. 적청의 빛깔로 곳곳에서 여전히 메아리치는 신냉전시대 키워드. 경제적 자유, 독립, 행복과 같은 것으로 드러나는 소시민적 탈출 키워드. 그외 모든 것이 지금 농담과 함께 뒤섞이고 있다. 길게든 짧게든 이야기라는 탈을 쓴 난쟁이 광대가 미디어에서 미디어로 발을 쉴새 없이 다각다각 놀리며 재잘거린다. <돈룩업>은 이 광대를 붙잡아, 지구를 파괴하는 소행성을 없애기 위해 죽음을 불사하고 핵을 설치하러 돌진하는 푸른 눈의 영웅과 전인류의 담합은 이젠 될리가 없다고 조소를 남겼다.

확실히 그런 농담이 즐겁다. 알 수 없는 것에 쫓기고 쪼이는 생활에 복잡한 생각들은 다 필요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일장 연설엔 듣고 싶은 말이나 재밌는 말도 없다. 종일 나를 분석하는 검은 창에 들어선 온갖 난쟁이 광대들의 끊임없는 농담이 기다려질 뿐이다. 밤이면 그 공연장에 앉아 맛도 기억나지 않을 음식을 뺨에 묻히며 입에 넣고 또 낮이면 닳을 옷을 입고 집을 나고 들어오며, 무섭고 권태로운 집행일 전의 몇 날 며칠을 잊을 뿐인 것이다. 어디로 가겠는가? 분명 죽기 전까진 죽음보다 중요한 것이 많다.


<Don't Look UP> 포스터


작가의 이전글감자들